주간동아 1161

2018.10.26

김민경의 미식세계

상아색 곱게 빛나는 우아한 가을 식탁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으로 영근 뿌리채소 맛보기

  • 입력2018-10-29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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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단하고 곧은 우엉, 2 독특한 생김새의 연근, 3 생으로 먹기 좋은 단마, 4 토실토실한 토란. [사진 제공·김민경]

    1 단단하고 곧은 우엉, 2 독특한 생김새의 연근, 3 생으로 먹기 좋은 단마, 4 토실토실한 토란. [사진 제공·김민경]

    얼마 전 경남 산청군에서 열린 산청한방약초축제에 다녀왔다. 꽤 먼 거리를 차로 달려가 축제 현장 곳곳을 둘러봤다. 기대와 달리 다양한 약초는 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축제 현장과 멀지 않은 금수암에 들러 조촐한 음식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금수암 주지는 사찰음식으로 이름난 대안스님이다. 이날의 주제는 가을 식재료였다. 햇곡식과 과일이 풍성한 때이지만 꼭 챙겨 먹어야 할 것들을 스님이 일러주셨다. 연근, 우엉, 토란, 마, 버섯 등인데 모아놓고 보니 모두 희고 뽀얀 식재료다. 나뭇잎 색은 화려하게 바뀌고 하늘은 새파래지는 가운데 식탁에는 상아색 음식이 올라간다니, 우아한 가을 식탁 한번 차려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근은 암수가 있다. 암연근은 통통하고 길이가 짧으며 요리했을 때 쫀득한 편이고, 수연근은 길쭉하고 한 손에 쏙 잡히는 굵기 정도이며 아삭한 편이다. 우엉은 길쭉한 뿌리채소로 땅속 깊이 씨를 심는 데다 다 자라면 50~100cm가 돼 캐내기가 쉽지 않다. 길고 곧은 생김이 특이하며 요리를 해도 특유의 식감이 살아 있고 향이 진하다. 우엉은 단단하고 가늘면서 둥글기 때문에 손질이 쉽지 않다. 연필 깎듯이 저며 썰기도 하지만, 필러나 채칼을 이용하면 손질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연근, 마, 토란 등 스님이 일러준 가을 식재료

    마는 연근과 우엉의 중간 정도 굵기의 뿌리채소다. 수분이 적고 비교적 조직이 단단한 장마, 수분이 많고 아삭아삭한 맛이 좋은 단마가 있다. 주스로 갈아 먹거나 샐러드 또는 회에 곁들일 때는 단마가 맛있고, 익혀 먹는 솥밥이나 죽을 끓일 때, 부침개나 구이용으로는 장마가 어울린다. 마는 껍질째 헹군 다음 껍질을 재빨리 벗겨 손질해야 한다. 마에 함유된 뮤신이라는 성분은 굉장히 미끌미끌하기 때문에 손질이 어렵고 피부가 간지러울 수 있다. 마는 투명한 맛과 향이 나고 과일처럼 아삭거린다. 미끈거리면서도 끈적한 식감이 처음엔 낯설 수 있으나 곧 입에 착 감기는 재미에 매료된다. 

    토란은 포슬포슬한 맛이 좋은 뿌리채소다. 토란 역시 손질할 때 손이 간지러울 수 있는데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가열해 껍질을 벗기면 덜하다. 껍질 벗긴 토란은 쌀뜨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고 요리해야 한다. 통통한 토란 줄기는 토란만큼이나 맛이 좋은데 역시 소금물에 데친 다음 물에 반나절 정도 담가야 아린 맛이 없어진다. 토란대는 말려 두면 육개장, 들깨탕, 나물로 두루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우엉과 연근이 반찬으로 식탁에 오를 때는 간장을 넣어 달콤 짭조름하게 맛을 낸 경우가 많지만, 색다르게 맛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토실토실 잘 영근 우엉과 연근은 썰어서 식촛물에 살캉살캉하게 데쳐 피클처럼 새콤달콤하게 먹어도 맛있다. 흰밥에 참기름, 통깨, 소금으로 간한 다음 뿌리채소 피클을 잘게 다져 넣고 주먹밥을 만들면 맛있다. 우엉과 연근을 섞어 샐러드를 만들어도 좋다. 연근은 부각을 만들 듯 얇게 썰고, 우엉은 가늘게 채를 썰어 함께 식촛물에 데친 뒤 참깨드레싱에 무치면 꽤 근사한 샐러드가 된다. 때로는 입맛 돋우는 반찬으로 내놔도 좋다. 푸릇푸릇한 잎채소와 아몬드 슬라이스, 건포도처럼 마른 과일을 함께 섞으면 훨씬 풍성한 모양과 맛을 낼 수 있다. 우엉과 연근은 요리하기 전 식촛물에 데치면 씁쓰레한 맛도 빠지고 뽀얀 상아색이 살아난다.



    맛도 향도 좋은데 면역력 증강에도 도움 줘

    5 연근 주먹밥, 6 우엉전, 7 가을 채소 연잎 쌈. [사진 제공·김민경]

    5 연근 주먹밥, 6 우엉전, 7 가을 채소 연잎 쌈. [사진 제공·김민경]

    조금 색다르게 우엉전을 부쳐 먹어도 좋다. 우엉 껍질을 칼로 살살 긁어 벗긴 다음 깨끗이 씻어 찜기에 들어갈 만한 길이로 자른다. 우엉에 길게 칼집을 내 통째로 찐다. 만졌을 때 휠 정도로 찐 다음 칼집 낸 부분을 벌려 넓게 펼친다. 이때 나무 밀대처럼 묵직한 물건으로 우엉을 골고루 자근자근 두드리면 납작해지고 식감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구이용 더덕을 펼 때처럼 하면 된다. 간장, 참기름, 깨소금을 섞은 다음 우엉에 골고루 바른다. 밀가루, 물, 간장을 섞어 전 반죽을 만들어 두고 우엉은 식용유와 들기름을 반씩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 지진다. 지지면서 전 반죽을 우엉에 조금씩 펴 바르며 앞뒤로 노르스름하게 구워 익힌다. 우엉전은 맛은 고소하고 향은 알싸해 풍미가 독특하다. 요리할 때 간을 소금이 아닌 간장으로 하는 이유는 단백질 섭취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다. 간장은 콩으로 만들기 때문에 채소만 먹었을 때 부족할 수 있는 단백질을 소량이라도 보충해준다. 

    흰 가을 채소를 한꺼번에 조리해 맛볼 수도 있다. 연근, 마, 밤, 은행, 감자, 고구마, 당근을 밤톨만 하게 한입 크기로 자른다. 연근은 익는 속도가 더디니 물에 삶아 거의 익혀둔다. 은행은 프라이팬에 볶아 속껍질을 벗긴다. 손질한 재료를 모두 섞어 연잎 가운데에 소담하게 담고 소금을 살살 뿌려 간한다. 연잎을 감싸 이쑤시개로 고정한 다음 15분 정도 쪄서 익힌다. 하나같이 심심한 맛에 엇비슷한 모양의 채소지만 한꺼번에 찌면 서로의 맛과 향이 어우러지면서 놀랍게 변한다. 연잎을 펼치는 순간 구수하면서 푸근한 내음이 후끈 올라오고 눈이 사르르 감긴다. 저마다의 식감이 살아 있어 아삭하고 폭신하며 쫀득한 맛을 골고루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소금의 간간함이 채소 본연의 맛을 제대로 드러낸다. 당근을 제외하면 색감이 비슷한 재료들이라 브로콜리 같은 초록색 채소를 살짝 데쳐 함께 쪄도 된다. 

    채소의 흰색은 플라보노이드라는 색소가 만들어낸다. 플라보노이드는 항암 효과가 있고, 체내 산화 작용을 억제하며, 몸속 유해물질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체외로 배출한다고 한다. 또한 면역력을 키우는 데도 좋다고 하니 계절이 바뀌는 이때 희고 뽀얀 가을 채소를 골고루 맛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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