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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검은머리 미국인’의 수상한 무기중개

정부합동수사단 육·해군 무기 사업에 함모 씨 연루 확인…현 정권 실세가 배후 소문도

‘검은머리 미국인’의 수상한 무기중개

‘검은머리 미국인’의 수상한 무기중개

무기중개상 함모 씨는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을 도입하면서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은 영국 해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와일드캣의 모습.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위치한 C레스토랑. 체코 프라하 구시청사 건물을 그대로 따온 고풍스러운 외형과 체코 하우스 맥주로 인기가 높다. 이 건물 4층에는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는 체코문화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종종 체코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아래층 술집에서 열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 기사는 맛집 탐방기처럼 시작하는 방산비리 기사의 최초 사례일 것이다. 바로 이 건물이 최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의 집중 추적을 받고 있는 무기중개상 함모 씨 소유이기 때문이다.

함씨는 해군 해상작전헬기로 선정된 ‘와일드캣’ 도입을 중개했으며 육군 K11 소총의 주요 부품 납품에도 관련된 인물이다. 최근에는 정홍용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과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의 아들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합수단 수사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정 소장과 최 전 의장 모두 돈의 대가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며 검찰의 구속영장은 법원으로부터 기각됐다. ‘돈의 성격에 대해 다툼 여지가 있어 피의자(함씨)를 구속해야 할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밖에도 함씨는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의 동생에게 “와일드캣 도입에 힘써 달라”며 사업자금 1억 원을 지원하고,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장 출신이자 현재 모 방산업체 전무인 임모 씨에게 전차용 조준경 부품을 납품하게 해달라며 수천만 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방산업체 대표로는 이례적 경력

‘검은머리 미국인’의 수상한 무기중개
함씨는 국내 주요 무기중개상 가운데 가장 최근 부각된 인물이다. 이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 외에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함씨 이력에 대해서도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증언이 일부 엇갈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가 해병대 출신이라고 들었다고 하는 반면, 다른 관계자는 그가 일찍이 도미(渡美)했기 때문에 병역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방산업체 두 곳과 레스토랑의 대표이건만 어느 곳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대표 소개를 볼 수 없다. 공개된 자료들을 하나씩 취합해 함씨 이력을 추적해보면 무기중개상 사이에서도 ‘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09년 주한체코대사관으로부터 한국·체코 교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체코 외무부 메달을 받았다. 당시 체코대사관이 낸 보도자료에는 그가 한국외대와 미국 UCLA에서 공부했으며 1980년대 S사를 세웠고, 2000년대 초 프라하를 방문한 뒤 그곳에 매료돼 C레스토랑을 설립했다고 쓰여 있다.

C레스토랑의 법인등기를 살펴보면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6~2008년으로 짐작된다. 2006년까지는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한국인으로 나오나 2008년부터는 ‘미합중국인’으로 표기되기 때문. 함씨가 S사 한국법인 사내이사로 취임한 것은 2011년이고 E사 대표이사가 된 것은 2013년이다. 두 회사는 모두 방위산업체로 미국 시민권자가 국내 방산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것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무기중개상들의 ‘문화 마케팅’

함씨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준수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를 가졌다는 데 동의한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함께 이러한 ‘문화자본’은 함씨의 주요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함씨는 2009년 C레스토랑 건물에 체코문화원을 유치하면서 주한체코대사관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1년 동안 C레스토랑 건물 4층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4층에 위치해 있던 S사는 이후 인근 합정동의 다른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체코대사관이 주최하는 많은 행사에서 함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합수단 수사 결과 밝혀진 함씨의 접근법은 결정권자나 실무자 본인에게 직접 접근하기보다 가족을 통해 우회하는 패턴을 보인다. 최윤희 전 의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 전 의장의 아들은 함씨로부터 수백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 전 의장 측은 “부인이 함씨에게 아들을 소개했으며 최 전 의장은 이를 뒤늦게 알았다”고 해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함씨가 접촉 대상의 가족을 주한체코대사관 문화행사 등에 초청하는 식으로 호감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함씨를 두고 ‘문화 마케팅의 신’이라고 불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함씨가 자신의 건물에 체코문화원을 유치한 이듬해부터 또 다른 거물 무기중개상인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도 문화·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운영하던 기획사 소속이었으나 이후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탤런트 클라라를 로비스트로 키우려 했다는 언론보도는 이 회장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이 단순한 사업 확장 이상의 의미가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합수단은 11월 15일 미국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에 함씨의 계좌 입출금 자료를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그의 인맥은 예비역 장성은 물론이고 현직에 있는 고위 장교들에게까지 뻗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현 정권의 실세도 함씨 배후에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아직까지 함씨의 혐의는 입증된 것이 없으나 앞으로 합수단의 조사 결과에 따라 군은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방산비리의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간동아 2015.11.23 1014호 (p28~29)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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