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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무너진 조선왕국 02

구조조정하랬더니… ‘낙하산’ 투입한 정책금융

산업은행 15년 관리, 대우조선 올해 손실 5조 원…끝까지 책임 묻는 체제 확립해야

구조조정하랬더니… ‘낙하산’ 투입한 정책금융

구조조정하랬더니… ‘낙하산’ 투입한 정책금융

산업은행은 15년간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했으나 되려 부실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평소 다루던 범위를 훌쩍 넘는 숫자와 맞닥뜨리면 현실 감각을 잃기 쉽다. 채권단이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금액 4조2000억 원도 그렇다. 평범한 시민은 살면서 조 단위 금액을 접할 경우가 거의 없지 않은가. 이 금액을 나눠 현실감을 좀 부여해보자. 서울 서대문구에는 약 11만 가구가 사는데, 4조2000억 원은 서대문구 전 가구에 3800만 원씩 퍼주고도 남는 돈이다. 인구 10만 명 정도인 경기 여주, 충남 공주, 경남 사천 같은 중소도시의 경우 모든 가구(가구당 3인 추정)에 1억2000만 원씩 줘도 남는다. 그만한 돈이 방만한 경영으로 그보다 더 심한 손실을 입은 기업을 돕는 데 투입됐다. 물론 이 돈은 국민이 낸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결정한 채권단의 중심에는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이기도 한 KDB산업은행(산업은행)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을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으로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정권이 바뀌자 중단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8월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한다. 산업은행 기능의 초점을 다시 정책금융에 맞추겠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금융위원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안전판, 기업 구조조정 등 정책금융 기능 강화의 필요성이 증대”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기업 구조조정 진행 등 위기상황의 장기화에 대응해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당시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분리해 신설한 한국정책금융공사는 4년 만에 다시 산업은행과 합쳐졌다. 4년 동안 분리 운영되면서 허비된 세금은 적어도 25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성이 의심되는 낙하산 인사

5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적자, 400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부채 비율, 대규모 영업손실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저질렀을 가능성 높음. 대우조선해양의 현 상황이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대주주가 된 것은 2000년 대우그룹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과정에서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대우조선해양의 현 상황은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이 일궈낸 성과라 할 수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이 선임돼 있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손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9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산업은행측은 이렇게 답변했다. “복잡한 조선사업의 생산 문제를 재무책임자 한 사람이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산업은행의 ‘풍부한 경험’은 15년 동안 관리 중인 회사의 부실을 파악하는 데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산업은행의 ‘전문성’은 엉뚱한 방향으로 발현됐다. 당시 국정감사에서는 산업은행의 ‘낙하산 인사’가 도마에 올랐다. 산업은행의 전직 부총재, 재무관리본부장, 부행장 등을 비롯한 전직 임원들과 권력기관 출신의 낙하산 인사 총 60명이 비상근임원으로 투입돼 억대 연봉과 자녀 학자금 등을 챙겨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우조선해양에서 그 결과를 보고 있다.

“(정책금융기관 기관장들은) 맡고 있는 부실기업들을 시한폭탄 돌리듯 돌린다. 자기 임기 때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 정책금융기관 전직 고위직 임원이 한 말이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은 산업은행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돈을 대주는 곳이 산업은행인데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책임과 권한이 모두 따르는 데 권한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명목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은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130여 개에 달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실태가 이러한데 과연 다른 회사들은 어떨까. 정책금융기관에 의한, 다시 말해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은 바람직한 것인가.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최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주간 보고서에 기고한 글을 통해 정책금융기관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단기적으로 시장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겠으나 문제점 또한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책금융, 오히려 구조조정에 장애

윤 교수가 제기한 문제점은 세 가지다. 첫째,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서 민간금융회사들을 밀어냄으로써 금융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계속 정부 소유 은행인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 노릇을 하면서 민간 구조조정 시장이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둘째, 정부 소유 은행들의 구조조정 추진은 정치권과 정부 정책의 영향에 노출돼 구조조정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관치금융 관행 때문에 정치권의 영향력에 노출되면 기업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도리어 국책은행까지 ‘좀비은행’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셋째, 정부의 정보가 민간에 비해 열위일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윤 교수는 국책은행 규모 축소와 ‘낙하산’의 정치적 영향력 차단을 위해 정책금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실을 초래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전직 정책금융기관 임원은 말했다. “정부금융기관의 낙하산 인사가 문제시되고 있고 실제로도 문제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하는 체제를 갖추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10월 29일 산업은행이 이사회를 열어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을 때 정용석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본부장은 “이렇게 방대한 회사에 (산업은행에서) 최고재무책임자 한 사람이 파견 나와 부실을 막을 수 있겠느냐”며 ‘산업은행 책임론’에 대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는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중단시키고 산업은행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바꾸는 데 주요한 논거가 됐던 ‘전문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다. 내부인력으로 부실을 막을 수 없다면 전문성이 있는 외부인사를 들이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아예 손을 떼는 것이 정상이다. 15년 동안 관리하던 기업의 부실에 대한 변명으로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금융감독원은 11월 11일 중소기업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소기업 175개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했다. 지난해에 비해 50개 늘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래 최대 규모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서는 관치금융으로 오히려 스스로 강조하던 구조조정 기조에 역행하면서 만만한 중소기업에게만 칼날을 들이댄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듯싶다.



주간동아 2015.11.16 1013호 (p26~27)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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