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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미래 최진철의 아이들

맞춤형 형님 리더십 효과…자발적 움직임과 가족 같은 팀 분위기

한국 축구의 미래 최진철의 아이들

한국 축구의 미래 최진철의 아이들

2015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벨기에와 16강전을 치르는 대표팀 선수들이 10월 26일 칠레 라세레나 티에라스발랑카스 경기장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 이후 한동안 극심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던 한국 축구는 지난해 10월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을 A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뒤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1월 2015 호주아시안컵에서 한국을 27년 만에 준우승으로 이끈 뒤 8월 중국 동아시안컵에서는 7년 만에 우승을 일궜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국 축구에 또 하나의 희소식이 터졌다. 17세 이하(U-17) 남자대표팀이 칠레에서 열리는 ‘2015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기니를 각각 1-0으로 연파하는 등 2승1무를 기록하며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올림픽을 포함한 FIFA 주관 대회(총 36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게 승리를 거뒀고, 각급 남자대표팀을 통틀어 FIFA 주관 대회 조별리그 1·2차전 전승이란 새 역사도 썼다. 잉글랜드와 경기에서도 무실점으로 비겨 조별리그 3경기 첫 무실점이란 의미 있는 기록도 세웠다. 이 중심에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현재 U-17 대표팀을 이끄는 최진철(44) 감독이 있다.

최 감독은 한일월드컵에서 홍명보(46) 전 국가대표팀 감독, 김태영(45) 전남 드래곤즈 코치와 함께 ‘철벽 스리백’을 구축했다. 200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든든히 수비라인을 책임졌던 그는 대표팀을 잠시 떠났다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가 다시 자신을 필요로 하자 묵묵히 대표팀에 복귀했다.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스위스전에서 상대 선수의 헤딩슛을 막다 이마가 깨져 ‘붕대투혼’을 보였던 모습은 아직도 축구팬들에게 가슴 찡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북 현대 소속으로 2006 FIFA 클럽 월드컵에도 나서 한국 선수 최초로 ‘국가대표팀 월드컵과 클럽 월드컵’ 동반 출전이란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현역 시절 그와 같이 영웅 대접을 받았던 홍 전 감독을 비롯해 황선홍(47) 포항 스틸러스 감독, 최용수(42) FC 서울 감독 등 ‘히딩크 사단’은 은퇴 후 프로와 국가대표 지도자로서도 일찌감치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최 감독은 스스로 낮은 길을 걸으며 착실히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았다.

히딩크의 향기가 난다

2008년 현역 은퇴 후 그가 택한 길은 신생팀 강원FC 코치였다. 얼마 뒤 그는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를 맡아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에 나섰다. 3년 동안 11~15세 유소년을 육성하는 대한축구협회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유소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노력의 대가는 조금씩 빛을 발했다. 최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한 대한축구협회는 2014년 그를 U-16 대표팀 감독에 선임했고, 그는 착실히 칠레월드컵을 준비했다.



최 감독이 칠레월드컵에서 보여준 과정은 자신과 함께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궜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히딩크 감독은 한일월드컵 개막을 앞둔 평가전에서 잇달아 대패한 뒤 ‘오대영 감독’이란 비아냥거림에 시달려야 했다. 또 대회 개막을 불과 4개월 앞둔 2002년 1월 북중미 골드컵에서 약체인 쿠바와 비기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여 거센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이라며 꿋꿋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밀어붙였고, 결국 한일월드컵에서 4강 기적을 연출해냈다.

최 감독도 마찬가지다. 칠레월드컵 전까지 그의 입지는 불안했다. 지난해 9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2014 AFC U-16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지도자로서 뚜렷한 자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며 “이승우(FC 바르셀로나 B) 덕에 운 좋게 2등을 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칠레월드컵을 1개월여 앞둔 시점에 열린 ‘2015 수원 컨티넨탈컵 U-17 국제청소년축구대회’에선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며 1무2패로 참가국 4개 팀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 최 감독도 본선 경쟁력을 위해 체력과 수비 조직력에 중점을 뒀다. 한국에서 일찌감치 단체 합숙을 통해 체력 훈련을 시작한 최 감독은 칠레 입성 전 전지훈련지였던 미국에서도 파워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한일월드컵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던 라이몬트 페르헤이연 피지컬 코치의 수제자인 이재홍 코치가 악역을 맡았다.

강한 체력과 투지로 무장했던 2002 한일월드컵 국가대표팀이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골든골로 짜릿한 승리를 맛보고 스페인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올랐듯, U-17 대표팀은 막강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공략해나갔다. 브라질과 기니전에서 전반은 내용상 밀렸음에도 잇달아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후반 20분 이후 전개된 ‘최진철 타임’이 빛을 발한 덕분이었다.

눈높이를 맞추다

한국 축구의 미래 최진철의 아이들

최진철 한국 축구 17세 이하 대표팀 감독.

히딩크 감독은 선수의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았다. 박지성(은퇴)을 과감히 기용해 주축으로 활용했다. 최 감독 역시 비슷하다. 1998년생이 주축인 이번 U-17 대표팀에서 한 살 어린 김정민(16·금호고)이 바로 그렇다. 김정민은 ‘최진철 아들’이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한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최 감독은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꼭 필요한 선수로 봤다. 김정민은 이제 ‘제2의 기성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U-17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U-17 대표팀에는 이승우라는 빼어난 선수가 있다. 칠레월드컵을 앞두고 최 감독에게 떨어진 또 하나의 과제는 ‘이승우 원맨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우려가 적잖았지만 이승우는 정작 칠레에서 철저히 팀에 녹아들었다. 최전방 공격수인 그는 중앙선 아래로 내려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고, 개인기에 의존하는 유럽 스타일에서 벗어나 동료들과 함께하는 ‘이타적 플레이’를 펼쳤다.

이는 사실 단기간에 이뤄진 변화가 아니다. 최 감독은 어린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일찌감치 공을 들였다. 때론 스킨십을 통해, 때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선수들과 소통했다. 조카뻘 선수들에게 “감독님 유머는 썰렁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팀은 하나가 됐다. 그렇다고 선수들을 마냥 풀어주기만 한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에 빠지기 십상인 선수들을 관리하고자 ‘스마트폰 뺏기와 돌려주기’를 탄력적으로 활용했다. 하루에 일정 시간만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했고, 그 외 시간에는 숙소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선수들 나이에 맞는 ‘맞춤형 형님 리더십’으로 자발적 움직임과 가족 같은 팀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라커룸의 축제 분위기를 담은 사진을 올린 것도, 부상으로 중도 낙마한 장결희(FC 바르셀로나 후베닐 B)를 위해 선수들이 한 발 더 뛰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도 모두 U-17 대표팀이 하나 된 결과였다.

칠레에서 ‘최진철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스토리는 한국 축구를 살찌우게 했다. 스타 출신이면서 스타 의식을 버린 최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지도자 최진철’의 감동은 이제 시작이다. 그래서 더 반갑다.



주간동아 2015.11.02 1011호 (p68~69)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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