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2015.11.02

어긋난 웰다잉, 죽음 팔아 잇속?

이벤트성 프로그램 범람, 자격증 남발…국가 공인 자격증제도 운영해야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5-11-02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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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긋난 웰다잉, 죽음 팔아 잇속?

    한 웰다잉 행사장에서 참가자가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누워보는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한 상조회사가 주최한 웰다잉(well-dying) 교육에 참가했다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한테 갑자기 그런 걸 하라고 하면 위험할 수 있지 않나요?”

    60대 중반 홍모 씨의 말이다. 그는 “웰다잉 교육이라 해서 갔다 충격만 받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최근 일반인을 상대로 한 웰다잉 교육이 증가하면서 준비 부족에 따른 문제점도 함께 늘고 있다. 오진탁 한림대 생명교육융합 생사학과 교수는 “웰다잉 교육은 죽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돼야 하는데 일부 프로그램은 임종체험, 사후의료의향서 쓰기 같은 부차적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최근 상조회사, 보험회사까지 이 분야에 뛰어들어 웰다잉을 팔며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철학 없는 죽음 장사

    강사 자격도 논란거리다. 현재 웰다잉 교육 관련 자격증으로는 웰다잉지도사가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3개월간 주 1회 교육을 이수하면 쉽게 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50대 중반의 웰다잉 강사 조모 씨는 “사설기관에서 2개월 과정의 웰다잉지도사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당시 함께 수업을 들은 30명이 전부 자격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역시 사설기관에서 웰다잉지도사 교육 강의를 들은 50대 초반 이모 씨는 “강사 자격증을 받으려면 수강료 외에 8만~10만 원씩 추가 비용이 들어 수료증만 받았다. 교육기관에서 자격증을 갖고 장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김대정 액티브시니어아카데미 대표는 “웰다잉 전문강사가 되고 싶어 서너 군데서 강의를 들었는데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다”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고 웰다잉지도사 자격증도 땄지만, 사람들에게 사설기관에서 강의를 들으라고 권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자격증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점도 문제다. 웰다잉지도사 자격증을 발급하려면 해당 기관이 보건복지부 심사를 거쳐 등록해야 한다. 이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웰다잉지도사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는 민간기관은 두 곳뿐이며, 대부분 등록하지 않고 관련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한 웰다잉 강사 교육업체 담당자는 “보건복지부에 웰다잉지도사 자격증 발급기관으로 등록하려 했으나 심사 통과가 안 됐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수강생들이 교육을 마치고 강사로 활동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해 그냥 임의로 발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웰다잉 교육기관과 자격증 발급기관이 각각 다른 경우도 있다. 교육기관이 자격증 발급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일단 수강생을 받아 가르친 뒤 등록된 기관에 수수료를 내고 자격증만 받아오는 식이다. 웰다잉지도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한 기관에 전화를 걸어 특정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묻자 “그 교육은 다른 기관에서 하고 있다. 우리는 자격증 발급만 대행하고 있어 잘 모르니 교육 관련 문의는 그쪽으로 하라”고 안내했다.

    어긋난 웰다잉, 죽음 팔아 잇속?

    웰다잉 교육을 받은 수강생이 찰흙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표현한 자료. 전문가들은 좋은 웰다잉 교육은 수강생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고 말한다.

    무등록 교육기관이 늘고 있는 이유는 ‘웰다잉지도사 자격증이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상당수 사설 교육업체들은 자격증의 효과를 과장하며 수강생을 모집한다. 웰다잉지도사가 되면 전국에 있는 경로당 6만여 개, 노인상담센터 200여 개 및 노인대학, 복지시설, 방과후 학교, 지방자치단체 평생학습센터, 기업체 등에서 관련 강의를 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게 자격증 소지자들의 이야기다. 40대 후반 웰다잉지도사 강모 씨는 “처음 교육과정에 등록할 때는 자격증만 취득하면 해당 업체에서 강사 자리를 다 알선해주는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직접 발로 뛰어 강의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한 달에 겨우 서너 군데 특강 형태로 나가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쪽 분야가 전망이 밝다는 얘기를 듣고 뛰어들었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웰다잉 강사를 직업으로 삼았다 그만둔 이가 여럿”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2002년 우리나라 최초로 1년 과정의 웰다잉 전문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개설한 각당복지재단은 오히려 자격증을 발급하지 않고 있다.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이들에게는 ‘강사증’ 대신 ‘수료증’을 준다. 오혜련 각당복지재단 이사는 “웰다잉이라는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소비되면서 관련 교육이 장사로 변질되고 강사의 자질과 수준에 대한 회의마저 생기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우리는 교육 명칭을 ‘죽음준비’로 바꾸고, 강사 양성 대신 웰다잉 저변 확대에 치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삶을 바꿔야 진짜 웰다잉”

    라제건 각당복지재단 이사장도 최근 웰다잉 열풍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살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더 심각해질 자살 문제를 풀려면 죽음을 화두 삼아 바람직한 삶에 대해 가르치는 진정한 웰다잉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웰다잉 교육은 마치 수학을 가르치듯 주입식으로 흐르고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가 웰다잉 교육의 전부인 양 여겨지기도 한다”며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걱정”이라고 밝혔다.

    취재 도중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웰다잉 교육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계, 종교계, 학계, 상조회사와 보험회사를 비롯한 민간기업, 민간기관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뛰어들어 각개전투를 벌이는 장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진짜 웰다잉 교육은 수강생의 삶에 대한 자세를 바꾼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한림대 대학원 생명교육융합 생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권영구 한국웰다잉연구회장은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앞만 보고 질주하느라 죽음을 외면하고 살았다. 은퇴 후 웰다잉을 공부하며 비로소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깨달았다”고 했다. 오진탁 교수는 이에 대해 “독일은 공영방송에서 웰다잉에 대해 다루고,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초중고교 때 웰다잉 교육을 한다. 웰다잉 교육은 자살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며 “국가가 공인 자격증제도를 운영하고 제대로 된 강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진짜 웰다잉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이 분야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게 오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죽음과 삶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호스피스제도, 장례문화, 종교마다 다른 생사관, 생사학 등 웰빙(well-being)과 웰에이징(well-aging), 웰다잉 분야를 하나로 통합해 우리 현실에 맞는 웰다잉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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