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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브로커는 바로 중국, 겉과 속 다른 강대국 두 얼굴 직시해야”

북한-파키스탄 핵 커넥션 추적해온 인도인 전문가 우펜드라 초우두리 교수

“브로커는 바로 중국, 겉과 속 다른 강대국 두 얼굴 직시해야”

“브로커는 바로 중국, 겉과 속 다른 강대국 두 얼굴 직시해야”
“북한은 1990년대부터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넘기고 그 대가로 우라늄 농축 기술을 들여왔다.” 여기까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러나 다음 문장은 다르다. “두 나라 사이 대량살상무기(WMD) 기술 거래를 중개한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 핵 프로그램 완성을 가능케 한 당사자다.” 6자회담 의장국이자 ‘한반도 비핵화’를 줄곧 천명해온 중국이 실은 막후에서 핵 커넥션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라는 도발적인 주장. 주인공은 우펜드라 초우두리 인도 알리가르회교대(AMU) 교수(사진)다.

외상 거래, 누굴 믿고?

인도 국책연구기관 협의체인 인도사회과학연구협의회(Indian Council of Social Science Research) 국장을 겸직하고 있는 초우두리 교수는 서남아시아 국가들의 미사일 기술 문제를 천착해온 소장파 전문가 중 한 사람. 몸담고 있는 AMU 역시 인도 3위권에 꼽히는 명문 공립대다. 10월 13일부터 이틀간 서울 숭실대에서 열린 ‘2015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에서 북한과 파키스탄의 WMD 커넥션을 주제로 발표한 그를 만났다.

▼ 중국이 두 나라 사이 거래를 ‘중개했다(facilitate)’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나. 혹은 이를 통해 중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었나.

“중국은 북한과 파키스탄 WMD 개발의 실질적인 후견인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파키스탄은 1998년,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진행했는데, 중국 측 관계자가 두 실험 모두 참관했다는 게 서방 정보기관 측 분석이다. 핵과 미사일 기술을 포함해 인도 군사력이 성장하는 것을 경계한 중국은 파키스탄에 WMD 기술을 넘겨줌으로써 인도를 견제하려 했지만, 국제사회가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걸자 북한을 대신 내세워 이를 성사시켰다고 본다. 그 대가는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을 비롯한 핵무기 개발 기술을 전수받아 사실상 핵무장 국가가 되는 걸 용인하는 것이었다.



먼저 미사일 기술부터 살펴보자. 1990년 중국은 파키스탄에 사거리 300km 수준의 M-11 탄도미사일 14기를 판매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이후 파키스탄 기술자들이 중국 과학자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미국 정보당국이 이러한 거래를 포착해 제재를 가하고 나서면서 직접 거래가 불가능해졌다. 이후 파키스탄이 눈을 돌린 게 바로 북한이었다.

1992년부터 파키스탄 당국자들이 노동미사일 시제품을 살펴보기 위해 북한을 찾았고, 이듬해 노동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다. 93년 12월엔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방 정보당국 분석에 따르면 94년과 97년 사이 5~12기의 노동미사일이 북한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갔다. 파키스탄은 바로 이 노동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98년 4월 가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다.

그 대신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을 가능케 했던 우라늄 농축 기술을 북한에 제공했다. 파키스탄 핵개발 주역이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4년 사이 12차례나 평양을 방문했고, 2006년에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 역시 북한에 핵기술을 이전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이러한 거래 흔적이 미국에 포착되면서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며 본격적인 핵개발을 공식화했다. 각각 미사일 기술과 우라늄 기술을 갖고 있던 두 나라가 ‘완벽한 결혼(perfect marriage)’을 한 셈이다.”

▼ 두 나라 사이 기술 거래와 관련한 의문점 중 하나는 시차 문제다. 북한이 미사일 기술을 넘겨준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었던 반면,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한 것은 98년이었고, 북한이 우라늄 농축 기술이나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는 징후가 확인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그 또한 중국이 거래 배후에 있었다는 방증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물론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결과였을 뿐 이전부터 오랜 개발 역사가 있었고, 따라서 1990년대 중반에는 이미 상당한 축적이 이뤄졌을 것이다. 이를 확인한 평양은 미사일 기술을 먼저 넘겨주고 후에 우라늄 농축 기술을 넘겨받았겠지만, 중국처럼 양측과 모두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오면서 기술 개발의 후견인 노릇을 해온 나라가 중개했기 때문에 ‘외상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본다. 이것은 나만의 관점이 아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주요 서방 정보기관이 다수의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의 핵 커넥션을 분석한 바 있다.”

악마와 바다 사이에서

“브로커는 바로 중국, 겉과 속 다른 강대국 두 얼굴 직시해야”

파키스탄 핵개발 영웅이었으나 북한, 이란, 리비아 등 ‘불량국가’에 핵기술을 유출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비난을 받았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

▼ 1990년대 중반은 94년 체결된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이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개발 중단을 선언한 상태였고, 주변 국가들이 그 반대급부로 경수로를 지어주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당시 중국은 북한에 제네바합의 체결을 강력히 압박했다는 게 그간의 정설이다. 주장대로라면 이 시기 중국은 겉으로는 북한에 핵 포기를 설득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우라늄 농축을 통한 새로운 핵개발 경로를 열어줬다는 뜻이 된다.

“정확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를테면 강대국의 두 얼굴(two faces)이다. 공식적으로는 WMD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나 잠재적 경쟁 국가의 성장을 막으려는 계산 아래 기술 확산을 조장해왔다는 뜻이다. 중국만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냉전 초기에 미국 역시 영국 등 주요 우방국에 핵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사실상 핵 확산을 주도했다. 이러한 행태는 강대국 모두의 공통적인 방식이므로 도덕적 비난을 가할 것도 못 되겠지만, 이외 다른 나라들은 그러한 강대국의 실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같은 관점에서 미국이 한국에 공약하고 있는 핵우산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연 미국은 동맹국을 보호하고자 자국 영토가 적국의 핵위협에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1950~60년대 프랑스가 깊이 고민한 주제였고,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독자적인 핵무장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인도가 스스로 핵무장을 선택한 이유 역시 다른 나라에 기댈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마다 혹은 시기별로 각 나라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다르다. 한국 역시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영어에 ‘한쪽에는 악마가, 다른 한쪽에는 깊은 바다가 있다(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sea)’는 표현이 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전적인 신뢰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지금 한국 처지가 딱 그렇다고 본다.”



주간동아 2015.10.19 1009호 (p16~17)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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