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8

2015.10.12

디젤 가스는 1급 발암물질

배출가스 조작으로 美 106명 사망 추정…환경부 배출허용 기준 새로 마련, 뒤늦은 처방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5-10-12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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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젤 가스는 1급 발암물질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는 이미 1급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저감장치 조작으로 허용량을 초과해 배출된 가스가 약 7년 동안 106명을 더 사망하게 할 수 있다는 추정까지 나왔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실태부터 관련 규제까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우리나라가 더 긴장해야 하는 대목이다.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우리나라 수입차시장은 디젤 차량이 선도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 가운데 디젤 차량은 전체 판매량의 67.8%였다. 디젤 차량이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연비 때문이다. 통상 디젤 차량의 연비는 가솔린에 비해 20%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폴크스바겐 차주들의 심리는 이중적이다. 이번 디젤 배출가스 조작 차량 가운데 하나인 폴크스바겐 골프 1.6 TDI 블루모션의 차주 김모(34) 씨는 “그간 국산 차들이 신뢰를 주지 못한 면이 있어서 ‘그 돈을 낼 거면 독일차를 타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놀랐다”면서도 “그동안 이 차를 타면서 만족감이 컸다”고 말했다. 소위 ‘클린디젤’의 친환경적 측면보다 연비와 구동력에 매력을 느껴 폴크스바겐을 선택한 소비자가 더 많은 것이다.

    이제 폴크스바겐의 리콜 조치에 차주들은 선택의 딜레마에 놓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정성호 의원은 10월 7일 “리콜을 하면 차량 소유자는 연비가 떨어져 손해를 보게 되고, 리콜을 안 하면 대기환경이 악화되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골프 차주 김씨도 “리콜 때문에 연비와 출력이 떨어진다면 주저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WHO 암연구소 “디젤 배출가스는 폐암 유발”



    디젤 가스는 1급 발암물질

    수도권 질소산화물 총배출량의 68%가 차량에서 나온다.

    그러나 디젤 배출가스는 1등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치명적인 대기오염원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2년 6월 디젤 배출가스의 발암물질 등급을 2A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향 재분류했다. 당시 연구팀을 이끈 크리스토퍼 포티어 박사는 “과학적 증거도 설득력이 높았으며 연구진들의 의견도 만장일치였다. 디젤 배출가스는 사람에게서 폐암을 유발한다”며 “디젤 배출가스 입자들이 건강에 미치는 다른 영향들을 고려할 때 이러한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은 전 세계적으로 경감돼야 한다”고 말했다.

    디젤 배출가스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NOx), 그리고 미세먼지 등을 포함한 매연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질소산화물이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동천 연세대 의대 교수는 “질소산화물은 대기 중에서 햇빛과 반응해 오존을 생성하는데, 오존은 산화성이 있어 기도 상피세포 등을 자극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존은 광학스모그의 주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젤 배출가스와 폐암의 상관관계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 법원은 2011년 자동차 매연으로 가득한 지하주차장에서 7년 넘게 일하다 폐암 판정을 받고 사망한 청소노동자에 대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지난해에는 근로복지공단이 20년 동안 디젤 지게차의 매연에 노출됐다 폐암에 걸린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공기 중 질소산화물과 오존의 수위를 낮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자국의 2014년 대기 중 질소산화물 농도가 1980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발전소와 자동차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조작은 이러한 정부의 노력을 일정 정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정부가 발전소 등에 대한 규제를 통해 감소시킨 질소산화물의 양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이 2008년 말부터 현재까지 약 7년 동안 배출가스를 조작한 디젤 차량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의 양은 총 4만6000t으로 추정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의 감소량과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감소 수의 상관관계를 비교한 다음 이를 근거로 4만6000t의 질소산화물이라면 106명이 더 사망할 수 있었으리라고 추정했다.

    관련 선행연구 자료의 부족으로 우리나라에서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조작이 얼마나 많은 호흡기 질환 사망자를 낳았는지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기오염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지 보여주는 연구는 있다.

    디젤 가스는 1급 발암물질

    2012년 서울 서초구청 관계자들이 ‘자동차 배출가스 점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수도권 조기사망자 15.9%의 원인은 대기오염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팀과 김순태 아주대 환경공학과 교수팀이 공동으로 실시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분진)이 수도권지역 거주자의 사망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 보고서는 201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수도권 조기사망자 수가 총 사망자 수의 15.9%(1만5346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수치를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열악한 대기오염 관리 실태가 드러난다. 유럽연합(EU)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자 비율은 우리나라 수도권의 절반 이하인 6%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예방 가능한 천식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비율은 인구 10만 명당 101.5명인 데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51.8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총 암발병률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연간 3.3% 증가했는데, 보고서는 수도권 대기오염이 수도권 지역의 암환자 및 만성호흡기질환 증가에 주요 원인이 됐을 것으로 결론지었다. 또한 보고서는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24년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자 수가 2만5781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차량 배출가스는 전체 대기오염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질소산화물의 경우,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수도권 총배출량의 68%가 차량에 의한 것이었다. 환경부는 현재 ‘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정책’을 통해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등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감축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기자동차를 비롯한 친환경자동차 보급 확대를 추진하고, 기존 차량 인증시험에 더해 실제 도로조건 배출가스양을 추가로 평가해 배출허용 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도록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규제 강화와 함께 우리나라 규제 당국의 관할 영역 분산 문제 또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차량 배출가스 문제는 환경부 관할인 반면, 연비 측정 등은 국토교통부 소관이며, 자동차에 대한 전반적 제도운영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할하고 있다. 권오수 서울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주관 부처가 흩어져 있어 일괄적인 해결책을 내기 어렵다”며 “더욱 신속한 대책 마련을 위해 디젤 차량에 대한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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