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6

2018.02.14

국제

“설날 이들을 잠시 기억합시다”

시리아·로힝야족 난민 1300만 명… 지난해 후원금 모금 목표액의 53%에 그쳐

  • 입력2018-02-13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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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월 19일 이른 아침 시리아와 레바논을 잇는 국경지대 마스나 인근에서 15명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날 이 지역 최저온도는 영하 2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였고 새벽엔 눈폭풍도 불었다. 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에서 발견된 이들 가운데 9명은 이미 숨져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6명 가운데 1명도 치료 도중 숨졌다. 떠돌이 생활을 하더라도 새해에는 전쟁이 없는 곳에서 한숨 돌리기를 바랐을 시리아 출신 난민 10명은 눈보라 불던 허허벌판에서 숨을 거뒀다. 

    #2 최근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로힝야족 난민 라시다 씨는 1월 28일 미국 공영방송 PBS와 인터뷰에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미얀마군이) 제 두 살배기 아이를 강에 던져 익사시켰어요. 갓난아기는 땅바닥에 내던졌고요.” 자신의 목숨은 건졌지만 두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라시다 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참혹한 탄압과 학살을 피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이들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음력 새해를 맞는 한국에선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을 만나기 위한 ‘민족 대이동’이 벌어진다. 하지만 시리아인과 미얀마 로힝야족 원주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 가득한 ‘민족 대이동’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추위와 우기…더 무서운 건 ‘온정 피로감’

    이렇게 시리아와 미얀마의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은 2월 현재 공식 집계된 것만 100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수는 중동 550만 명, 유럽 70만 명에 달한다. 시리아 내에서 떠도는 난민도 약 600만 명이나 된다. 로힝야족은 100만~13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로힝야족만 약 90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의 분석이다. 결국 시리아 내전과 로힝야족 탄압 사태로 발생한 난민은 1300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추운 날씨가 무서워요. 아이들이 아프면 어떡하죠.” 



    시리아 인근 국가로 피신한 난민들이 이맘때 가장 두려워하는 건 험궂은 날씨다. 레바논 베카계곡의 임시 천막에 살고 있는 후세인 하산 씨는 2월 1일 보도된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가진 것은 공포뿐”이라며 이같이 털어놨다. 이곳의 겨울 기온은 심심찮게 영하로 떨어진다. 인터뷰가 있던 날 얄궂게 내린 겨울비로 천막 안은 바닥이 찰랑거릴 만큼 물이 찼다. 아이들은 무료하던 참에 놀거리를 찾았다는 듯 플라스틱 양동이로 빗물을 퍼내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레바논으로 피난 온 100만 명 가운데 25만 명이 이 같은 임시 천막에서 생활하며 추위와 싸우고 있다. 

    상황은 시리아 난민 66만 명을 수용하고 있는 요르단도 마찬가지다. 시리아 국경에서 약 3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요르단 아즈락의 난민캠프에서 생활 중인 와르다 씨는 “임시 숙소에 히터가 있지만 아이 5명이 있는 내겐 충분치 않다”며 유엔난민기구 측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불과 매트리스를 지원받았지만 고국의 집만큼 따뜻할 수는 없다. 

    방글라데시 남부 콕스 바자르의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80만 명의 로힝야족은 정반대로 무더위와 함께 곧 찾아올 우기가 걱정이다. 5월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6~7월 우기가 절정에 이르는 방글라데시의 일부 지방에선 7월 강수량이 1000mm가 넘기도 한다. 

    현지 유엔난민기구와 협력 중인 방글라데시 다카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콕스 바자르의 쿠타팔롱과 발루칼리 난민캠프에서 생활 중인 57만 명 가운데 최소 10만 명이 산사태와 홍수로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 교실이 휩쓸려가고 8만 5000명은 아예 보금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 

    날씨보다 이들을 더 괴롭히는 것은 ‘온정 피로감(compassion fatigue)’이라 표현되는 국제사회의 무관심이다. 시리아 난민을 위한 기부 액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유엔 주도 하의 구호단체 모임은 지난해 후원금 목표치를 46억 달러로 설정했지만 24억 50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목표치의 53%)를 모으는 데 그쳤다. 2016년 28억8000만 달러(목표치의 63%)에 비해 더 저조한 수치다.

    “집은 그립지만 돌아가기엔…”

    한정된 구호자금을 타내려고 가짜 사연을 만들어내는 난민들까지 등장했다. 해너 비치 ‘뉴욕타임스(NYT)’ 동남아지국장은 2월 1일 “어느 난민캠프에서나 비극은 상품화된다”며 이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는 로힝야족 어린이 3명의 사연을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 취재했는데, 알고 보니 죽었다던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아내를 셋이나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치 지국장은 “(난민들의 거짓말은)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라면서도 “꾸며진 이야기들은 로힝야족이 겪고 있는 참상이 ‘인종 청소’가 아니라는 미얀마 정부의 주장을 강화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시도가 오히려 무관심을 가속화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월 23일로 예정됐던 로힝야족의 미얀마 송환 작업 개시는 돌연 잠정 연기됐다. 방글라데시 정부 당국자는 “가장 큰 문제는 송환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라며 로힝야족 난민 다수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송환을 거부해 계획을 번복했음을 시인했다. 현지에선 송환에 찬성하는 로힝야족 지도자의 피살 소식도 들려온다.
     
    시리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전이 정부군의 승리로 사실상 귀결되면서 귀국을 선택한 난민도 있지만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반군의 저항이 거센 지역을 중심으로 전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AFP통신은 반군 거점인 다마스쿠스 인근 동(東)구타 지역에 러시아군과 시리아 정부군이 집중적으로 공습을 가해 2월 5~6일 이틀 동안 민간인 100명 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 중 10여 명은 어린이로 파악됐다. 최근 반군이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킨 데 따른 보복인 것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국경을 넘어 다시 시리아로 돌아간 난민은 6만 8000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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