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6

2017.12.06

구가인의 구구절절

큰 기대 없이 보니 재미있 ‘꾼’!

장창원 감독의 ‘꾼’

  • 입력2017-12-05 13: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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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2일 개봉하는 현빈 주연의 ‘꾼’ 등이 대적할 만한 상대로 꼽힌다. 아직까지 6인의 DC 히어로를 상대하기엔 벅차 보이지만.’

    지난 리뷰의 마지막 문장이다. 주말 박스오피스 결과를 보고 일순 부끄러워졌다. 영화 ‘꾼’(장창원 감독)이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으로 무장한 ‘저스티스 리그’를 가뿐히 제친 것이다. 지진으로 일주일 미뤄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에 예상치 못한 개봉일 특수가 있긴 했지만, 개봉한 지 5일 된 ‘꾼’의 관객 수(168만 명)가 12일 된 ‘저스티스 리그’(162만 명)를 넘어섰으니 확실히 예상을 빗나간 셈이다.

    물론 이 정도 흥행을 대박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기억의 밤’ ‘반드시 잡는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이 11월 29일 개봉함에 따라 ‘꾼’의 흥행도 주춤할 개연성이 크다. 다만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180만 명)에 빨리 도달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거물 사기꾼을 잡으려는 사기꾼과 검사 이야기를 그린 ‘꾼’은 케이퍼 무비(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표방했다. 사실 상영시간 내내 꽤 많이 기시감을 준다. 멀티캐스팅은 ‘범죄의 재구성’이나 ‘도둑들’ 혹은 ‘기술자들’과 유사하고, 영화 모티프가 된 조희팔 사기극은 ‘마스터’를, 정치인과 검찰 등 기득권층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내부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폐쇄회로(CC)TV 몰래카메라와 경찰청 상황실을 옮겨놓은 듯한 ‘꾼’들의 아지트는 ‘조작된 도시’와 빼닮았다.

    캐릭터 역시 다소 아쉬움을 준다. 극 중 사기꾼 잡는 사기꾼으로 천재적인 수완을 발휘하는 주인공 황지성 역은 현빈이 맡았다. ‘시크릿 가든’ 등 주옥같은 로맨스 드라마 속 왕자님이던 현빈은 해병대 제대 후 남성미를 발산하려고 작정한 듯하다. 화난 등근육의 정조(‘역린’), 특수 정예부대 출신 북한 형사(‘공조’) 등으로 분했던 현빈은 이번 작품에선 전작처럼 ‘수컷 냄새’를 풍기진 않는다. 다만 능글맞은 사기꾼이라기엔 어딘지 맑고 곱게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멀티캐스팅을 내세웠지만 홍일점 나나가 연기한 춘자 정도를 제외하면 각 조연 캐릭터의 매력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과하게 똑똑한 주인공에 비해 갈등을 빚는 박희수 검사(유지태 분)는 지나치게 생각이 없고, 나머지 능력자들도 ‘꾼’이란 말이 무색하게 딱히 제대로 된 장기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뭘까. 한 배급사 관계자는 ‘적당한 가벼움’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는 “한동안 대형작품이 쏟아지면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캐릭터가 중시됐지만 요즘엔 그저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영화를 찾는 관객이 많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 큰 기대를 모았던 몇몇 영화가 개봉 후 기대에 못 미치자 웬만한 영화는 기대치를 낮추는 게 트렌드”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실제로 기시감은 다른 말로 친숙함이 될 수 있다. ‘꾼’의 미덕은 적당한 복선에 요즘 관객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큰 기대가 없었기에 별다른 실망도 주지 않는다. 다만 적당히 흥행 요소를 담은 기획 영화가 그럭저럭 인기를 끌고 이런 흐름이 반복되는 것은 다소 우려스럽다. 새로운 이야기나 캐릭터를 갖춘 영화가 더는 나오지 않는 극장가에 관객의 발길은 뜸해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모험에 나설 이도 갈수록 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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