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6

2017.12.06

사회

북한 병사 치료비는 누가 낼까

석해균 선장 때는 병원이 부담… 이번에도 책임 주체 못 찾아

  • 입력2017-12-05 16: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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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3일 군사분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가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로 긴급 이송되고 있다.[뉴스1]

    11월 13일 군사분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가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로 긴급 이송되고 있다.[뉴스1]

    “중증외상센터 의사가 보기에 이번 북한 병사는 참 운이 좋은 편이에요.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의료비 걱정 없이 그렇게 필요한 처치를 다 받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에 대해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한 말이다. 이 병사는 군사분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총탄 여러 발을 맞았다. 골반이 으스러지고 장기가 상당 부분 손상됐다. 하지만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 의대 교수) 등 아주대병원 의료진의 집중치료 아래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 중이다. 2011년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보여준 ‘기적의 생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석 선장은 그해 1월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에 납치됐다 총상을 입고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280일간 집중치료를 받은 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단, 병원비 문제가 남았다. 석 선장이 몸담고 있던 삼호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2억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부담할 곳이 사라진 것이다. 정부는 ‘나 몰라라’ 했다. 결국 해당 비용은 아주대병원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국종 교수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이 문제로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음을 털어놓았다. 

    이번 북한 병사는 애초부터 치료비를 낼 존재조차 없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도 아니다. 그러나 아주대병원은 이번에도 그에게 최상급 의료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해당 병사는 헬기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이 교수의 집도 아래 5시간에 걸쳐 1차 수술을 받았다. 이틀 뒤 한 차례 더 수술대에 누웠다. 혈액 1만2000cc를 수혈 받는 등 각종 의료 처치도 받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에도 최소 억대 이상 치료비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아주대병원은 아직 이 비용을 청구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

    응급의료기금 예산 해마다 삭감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이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병원과 공식 대화를 나눈 곳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병사가 기력을 회복하면 국가정보원 등 관련 기관이 합동신문을 하게 된다. 그 후에야 치료비 부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보통의 탈북자는 통일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병사가 고급 정보를 갖고 있으면 국가정보원 등 다른 기관이 신병을 확보할 공산이 크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관계부처가 향후 치료비 문제를 상호 협의할 예정이라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우리 병원 의료진은 비용 문제를 신경 쓰지 않고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이런 대우를 받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중상을 입은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오면 의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치료비 문제를 계속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의사가 열심히 일할수록 손실이 커질 게 분명한 상황에서 ‘잘 한다. 계속 더 치료하라’고 격려할 병원장이 어디 있겠나. 의사도 병원에 속한 조직원이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석 선장 사례가 우리나라 병원들에게 나쁜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치료비조차 정부가 부담하지 않는 게 확인되면서 응급환자 치료 시 병원이 느끼는 부담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정부가 1995년 조성된 응급의료기금을 통해 응급환자 치료비 미수금 중 일부를 부담해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청구액이 다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관련 예산도 계속 줄고 있다. 2013년 44억2600만 원에서 올해는 22억9600만 원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따르면 2018년 예산안에는 이보다 약 40% 더 줄어든 14억5200만 원만 반영됐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지난해 7월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응급의료기금, 제대로 쓰이고 있나’ 토론회에 참석해 “국가는 국민에게 ‘안심하고 의식을 잃을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그 대표적 수단이 응급의료기금”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심각한 외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오는 환자 중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속한다. 먹고살려고 밤잠 안 자며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 추락한 사람 등이 우리 병원 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들이 의식을 회복한 뒤 가장 먼저 치료비 걱정부터 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이강현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외상학회장)는 다른 문제도 제기했다. “환자가 의료비를 지불할 여력이 있는 경우에도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처치를 다 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가(酬價)’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의료행위와 약제비에 대해 일정한 급여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의료기관이 환자 치료 과정에서 사용한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해당 기준을 바탕으로 심사 및 평가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 사용한 진료비를 다 보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강현 교수는 “예를 들어 응급수술을 하며 거즈를 20장 사용한 뒤 해당 비용을 청구하면 10장 값만 주는 식이다. 심평원에서 ‘왜 이렇게 거즈를 많이 사용했느냐’고 하면 의사는 ‘환자를 살리려고 그랬다’ 외에 할 말이 없다. 결국은 거즈 10장 값이 또 병원 손실이 된다. 그런 일이 쌓이면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를 할 때 ‘이 비용이 보전될까’라는 생각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낮은 수가 탓에 ‘생명 살리는’ 치료 주저

    11월 22일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귀순한 북한 병사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11월 22일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귀순한 북한 병사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한 중증외상센터 의료진은 “심지어 응급수술 중 실시한 수혈조차 ‘과잉진료’라며 삭감된 일이 있다. 북한 병사가 이번에 1만2000cc에 달하는 혈액을 수혈 받았는데, 일반적인 경우 해당 병원이 이 비용을 다 보전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국종 교수도 9월 아주대 교수회가 발행하는 소식지 ‘탁류청론’에 기고한 글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수가 삭감이 무서워)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의 필수적인 치료를 줄일 수는 없었다’며 ‘그 결과 환자마다 쌓여가는 삭감 규모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이른다’고 했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주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내가 학교에 일부러 불이익을 안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중략) 얼음장 같은 시선들 사이에서 수시로 비참했다. 무고했으나 죄인이었고,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이 의료비 걱정 없이 진료받는 북한 병사에 대해 ‘운이 좋다’고 얘기하는 이유다. 이국종 교수는 11월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넘어온 그 군인이 기대한 삶의 모습은, 자신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다 다치든 30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고 1시간 내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해당 병사는 다행히 대한민국에서 이런 ‘기적’을 만났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의료 환경은 일반 한국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강현 교수는 “석 선장이나 북한 병사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외상의료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우리 국민도 의료비 걱정 없이 적정한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체계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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