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2017.11.15

국제

미국산 원유, 세계시장 휘어잡는다

셰일오일·가스 생산 및 수출 급증…OPEC 대신 유가 좌우하는 ‘스윙 프로듀서’될 듯

  • 입력2017-11-14 12: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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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텍사스 주에 위치한 석유회사 아파치의 셰일오일 추출 시설. [아파치사 홈페이지]

    미국 텍사스 주에 위치한 석유회사 아파치의 셰일오일 추출 시설. [아파치사 홈페이지]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아시아로 수출할 LNG를 선적하고 있다. [사진 제공·Energy Resources]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아시아로 수출할 LNG를 선적하고 있다. [사진 제공·Energy Resources]

    미국 텍사스 주 서부와 뉴멕시코 주의 접경에는 퍼미언 분지(Permian Basin)라는 지역이 있다. 미국에서 셰일오일(shale oil)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가로 400km, 세로 480km에 달하는 이 분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퇴적암층이 있다. 셰일오일은 퇴적암에서 추출된다. 그동안 채굴이 어려운 데다 개발비도 만만치 않아 방치됐으나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다. 

    셰일오일 채굴에 사용하는 기술은 수압파쇄와 수평시추다. 수압파쇄는 수직으로 뚫은 시추공에 물과 모래, 화학물질 등을 섞은 혼탁액을 고압으로 지하에 투입해 암석층에 균열을 일으켜 원유를 뽑아내는 공법이다. 수평시추는 채굴 파이프를 암석층에 수평으로 삽입해 유전의 표면적을 최대화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퍼미언 분지에 매장된 셰일오일은 600억~700억 배럴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 매장량(750억 배럴)을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가와르 유전에 버금가는 규모다. 시장 가치로는 3조3000억 달러(약 3674조 원)에 달한다. 이곳에서 추출되는 셰일오일 생산량은 2010년 1월 하루 평균 88만6430만 배럴에서 현재 253만5000배럴로 크게 늘었다. 원유업체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유정을 계속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IEA, 2020년 미국이 사우디 역전 예상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의 퍼미언 분지 셰일오일 유전.[사진 제공·셰브론사]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의 퍼미언 분지 셰일오일 유전.[사진 제공·셰브론사]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셰일오일 채굴로 급속히 증가 중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올해 하루 평균 생산량이 92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의 역대 최고 하루 생산량은 1970년 960만 배럴이었지만, 내년엔 1000만 배럴로 48년 만에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550만 배럴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셰일오일 덕에 미국이 2020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현재 사우디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1000만 배럴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의 원유 수출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원유 수출 규모는 11월 1일자로 213만3000배럴을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2015년 12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한 직후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50만 배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배나 증가했다. 



    원유 수출 증가는 시장 점유율 확대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앞으로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가 될 개연성이 높다. 스윙 프로듀서란 국제 원유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원유 생산량 조절을 통해 전체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산유국을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개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및 미국의 적대국 등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줄이고 셰일오일 등 에너지 생산을 확대해 그 수익을 도로나 교량, 학교 등 공공인프라 건설 등에 투자한다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셰일오일 생산을 늘리고자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발맞춰 미국 최대 석유회사 엑슨모빌 등도 셰일오일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와 북극해 유전 개발을 전면 허용할 경우 미국 원유 생산량은 대폭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OPEC은 그동안 스윙 프로듀서로서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해왔으며, 1970년대에는 절반이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OPEC의 시장 점유율은 4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에드워드 모세 미국 씨티그룹 원자재 리서치 부문 대표는 “OPEC이 더는 스윙 프로듀서로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며 “미국 셰일오일이 국제 원유시장의 수급 균형을 좌우할 최대 원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 에너지 수출 적극 나서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수출로 무역적자를 줄이고자 아시아와 동구권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구매 압박에 나서고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 일본은 미국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 인도도 최근 사상 최초로 미국으로부터 원유를 도입했다. 에드 롤 우드매켄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원유 수출은 2022년까지 하루 평균 300만 배럴로 확대될 수 있고, 이 중 3분의 1은 아시아시장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도 늘어나고 있다. 1~7월 미국의 대(對)아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배나 급증했다. 일본의 경우 미국 천연가스와 자국 발전소 설비 등을 패키지로 묶어 아시아 각국에 수출한다는 계획까지 추진 중이다. 미국은 셰일오일 및 가스 수출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동구권인 폴란드가 6월, 리투아니아가 8월에 각각 미국 LNG를 사상 처음 수입했다. 동유럽 국가는 천연가스의 8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해왔다. 러시아는 동구권 국가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잠그겠다고 위협하는 등 일종의 무기로 활용해왔다. 이에 동유럽 국가는 미국산 LNG 수입을 통해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선을 다변화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은 천연가스 수출 확대로 경제적 이득은 물론,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 확대, 러시아 견제 등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내년부터 천연가스 순수출국, 다시 말해 천연가스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은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산 LNG 붐으로 세계 천연가스시장이 재편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에미 마이어스 제프 미국 외교협회 에너지안보 애널리스트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산 LNG 공급 증대가 러시아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능력은 2012년만 해도 연간 20억4000만㎥에 불과했으나 셰일가스 개발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81억6000만㎥로 급증했다. IEA는 미국의 천연가스 수출 능력이 내년 447억7000만㎥, 2022년에는 1066억5000만㎥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아무튼 미국산 셰일오일과 천연가스는 앞으로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의 새로운 지렛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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