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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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논란

생색은 정부가, 부담은 병원이?

“‘저부담 -고복지’ 체제는 한계, 건강보험료 인상 전제로 본격 논의해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9-12 11: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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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또 한 번 이를 강조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중략) 국민의 건강과 미래를 위한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 없다. 그런데도 비판과 우려가 쏟아진다. 돈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 비급여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건 의료비 중 국가 부담분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현재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비급여진료’(비급여)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63.4%이다. 의사가 이에 해당하는 처치, 즉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환자가 아니라 나라(국민건강보험공단)로부터 돈을 받는다. 이를 ‘급여진료’(급여)라고 한다. 나머지가 비급여다.

    현재 급여 가격(수가)은 정부가 정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들은 그동안 일부 의료서비스 수가가 원가의 75%에 그치는 등 턱없이 낮다고 주장해왔다. 그래도 거부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법은 의료기관이 원칙적으로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및 피부양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이른바 ‘당연지정제’다. 의협은 2000년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병원)가 수익을 내려면 비급여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부 통제 밖에 있는 비급여 가격은 원칙적으로 시장이 정한다. 그런데 이 시장은 수요자(환자)와 공급자(의사) 사이 정보 불평등이 매우 심하다. 의사가 특정 치료를 권할 때 환자가 필요성과 가치를 꼼꼼히 따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가 “현재 의료환경에서는 비급여가 필요 이상으로 소비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정 교수에 따르면 비급여는 의료기관에 경제적 이득이 된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비급여를 권할 여지가 있다. 환자는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과잉진료 문제가 발생한다.

    임부 대상의 산전 초음파검사가 한 사례다. 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주요국의 초음파검사 시행현황과 질 확보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출산 전 초음파검사 적정 횟수로 5회를 권고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임부는 출산 전 인당 평균 10.7회씩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산전 초음파검사는 지난해부터 급여에 포함됐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비급여를 점차 줄여 2022년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70%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2015년 인당 연 50만4000원에서 41만6000원으로 줄어든다. 이를 위해 의학적으로 필요하지만 그동안 급여 범위 밖에 있던 의료서비스가 단계적으로 국민건강보험 우산 안에 들어올 예정이다. 내년부터 특진료(선택진료)가 폐지되고 2, 3인용 병실에도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간병비, MRI(자기공명영상) 촬영비 부담도 줄어든다(표 참조).

    정부는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비급여도 ‘예비급여화’해 본인 부담률을 30~90%로 차등적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부르는 게 값’이던 비급여를 제도화해 전국적으로 동일한 가격이 책정되도록 하는 조치다. 보건복지부는 장기적으로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의료비 전체에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실천하는 데 5년간 30조6000억여 원이 들 전망인데, 재원은 국민건강보험 적립금과 국민건강보험료 등으로 마련한다는 계산이다.



    방향은 맞지만…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확대’ 선언에 대해 보건정책 전문가와 환자단체 등은 대체적으로 “큰 틀에서 환영한다”는 의견이다. 2014년 우리 국민이 직접 부담한 의료비 비율(36.8%)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6%)의 2배 수준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꾸준히 추진했지만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2007년 64.6%에서 되레 하락했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건강보험 보장률 80%’를 공약하는 등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보수, 진보가 모두 동의하는 개혁 과제로 통했다.

    그런데도 정책 발표 후 혼란이 발생한 건 비급여가 오랜 기간 의료기관의 주수입원이 돼왔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실손보험이 증가하면서 비급여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비급여와 전쟁’을 선언하자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당장 의협은 “현재의 국민건강보험 재정 체계에서 ‘전면 급여화’는 실현 불가능한 얘기”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의협은 현재 △필수의료와 재난적 의료비를 중심으로 단계적인 보장성 강화 △적절한 보상 기전 및 합리적인 급여 기준 마련 등을 요구하며 ‘급여화 대책 및 적정 수가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9월 16일로 예정된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향후 대응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또 다른 의사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도 대한흉부외과의사회 등 다른 단체와 함께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와 의료제도 정상화를 위한 비상연석회의’를 만들었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는 그동안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며 수가를 시장가격의 60% 수준까지 낮추곤 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는 달리 말하면 의사와 병원에 대한 ‘저수가 강요’인 셈”이라며 “늘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병원이 진다”고 비판했다. “이번 조치는 의료 공급자가 듣기에 다 굶어 죽으라는 얘기다.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할 때 현재 수가를 100% 보장해주지 않으면 의료기관에 발생할 막대한 손실을 어떻게 감당하겠나”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노인 인구 급증 변수

    의사들은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의료계 통제가 더 강화될 것이며, 이는 의료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의료계 반발을 해소하지 않는 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의료계가 계속 새로운 비급여를 만들어내거나 MRI, 초음파검사의 시행 건수를 늘려 수입을 확대하는 등 급여 체계를 악용해 정책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의료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새로 개발된 치료법은 안전성, 비용 대비 효과 등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야 급여 대상이 된다.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이 나올 경우 최대한 급여나 예비급여 체계 안에 끌어들여 또 다른 비급여 발생을 억제한다는 방침이지만, 의료계 협조가 없으면 쉽지 않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의료기관과 충돌을 지양하고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가칭 ‘문재인케어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초래할 수 있는 환자 수 증가와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14.9회로 OECD 평균 6.8회보다 2배 이상 많다. 입원 일수도 16.5일로 OECD 평균(7.5일)의 배가 넘는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많은 사람이 더 자주 병원을 이용하면 국민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

    노인 인구 증가도 변수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2017년 현재 708만 명)는 5년 전인 2012년보다 131만 명 늘었고, 5년 뒤인 2022년에는 지금보다 190만 명 증가할 전망이다. 노인은 일반적으로 젊은이보다 3배 이상 병원을 많이 찾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환자가 서울 큰 병원에 몰리면 지방 중소형 병원과 동네의원 등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동안은 MRI나 도수치료(맨손으로 하는 물리치료) 등 비급여 비용이 병원마다 최고 수십만 원씩 차이가 났다. 대형 종합병원의 특진료와 비싼 병실료 등도 일종의 ‘진입장벽’ 구실을 했다. 정부가 급여 범위를 확대하고 일부 비급여는 예비급여에 편입해 전국적으로 환자가 부담할 금액이 같아지면 비용 부담 때문에 동네 병·의원을 찾던 환자도 유명 대학병원으로 발길을 옮길 수 있는 셈이다.

    한 외과의사는 이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의 ‘이상주의’ 때문에 그렇잖아도 어려운 동네병원이 줄도산을 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원협회도 8월 16일 성명을 통해 이번 정책을 ‘재난적 부실 정책’이라 평가하고 ‘이대로 정책이 시행되면 국민은 국민건강보험료 폭탄을 맞게 되고, 대한민국 의료는 좌초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부담-고복지’도 환영할까

    문 대통령 앞에는 이제 이 모든 문제를 풀면서 막대한 재원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현재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약 7%p 끌어올리는 데 쓰겠다고 한 돈은 5년간 30조6000억여 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먼저 국민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약 21조 원인데, 정부는 이 가운데 10조 원만 사용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재정 누수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증세 없는 복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마른 수건을 짜서 마련할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따라 나온다.

    게다가 국민건강보험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악화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3월 지속적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국민건강보험 지출이 지난해 52조6000억 원에서 2025년 111조6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국민건강보험 국고보조금(올해 6조9000억 원 수준) 확대와 국민건강보험료 인상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둘 다 여의치 않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으로 이미 복지예산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국민 부담을 고려해 향후 5년간 보험료 인상률을 지난 10년(2007~2016) 평균 인상률(3.2%)과 비슷하게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임기 동안은 현재 확보된 국민건강보험 누적 적립금 등으로 어떻게 버티더라도, 그 뒤엔 큰 폭의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국민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언젠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하고, 정부도 이에 대해 국민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정부가 30조 원을 마련해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70% 목표를 이룬다 해도 여전히 OECD 평균(80%)에 크게 못 미치는 만큼, 장기적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이제라도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국민 부담 증가’를 논의 테이블에 함께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 프랑스, 일본의 2012년 기준 국민건강보험료율(보험료율)은 각각 15.50%, 13.85%, 9.48%로 2017년 한국(6.12%)에 비해 3~9%p 높다. 정부는 8월 말 내년 보험료율을 6.24%로 인상한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관건은 국민이 ‘고부담-고복지’에 동의할지 여부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건강보험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 장기 재정 전망을 밝힐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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