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커버스토리

스타트업이 참기름, 맥주 판다고?

취약한 수익구조 때문에 ‘되는 곳에만 투자하는’ 보수화 현상 일어나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8-04 16: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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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 창출과 4차 산업혁명을 한번에 해결할 것이라며 만능 유망주 대접을 받던 스타트업이 위기에 처했다. 정재계의 집중적인 지원이 시작된 지난 정부 이래 처음으로 투자 규모가 감소했기 때문. 혹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일시적으로 줄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보다 벤처캐피털 중심으로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재편돼 투자 정체 현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벤처캐피털의 투자 동향이 이미 수익구조를 갖춘 업체에 집중되는 등 투자 보수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 따라 휘청대는 스타트업 투자

    2012년부터 스타트업은 각 기업과 정부의 집중 지원이라는 특별대우를 받아왔다. 고용의 80%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만큼 스타트업 창업을 통해 고용이 창출되면 실업난을 해소하는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스타트업은 단순 창업과 달리,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여느 자영업에 비해 스타트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경제 먹을거리를 찾는 첨병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자금 지원, 투자 독려 등 스타트업 장려책을 펴왔다. 2015년에는 각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해 영세 스타트업에게 업무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대기업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출범 당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6 대 4로 나눠 475억2400만 원 예산을 투입했고, 센터별 담당 대기업에서도 수십억 원씩 지원금을 냈다. 그 덕에 2015년 한 해에만 1013억2400만 원이 모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은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부터 대기업의 지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 지난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투입된 예산은 총 727억4700만 원이다. 정부가 내놓은 자금은 543억4700만 원으로 2015년에 비해 늘었지만 대기업의 지원액이 184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는 대기업 지원 자체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 정부가 17개 사업에 할당한 예산은 590억4400만 원. 역대 최대 지원액이다. 하지만 지자체부터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서울시 자체 창업지원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대전, 경북, 전남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예산을 일부 삭감했다.



    대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후 태도가 변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의 연례 경영보고서에 창조경제라는 문구가 빈번하게 사용됐으나 올해부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3월 삼성전자는 대구에 세운 스타트업 육성단지 이름을 ‘삼성창조경제단지’에서 ‘삼성크리에이티브캠퍼스’로 바꿨다.

    업계에서는 탄핵 국면 이후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 스타트업 컨설팅사 관계자는 “창조경제가 지난 정부의 핵심 사업이던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자 대기업에서 자금 투입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스타트업이 조달하는 신규 자금 가운데 대기업이나 정부 자금의 비중이 가장 컸는데, 이처럼 정책 관련 투자가 대폭 감소하면 스타트업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대부분이 스타트업에 당초 약속한 지원액까지만 지급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안다.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이 일부 있지만 이들도 투자나 자금 제공 같은 직접 지원보다 업무공간 제공이나 직원 파견 등 간접 지원만 이어나갈 전망”이라고 밝혔다.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안 돼, 수익 나야 투자

    정부 정책을 통해 지원받는 금액은 대폭 감소했지만 벤처캐피털 등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투자는 여전히 일정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발표한 ‘2016년 신규 벤처펀드 조성 및 신규 벤처투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의 신규 출자액 중 민간자본이 크게 늘었다. 스타트업 초창기인 2012년 민간자본으로 이뤄진 벤처캐피털 투자액은 4827억 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조188억 원까지 증가했다. 벤처캐피털의 총 투자액에서 민간자본의 비중도 같은 기간 59.8%에서 63.1%로 상승했다.

    이처럼 매년 민간투자가 늘어나지만 스타트업계에서는 항상 투자받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의 창업 지원 기조에 힘입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자금 압박으로 3년 만에 정리한 정모(29) 씨는 “민간투자든, 정부투자든 투자받던 업체가 주로 재투자를 받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익이 나는 스타트업에 투자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어 신규 업체가 비집고 들어가 투자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투자가 일부 업체에 집중되거나 수익이 나는 업체에 중복 투자된다는 점은 벤처캐피털 관계자들도 알고 있었다.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과 멘토링 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매쉬업엔젤스의 이택경 대표는 “지난해부터 이익이 확실한 스타트업만 지원하는 투자 보수화 경향이 짙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종 통계에서 투자액이 늘어났다고 드러난 만큼, 아직 투자 분위기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용자 수 등 서비스 지표만 좋아도 투자가 이뤄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투자자가 수익모델까지 확인하는 등 확실하게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에 투자하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투자는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 정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뉜다. 창업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할 창업 멤버만 있는 상황에서 투자가 진행될 경우 이를 ‘에인절투자’라 부른다. 에인절투자자는 사무실이나 인건비 등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댄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규 스타트업이 대부분 에인절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창업자가 이 비용을 대고 있다.

    이 단계를 거쳐 스타트업은 시제품을 내놓게 된다.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자신이 내놓은 서비스나 제품의 시장성을 검증할 수 있다. 가입자가 증가하고 긍정적 피드백이 많아진다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방증인 셈. 이때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수익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돈을 투자받게 되는데 이를 시드투자라 부르며, 사업 진행 상황에 따라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로 구분한다.

    통상적으로 시리즈A는 정식 서비스 개발 단계에서 투입된 투자 자본을 의미하고, 시리즈B와 C는 이미 정식 서비스가 진행돼 마케팅 등에 들어가는 부대비용 투자를 말한다. 최근 벤처캐피털 등 민간투자사가 에인절투자나 시리즈A 투자보다 비교적 이익이 보장되는 시리즈B, C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타트업은 대부분 창업조달비용을 정부정책지원금이나 대출에 의지한다. 2015년 11월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창업한 1만2000여 개 스타트업이 조달한 신규 자금은 평균 4억8600만 원이다. 이 중 정부정책지원금의 비중이 46.1%로 가장 높았고 일반금융대출이 32.9%로 뒤를 이었다. 한편 벤처캐피털, 에인절투자의 비중은 각각 0.4%에 불과했다.



    요식업도 수익구조 확실하면 스타트업?

    수익구조가 확실한 기업 위주로 투자가 진행되다 보니 과거 일반 자영업으로 분류되던 업체도 벤처캐피털이나 스타트업 보육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올해 초 수제맥주 전문업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ABC)’가 미국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투자사 ‘알토스벤처스’와 국내 벤처캐피털 회사 ‘본엔젤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두 회사의 투자액은 수십억 원 선으로 알려졌다.

    ABC 외에도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맥주 전문업체가 많다. 지난해 말에는 충북 음성에 맥주공장을 둔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가 ‘에이치비인베스트먼트’로부터 50억 원가량을 투자받았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서울 강남 수제맥주 가게로 출발한 ‘플래티넘맥주’에 30억 원을 투자했다. 서울 이태원의 ‘더부스 브루잉 컴퍼니’도 IBK캐피탈 등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곳은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던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대니엘 튜더가 직접 개업한 수제맥주 전문점으로 이름이 났다.

    2012년 창업한 ‘쿠엔즈버킷’은 참기름 회사다. 현재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인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있다. 쿠엔즈버킷이 지원을 받은 이유는 해외에서도 각광받을 수 있는 참기름을 개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최근 스타트업 투자업계는 정보기술(IT) 위주의 기술 창업 시장에서 요식, 화장품, 교육업체로 투자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간 투자를 집중해왔던 게임, 숙박 예약, 배달 등 O2O(Online to Offline) 업계의 투자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 일례로 넷마블과 함께 초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네시삼십삼분(4:33)이 있다. 4:33은 2015년 기업가치 5000억 원이 넘는다는 평가에 따라 많은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2년째 적자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에 투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IT나 콘텐츠 사업 등 전 정부가 지원하던 방향으로 창업한 일부 업체에서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앱 기반 콘텐츠 유통계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모(33) 대표는 “2015년 말까지만 해도 기술 창업 위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확실한 청사진이 있었다. 아이디어 상품 제조나 새로운 유통구조 개발로 이미 일정한 수익이 나는 업체도 앱 등 IT 연계 사업 계획이 없으면 정부나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기 어려웠다. 이전에 운영하던 업체도 연매출 1억 원에 가까울 정도로 수익을 냈으나 자금이 부족해 사업 확장이 여의치 않자 손해를 보기 전 폐업했다. 이후 지난해 여름 겨우 개발자를 구해 새 사업팀을 꾸렸지만 정부 지원이 줄고 민간투자 풍토도 바뀌어 또 투자자를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한탄했다.

    수익이 나는 곳에 투자가 몰리다 보니 투자받는 업체만 계속 투자를 받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국내외 스타트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의 신규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2010년 1조910억 원에서 2015년 2조858억 원으로 증가했다. 투자받은 업체 수도 같은 기간 560개에서 1045개로 늘었다. 비율로 따지면 2015년 기준 전체 벤처기업의 3.3%가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신규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0년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이미 받았거나 투자받으려 협상 중이라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은 10.5%. 하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2.3%로 감소했다. 투자액은 증가하고 있지만 신규 업체에 대한 투자가 늘지 않아 투자받는 기업의 비율이 줄어든 것.



    투자 줄었다고 확신할 수 없어

    최근에는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감소했다. 스타트업 전문매체 ‘플래텀’이 매달 발간하는 ‘스타트업 투자동향’ 6월 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는 지난해 투자 실적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총 126건, 약 4353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지만 올 상반기에는 총 116건, 약 3049억 원으로 투자 총액이 전년 대비 31%가량 감소했다.

    한 콘텐츠큐레이팅 스타트업에서 2년간 일해온 이모(28·여) 씨는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두고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이씨는 회사 창립 전부터 프로젝트 팀에서 일한 원년 멤버였다. 창업 초기에는 좋은 에인절투자자를 만나 5000만 원을 투자받아 웹과 앱 개발에 돌입하는 등 승승장구였다. 하지만 정식 서비스를 앞두고 투자가 끊겼다.

    이씨는 “1년간 대표와 함께 투자자를 확보하려고 애썼다. 아이디어만으로도 투자받은 경험이 있어 초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점점 줄어들고 어렵게 투자자를 만나도 수익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매번 투자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올해 상반기 실적만으로는 스타트업 투자가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이 없어지거나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해당 사업을 계속 수행할 예정이다. 정부 지원 사업의 틀이 잡히면 추후 대기업이나 벤처캐피털 등 민간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스타트업 투자 규모에 대한 다양한 통계가 있으나 비공개 투자도 많은 만큼 정확한 수치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있다. 각 벤처캐피털도 올해 투자 규모를 줄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 물론 기술 창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는 지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IoT(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의 수가 현저히 적어 투자할 기업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플래텀과 다른 통계를 내놨다. 8월 2일 상반기 벤처기업 투자 규모가 992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늘었다고 발표한 것. 이는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이 아니라 정부가 벤처캐피털에 투자한 자금까지 포함한 수치다.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투자과 과장은 이날 발표를 통해 “추경 출자 사업으로 하반기 벤처 펀드 결성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신생 펀드가 늘어나는 등 투자 분위기가 활성화돼 하반기 투자액도 지난해에 비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창업 환경 위기 vs ‘체리 피커’ 구축

    정부의 낙관적 전망에도 스타트업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지원 기준마저 바뀔 수 있기 때문. 익명을 요구한 창조경제혁신센터 한 입주기업 대표는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이 과거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위주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지역 소상공인, 골목 상권 위주로 바뀐다는 소문이 돌아 불안해하는 업체가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익을 내는 스타트업 위주로 투자가 이뤄지는 것에 순기능도 있다고 진단한다. 사업을 오래 해나갈 수 있는 검증된 업체 위주로 투자가 이뤄지면 창업은 뒷전이고 각종 지원금만 노리는 얌체 업체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것.

    4년간 O2O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송모(35) 씨는 “지난 정부에서 청년실업 해결의 일환으로 학생 창업을 독려했다. 하지만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은 직장에서 경력을 쌓은 창업자에 비해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생은 성공적인 창업은 애초 포기하고, 창업대회 등에 참가해 지원금을 받은 뒤 이를 활용해 대기업 입사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고 들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 시장의 변동은 과거 정부 지원에만 기대던 ‘체리 피커’ 업체를 솎아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폐업 막기보다 재도전 환경 만들어야최근 스타트업 투자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자 스타트업이 대거 폐업 위기에 놓였다. 과거 각광받던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타트업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며 투자가 줄어들자 확실한 수익구조가 없는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일각에서는 스타트업 폐업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폐업을 경험한 창업자일수록 재창업 성공률이 높으니 폐업 시 창업자에게 돌아가는 부담을 줄여 재도전을 쉽게 하자는 것.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의 5년 내 폐업률은 75%에 달한다. 창업 이후 10년간 기업 운영이 지속될 확률도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높은 폐업률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창업 국가로 불리는 이스라엘도 스타트업 폐업률이 높은 편이다. 이스라엘하이테크벤처캐피털(IVC) 통계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4년까지 15년간 이스라엘에는 총 1만185개의 스타트업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중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는 벤처기업은 총 254개로 성공률이 2.5%에 불과하다. IVC에 따르면 그간 개업한 스타트업의 46%가 초기 투자도 유치하지 못한 채 폐업하거나 투자받더라도 4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계속 늘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2012년 19억 달러(약 2조1400억 원)에서 2014년 44억 달러(약 4조9600억)로 2배 이상 늘었다. 사울 레이키만 이스라엘 챌린지펀드 부회장은 “이스라엘은 창업률이 높은 만큼 실패율도 높지만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실패를 해봐야 성공하는 법을 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가 재창업에 도전했을 때 신규 창업 도전자에 비해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유호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의 ‘SW창업 생태계 정책 분석’ 보고서는 폐업 경력이 있는 창업자와 신규 창업자의 업체 성장 속도를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를 △시장성 검증 △사용자 확보 △매출 발생 △사업 성장 등 4단계로 나눴다. 이때 신규 창업자의 기업은 한 단계씩 성장하는 데 평균 7.9개월이 걸렸지만 폐업을 경험한 창업자의 성장 속도는 6.4개월로 신규 창업자에 비해 훨씬 빨랐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스타트업 가운데 절반이 문을 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폐업을 막는 것이 아니라 폐업 후 재도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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