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9

2017.08.02

르포

청와대 인근 두 달째 시위 중 “시위대 답답한 마음 알지만 우리도 살아야죠”

소음, 이동 불편에 민원 제기 잇따라…근처 맹학교 학생들 소리 민감해 수업 방해 심각

  • 박세준 sejoonkr@donga.com

    입력2017-07-31 1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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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 때문에 아이들의 통학로를 바꿨어요. 더 먼 거리를 걸어와야 하는 거죠.”

    서울 종로구 효자동 인근 장애인 교육시설 관계자의 말이다. 7월 24일 종로구 신교동 교차로의 효자로 방면은 시위대로 번잡했다. 이 관계자는 “오늘은 그래도 시위 규모가 작은 편이다. 심한 경우에는 아예 교차로를 이용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효자로 인근은 촛불집회 때도 시위가 잦았지만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는 매일 열리다시피 하고 있다. 두 달 넘게 시위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불편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시위대를 뚫고 집이나 학교를 오가는 일이 쉽지 않고, 시위대의 확성기 소음에도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위가 빈번한 장소 인근에는 시각·청각장애인 교육시설이 자리해 장애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시각장애 학생에겐 천둥소리”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를 따라 올라가는 한가로운 서촌의 풍경은 딱 통인시장까지였다. 통인시장을 지나자 확성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7월 24일 효자로를 점거한 건 전국농민회총연맹이었다. 이들은 영주, 봉화, 영양 등 경북 북부지역을 덮친 우박으로 농작물이 심각한 피해를 입자 정부에 실질적 재해보상을 요구하고자 거리로 나선 것.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른 시위 참가자들은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구호를 목청껏 따라 외쳤다.



    이날 시위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불편함과 억울함을 정부에 알리는 중요한 행사였지만, 인근 주민의 시각에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시끄러운 불청객에 불과했다.

    효자로 근처에 사는 정모(37) 씨는 “좋은 음악도 한 달 내내 틀면 지겨운데 하물며 시위대의 구호와 확성기 소리가 매일 들리는 것은 고역”이라고 말했다. 시위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임모(34·여) 씨는 “청와대 앞이라 시위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해 하반기 촛불집회 때부터 이곳이 광화문광장처럼 시위의 메카가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말처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사거리는 매일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7월 기준 이곳에서 집회를 열겠다는 신고만 하루 평균 10건이다. 소음도 심각한 수준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따르면 주거지역, 학교, 종합병원, 공공도서관 등 지역 인근에서 집회를 할 때는 주간에는 65dB(데시벨) 이하, 야간에는 50dB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시위대의 소음이 이 기준을 넘는 경우가 적잖다. 

    게다가 인근에는 청운초·중, 경복고 등 교육시설이 있어 학부모들의 불만도 크다. 경복고 학생의 부모라고 밝힌 한 주민은 “고3 수험생들이 공부하는 학교 인근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것도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집회를 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시위 현장 맞은편에는 세종마을 푸르메센터(종로장애인복지관)를 필두로 국립서울농학교(서울농학교), 국립서울맹학교(서울맹학교) 등 장애인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맹학교는 시위 소음 피해를 가장 크게 입고 있었다. 서울맹학교 한 관계자는 “앞을 못 보는 학생들은 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반응도 일반인보다 클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확성기 소리는 일반인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당연히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다. 얼마 전 방학을 해 학생들이 없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도 시위가 줄어들 것 같지 않아 다음 학기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 정문은 물론, 비교적 안쪽에 자리한 중등부 건물에서도 확성기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공공기관이라 출입 막지도 못하고”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기 힘든 일부 시위 참가자는 인근 상가나 편의점에 들어가 더위를 피했다. 한 편의점 내부 테이블에는 시위 참가자가 여럿 앉아 있었고, 어떤 시위 참가자는 술을 마시려다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인근 주민 박모(29) 씨는 “그래도 오늘 시위 규모는 작은 편이다. 대규모 시위가 있는 날이면 도로는 물론, 인근 관공서와 상가까지 시위 참가자로 꽉 찬다”고 말했다.

    시위라는 특수한 원인이 있긴 하지만 청운효자동에 사람의 발길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상가 매출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근처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48) 씨는 “(시위대가) 음식을 주문하거나 물건을 사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게다가 화장실을 엉망으로 사용하자 근처 상가가 대부분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상황”이라고 밝혔다.

    결국 긴 시위에 지친 참가자들은 휴식을 취하고 화장실도 쓰기 위해 관공서 문을 두드린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 가운데 하나가 세종마을 푸르메센터(센터)다. 1층에 카페가 있고 병원시설도 자리해 센터는 쾌적한 온도를 유지한다. 장애인 시설인 만큼 화장실도 넓고 깨끗하다. 7월 24일 오후에도 센터 1층 카페 테이블에 빨간 띠를 내려놓은 사람이 여럿 보였다.

    센터 관계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니 몰려오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매번 부탁하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1층 장애인 전용 화장실까지 쓰는 경우가 많아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센터에는 장애인의 재활 및 치료를 위한 병원시설과 성인 장애인을 위한 교육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 유지가 필수적인데 매일 반복되는 시위에 점점 무너지고 있는 것. 예를 들어 복지관에는 병원시설이 있어 건물 주변이 모두 금연구역이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 일부가 복지관 건물 아래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곤 한다. 센터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내려가 금연구역임을 매번 알려주지만 조금 지나면 또다시 담배연기가 올라온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산책 나가본 게 언젠지”


    센터는 공공시설이라 민간 상가처럼 시위 참가자가 들어오는 걸 막거나 화장실 사용을 금지할 수 없다. 센터 관계자는 “복지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뿐이다. 그분들도 여기까지 찾아와 시위를 해야 할 만큼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금만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효자로 입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소속 사내하청기업 노조의 천막이 들어서 있었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6월 7일부터 장기 천막 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천막은 교차로 네 귀퉁이의 한 블록을 덮을 정도의 크기다. 이 때문에 일부 보행자는 차도로 내려와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려야 한다.

    시위대 규모가 크면 통행이 제한되는 도로도 그만큼 늘어난다. 이 때문에 서울농학교와 서울맹학교 학생, 센터 방문자는 5월부터 신교동 교차로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맹학교 관계자는 “대다수 학생이 스쿨버스로 등교하는데 시위대가 교차로를 점거하면 스쿨버스가 오가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등교 우회로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시위대가 주차장 앞까지 점거하면 거동이 힘든 분들은 복지관에서 나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주차장 앞 차가   움직일 공간은 비워달라고 말씀드린다. 하지만 최근 날씨가 더워서인지 주차장 입구 그늘에 사람들이 항상 서 있다”고 말했다.

    서울농학교 관계자는 “이전에는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인근 공원이나 유적지로 산책 또는 체험학습을 가곤 했는데 요즘은 시위대 때문에 거의 나갈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또 “학생들에게 집회나 시위 현장을 보여주고 표현의 자유를 교육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시위가 거듭돼 일상에서 불편함과 답답함을 겪는다면 시위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 없다. 이를 생각해서라도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시위가 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주민은 구청에 연이어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은 금속노조에 천막 퇴거명령을 내린 상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7월 31일까지 퇴거하라고 했다. 퇴거가 끝나면 보행 불편도 일부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청운초 근처에 사는 이모(34) 씨는 “천막보다 대규모 집회 때문에 통행 불편을 겪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람이 사는 데다 학교도 밀집한 곳이니 (효자로에서) 대규모 집회는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잇따른 민원 제기에도 시위를 막거나 자제시킬 방법이 거의 없어 주민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윤모(43) 씨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센터 관계자도 “소음 발생 및 시설 점거 등의 이유로 구청과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밝혔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사실 불법시위 여부는 경찰이 법에 의거해 판단하는 것이다. 구청이 하는 일은 불법점거가 발생하면 퇴거명령을 내리거나 이를 집행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나 시위가 법을 어기지 않으면 제재할 근거가 없다. 다소 불편하겠지만 당분간은 인근 주민들이 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듯하다”고 밝혔다.

    이에 청운효자동주민대표단은 7월 20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방문해 ‘동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 집회·시위를 제한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주민대표가 모여 정식으로 집단 민원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이 탄원서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민원 해결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주민자치단체 관계자는 “현재 법원에 집회 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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