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5

2020.11.20

문파들이 박근혜를 싫어하는 이유 [서민의 野說-3]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2020-11-17 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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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의 ‘야설(野說)’은 격주 화요일 ‘주간동아’ 온라인 채널에 게재됩니다. 제도 정치권 밖(野)에서 바라 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서민 교수의 날카로운 입담(說)으로 풀어냅니다. <편집자주>
    서민 교수. [동아DB]

    서민 교수. [동아DB]

    “헌법 17조에 보장된 사생활의 내용에 대해 외부적인 간섭을 받고 타의에 의해 외부에 공표됐을 때 인간 존엄성 침해 내지 인격적인 수모를 느끼게 된다.” 

    2016년 2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도·감청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테러방지법을 상정한다. 수적으로 밀렸던 야당은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강행하며 법안 저지에 나섰는데, 위 발언은 당시 16번째 반대 토론자로 나선 추미애 현 법무장관이 했던 말이다. 4년 전 발언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추장관이 추진하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공개법’이 당시 그녀가 했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놀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문 대통령 (이하 문통)을 비롯한 현 정권 인사들이 지난 몇 년간 지겹도록 보여줬던 것이니 말이다.

    의아한 것은 문통 지지자들의 반응이다. 그간 정부가 하는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마저 반대성명을 낸 ‘강제공개법’에 대해 ‘문빠’(열렬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은 가관이었다. “다른 분은 몰라도 추 장관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전 끝까지 지지하겠습니다.” “떳떳하면 비번 못 깔 일이 뭐가 있나요? 구린 짓을 하니까 비번을 못 까는 거죠.” 누군가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우려하자 또 다른 이가 나선다. “그놈들은 빈대가 아닙니다. 초가삼간 다 태워서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초가삼간도 태워야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안 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된 권리, 조국 전 장관이 검찰조사나 재판에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조국이 이 권리를 행사했을 때 “장관님, 힘내세요” “꼭 승리하십시오”라고 칭송하던 이들이 헌법상의 자기방어권을 침해하는 추 장관의 법안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광경은 그로테스크했다.

    박근혜 정권 내내, 난 박 전 대통령 (이하 박통)을 싫어했다. 2주마다 썼던 신문 칼럼의 주제는 모조리 박통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그게 책 한 권 분량이 돼서 결국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난 왜 그렇게 박통을 싫어했을까? 박통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박통은 국회와 사법부를 모두 자기 밑에 있는 이들로 간주했으며, 그들이 자기 뜻에 따르지 않을 땐 짜증을 냈다. 언론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도 못 견뎌 했던 박통은 국민의 저항에 대해서마저 비슷한 반응을 보여, 경찰의 과잉진압이 늘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그래서 난 문빠들이 박통을 최악의 대통령으로 언급하는 것도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했건만, 위에서 보듯 문빠들은 문재인 정권이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행위에 오히려 환호를 보낸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박통을 싫어했을까?

    첫 번째 설, 박통이 경제를 망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미국 대통령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유명한 선거 구호를 내걸었던 것처럼, 경제는 대통령의 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사실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디 있는가. 경제를 잘 살렸는지 알아보는 지표 중 하나가 경제성장률, 박통 시절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3% 정도로, 매년 세계 평균을 상회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18년 성장률은 2.7%로 떨어지는데, 이 당시 세계 평균은 3.0%였다. 2019년은 어떨까. 민간부문이 너무 침체된 탓에 정부가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경제성장률은 2.0%에 그쳤다. 같은 시기 세계 평균은 2.9%였다. 이는 금융위기를 겪던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 물론 코로나 이후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좋지만, 이는 방역의 성과일 뿐 경제를 잘 이끌었다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올려놓은 집값까지 고려하면, 문통이 경제를 가지고 박통에게 들이대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두 번째 설, 박통은 국민생명에 관심이 없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박통의 대처는 최악이었다. 사저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다가,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때 중앙대책본부에 나왔다.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유명한 발언은 박통의 상황인식이 어떤지를 잘 보여줬고, 이는 탄핵으로 가는 이유가 됐다. 이 장면을 누구보다 규탄했던 문통은 국민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건만, 지난번 일어난 공무원 피살사건 당시 문통의 대처는 그저 아쉬웠다. 표류하던 공무원이 총에 맞고 불태워지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그날 새벽에 열린 안전보장회의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참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해당 공무원을 월북자로 몬 것은 최악이었다. 박통의 7시간을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문통은 자신의 47시간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내친김에 이 말도 해야겠다. “그래서, 세월호 진상은 밝혀내셨나요?”

    세 번째 설, 박통은 남북관계를 망쳤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시작된 개성공단 사업은 박통이 일방적으로 철수를 지시함으로써 종료되고 만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아쉬웠기에, 난 문통이 남북관계만큼은 가깝게 만들어주길 바랐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 성사되던 때만 해도 이 바람이 실현되는 줄 알았건만, 남북관계 개선은 그리 쉽지 않았다. 물론 이게 다 문통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엄연히 우리 재산인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국가 원수에게 ‘삶은 소대가리’ ‘냉면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 같은 막말을 하는데도 아무런 반박도 못한 채 눈치만 보는 장면을 보면, 우리가 주권국이 맞는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상에서 보듯 주요 부문에서 문통은 박통보다 잘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자회견 횟수마저 ‘불통의 상징’인 박통에 미치지 못하니, 문통이 박통보다 잘한 게 단 하나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빠들이 박통을 싫어하고 문통에게 아낌없이 지지를 보내는 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과 관계없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문통의 외모가 그 중 한 이유라고 말한 건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82쿡’(82cook) 같은 맘카페에선 문통과 조국의 외모가 꽤 자주 언급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으리라. 신기한 건 그 다음, 잘생겨서 지지한다는 내 발언에 대해 맘카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어휴, 꼭 기생충처럼 생겨서.” “부러웠구나. 거울을 부숴.” 야당 일각에서 홍정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도 이 때문, 그래서 이런 잠정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며, 박통도 문통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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