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6

2015.12.09

“골칫덩이 KFX T-50 기술로 우회해야”

고등훈련기 개발 1등 공신의 파격 제언…“가장 성공 가능성 높은 방식”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5-12-07 10: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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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칫덩이 KFX T-50 기술로 우회해야”

    11월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한국형전투기(KFX) 사업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전영훈 골든이글공학연구소장. 뉴시스

    밀고 당기기. 그런데 영 즐겁지가 않다. 연인 사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어서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의 현실이 그렇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2개 엔진을 탑재한 원안대로 KFX 사업을 진행하려 하고, 반박(反朴)을 필두로 한 국회는 ‘그렇게는 못 한다’며 딴죽을 걸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 길인가.
    결론부터 밝히자. 방사청이 밀어붙이는 원안은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그림이다. 시장성이란 KFX가 개발됐을 때 해외 판매 여부다. 방사청 바람대로 순조롭게 개발된다 해도 가격이 비싸면 팔릴 리 없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명품 전차 K-2를 만들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우리 육군조차 적게 사려고 애쓰는 사태를 맞은 것이다. 수출은 제로(0)다.
    전투기 개발은 그야말로 ‘시작이 반’이다. 어떻게 시작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인력이나 회사가 맡아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한국은 T-50 고등훈련기 사업에 성공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경험을 KFX에 반영해야 하겠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T-50 개발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예비역 공군 대령인 전영훈 박사다. 그는 아무도 항공의 ‘항’ 자조차 쳐다보지 않던 시절 고등훈련기를 개발하자는 도발적인 주장을 폈다. 시작은 공군 설득이었다. 공군기는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기종을 사오는 게 훨씬 돈이 적게 든다. 1990년대 공군은 ‘지갑’이 매우 얇았기에 ‘공군기 개발’이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를 했다. 그가 한주석 당시 공군참모차장을 설득한 논리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문제는 시장성이다”

    “공군은 좋은 전투기를 갖고자 애쓰지만 현실을 알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미군이 도와주기만 하면 우리는 전투기를 출격시키지 않아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전투기가 있어도 싸우지 못한다.
    팔레비 국왕이 이끌던 시절 이란은 미국으로부터 당시 최강 전투기였던 F-14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1979년 호메이니가 팔레비를 내쫓고 반미로 돌아서자 미국은 F-14용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 그 결과 이듬해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은 단 한 번도 F-14를 출격시키지 못했다.
    북한이 침공하면 미국은 같이 싸워줄 것이다. 그러나 독도 문제 등을 놓고 일본과 충돌한다면 어느 쪽도 지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부품이 떨어지면 우리는 더는 공군기를 출격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 F-1 전투기를 제작해냈고 F-2 전투기는 거의 개발했으므로, 이들 기종을 활용해 계속 공격해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공군기를 만들자. 시작은 일본처럼 고등훈련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 읍소를 받아들인 한주석 참모차장은 공군이 필요로 하는 고등훈련기의 도입 시기를 연장해 전 박사에게 T-50의 탐색개발을 시도해볼 시간을 만들어줬다. 항공기를 만들려면 먼저 탐색개발을 통해 자신감을 축적한 다음 체계개발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체계개발부터 큰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는 F-16 120대를 도입하는 과정이었으므로, 그 제작사인 미국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지원받아 T-50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전 박사는 록히드마틴이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 F-22와 F-35를 개발하고 있는 데 주목해 5세대 전투기를 위한 고등훈련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고등훈련기는 전부 아음속이었지만, T-50은 초음속으로 개발하고 비행 성능도 저급(low) 전투기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만들고자 한 것. 미국 고등훈련기시장을 노려보자는 일종의 유혹이었다. 록히드마틴 측은 이를 알아듣고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대니얼 텔렙 당시 록히드마틴 회장은 “이는 시장을 보고 내린 결정이다. T-50은 록히드마틴이 개발을 주도한다”며 13% 투자를 결정했다.
    이렇듯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 T-50은 개발됐다. 그러나 5세대 전투기로 건너가기 위한 고등훈련기이다 보니 값이 비쌌다. 애초부터 사주기로 한 한국 공군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사려 하지 않았다. F-5 전투기를 도태시켜야 하는 한국 공군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T-50을 개조한 경전투기 FA-50 제작을 요구했다. 결국 FA-50마저 세상에 나오자 수출 봇물이 터졌다. 마땅한 전투기가 없어 고민하던 가난한 국가들이 FA-50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무렵 미국은 고등훈련기 1000여 대를 도입하는 TX 사업을 개시할 공산이 크다. 이 훈련기가 요구할 성능에 가장 접근한 게 약간의 무장 능력을 갖춘 FA-50이다. 이 사업을 따내면 한국은 순식간에 주목받는 항공 국가로 일어설 수 있다. 전 박사는 이렇듯 이미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T-50 시리즈를 토대로 KFX 사업을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자”

    “골칫덩이 KFX T-50 기술로 우회해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형상으로 결정한 쌍발형 모델. 사진 제공 · 국방과학연구소

    T-50은 훈련기다. 교관과 학생 2명이 타야 하므로 복좌기로 설계됐다. FA-50은 기본설계는 그대로 두고 무장만 붙인 것이므로 역시 복좌기다. 이를 토대로 단좌 전투기인 F-50을 만들자는 게 기본 아이디어다. 좌석을 하나 없애면 연료나 무장을 더 실을 수 있으므로 작전 능력이 증가한다. T-50과 FA-50에는 F-404 엔진이 탑재되는데, 지금은 성능이 더 좋은 F-414 엔진이 시장에 나와 있다. F-414 엔진을 넣는다면 파워와 동체를 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작전 능력은 다시 한 번 더 커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개조작업을 위해서는 기골을 강화해야 하므로 설계 변경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이미 검증된 FA-50을 토대로 하는 변경이므로 아예 처음부터 새로 설계하는 것에 비하면 비용은 절반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전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항공기 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전투기를 발전시켜왔다. F-50은 F-4나 F-16에 크게 뒤지지 않으니 그 후속기종이 될 수도 있다.
    F-50이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F-5와 F-16을 잇는 후속기종이 된다면 말 그대로 대박이다. 한국은 FA-50과 미국의 TX에 이어 3연속 홈런을 노릴 수 있게 되는 셈. 전 박사는 이에 주목해 “시장이 나오지 않을 KFX 사업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미래 시장이 보이는 F-50 제작으로 KFX 사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박사 주장의 핵심적 근거는 KFX가 고급(high) 전투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KFX는 F-16이나 F-4 후속에 해당하므로, 어차피 고급 전투기인 F-15나 F-22, F-35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장 창출이 불투명한 KFX에 ‘올인’하는 대신, 적은 돈으로 시장성이 있는 TX와 F-50 사업에 전념하고 남는 돈으로는 F-35 같은 고급 전투기를 도입하는 게 공군력을 한층 더 키우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는 동안 TX 및 F-50 사업이 성공할 경우 자본과 기술은 고스란히 한국 몫이 될 것이므로 그 후에 KFX급 전투기 개발에 도전하거나 공대공미사일과 엔진, AESA(능동형위상배열) 레이더 등 핵심 부품 개발에 나서자는 것이다. 한국은 전 박사의 고언에 귀 기울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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