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0

2015.10.26

무기력한 자살예방 핫라인

OECD 회원국 중 10년째 자살률 1위…예산·인력 부족, 전문가 이탈 3중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10-26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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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력한 자살예방 핫라인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길은 OECD를 탈퇴하는 것일 겁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줄곧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국가 차원의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순위는 그대로다. 지난해에도 인구 10만 명당 27.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OECD 평균(2013년 현재 12.0명)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당초 일정에 따르면 2014년 초 나왔어야 할 3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은 연말에나 발표될 예정이다. 송 교수의 발언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자조가 담겨 있다.

    1, 2차 종합대책 결과로 시행된 자살예방정책이 잘 추진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설립했고 전국 각지에 자살예방센터도 문을 열었다. 현재 광역지방자치단체 15곳, 기초자치단체 209곳에서 전담인력이 자살예방사업을 펼치고 있다.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을 가진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자살예방 시스템이 잘 구축된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예방센터는 대부분 지역 병원이나 대학에서 위탁 운영한다. 지역보건소가 직영하는 자살예방센터의 경우도 실무자는 거의 100% 계약직이다. 이들은 대부분 1~2년 단위로 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과 전문성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기력한 자살예방 핫라인

    다리 난간 위에 자살예방 문구를 적어 놓은 서울 마포대교 풍경.

    무기력한 자살예방 핫라인

    서울 한남대교 난간에 누군가 써놓은 ‘나 좀 살려줘’ 글귀.

    전담인력 1명이 예방, 상담, 사후관리까지

    인력 부족 문제도 제기된다. 경남의 한 시 단위 자살예방센터에는 전담인력이 1명뿐이다. 기초자치단체로 가면 이런 지역이 적잖다. 그런데 이들이 해야 하는 업무는 자살예방, 개입(상담), 사후관리이며 예방 영역에는 △자살예방 교육 △자살예방 연구 및 관련 서적 출판 △자살예방 홍보와 언론 관리가 포함돼 있다. 개입은 △정신과적인 상담이나 자살예방에 관한 전반적 상담, 사후관리는 △자살유족 지원 서비스 등을 뜻한다. 이에 대해 경기도의 한 기초자치단체 자살예방센터에서 일하는 정신보건 전문요원은 “아무리 지역이 작아도 한 사람이 수시로 걸려오는 상담전화를 받으면서 자살시도 경험이 있는 고위험군 주민을 방문 관리하고, 자살예방사업까지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사업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자살 위험에 빠진 사람이 가장 쉽게 손을 뻗게 되는 상담전화조차 불통이기 일쑤다. 전화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단체 자살예방센터의 경우 야간시간 등 담당자가 없을 때는 전화가 자동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 자살예방센터로 연결되도록 설정해둔다. 하지만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진 센터 역시 상담전화를 다 소화하는 것이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3년 펴낸 ‘자살예방사업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서울시자살예방센터가 처리한 상담건수는 전화상담 1만9438건, 인터넷상담 1616건, 내소상담 144건, 방문상담 434건 등 총 2만1658건이었다. 담당 직원은 14명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복지부)의 정신건강상담전화도 상반기 동안 460명이 8만561건의 전화에 응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환경에서 충실한 상담과 사후관리가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2008-2013년 6월 자해·자살 내원환자 현황’에 따르면 2차례 이상 자살을 기도한 환자 2970명의 48%가 6개월 이내, 19%는 6개월~1년 안에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3년 자살실태조사에서도 자살시도자 10만 명당 약 700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이에 따라 한 번이라도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살할 확률이 약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된 자살예방사업을 하려면 자살예방센터 문을 두드리는 잠재적 자살시도자들을 충실히 상담하고 사후에도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시도자와 그 가족이 각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사후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해 2회 이상 사후관리를 받은 경우는 0%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전국에서 자살을 시도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는 사람의 92%가 상담 서비스조차 받지 않은 채 귀가하는 실정이다.

    “실무자 인권보다 자살위험자 인권이 중요”

    무기력한 자살예방 핫라인

    자살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전국 교량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만성적 인력 부족은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을 각종 위험에 노출시키는 원인도 된다. 서울의 한 구청 자살예방센터에서 일했던 정신보건전문요원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대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방문 상담의 경우 2인1조로 출동하는 게 원칙인데 인력이 부족하니 여성 정신보건전문요원이 혼자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 경우 상담과 자살예방 조치가 충실히 이뤄지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 활동하는 한 온라인 카페에는 ‘술을 마시고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거나 신체적 폭력까지 시도하는 사람이라도 만나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다. 정신보건전문요원 교육 때 어려움을 호소하니 강사가 ‘실무자 인권보다 대상자(자살위험자) 인권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정신보건전문요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전준희 화성시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은 “자살예방센터 실무자는 대부분 20, 30대 여성이다. 전문교육을 받았다 해도 죽음을 접해보지는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업무 과정에서 자살을 목격하면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응 프로그램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현직 정신보건전문요원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오랫동안 상담해온 자살위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을 봐도 이를 수습한 뒤 그다음 날 출근해 업무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센터장이 배려해 며칠 휴가를 준다 해도 트라우마 극복과 재충전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라며 “주로 선배나 동료들과 대화를 통해 어려움을 이길 힘을 얻는다”고 했다.

    이러한 업무 환경은 자살예방센터 실무자들의 이탈을 부추긴다. 현장에서 40대 이상 전문가를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근무자의 인건비에 부담을 느끼는 수탁기관이 재계약을 꺼려 ‘울며 겨자 먹기’로 퇴직하는 경우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부터 자살예방 분야에서 일해온 사회복지사 출신 정신건강 전문요원은 “상당수 자살예방센터가 사업비의 80% 이상을 인건비로 사용한다. 신입 직원의 연봉이 1800만 원 수준으로 많은 편이 아닌데도 사업비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경력이 길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직원은 ‘내가 퇴직해 한 명이라도 더 뽑게 해주는 게 후배들을 위하는 일 아닐까’라고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자살예방 분야에서 숙련된 인력이 빠져나가고 지속적으로 신입이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큰 손실이다. 강은정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을 효과적으로 예방하려면 상황 발생 시 정신건강 전문가가 경찰과 함께 즉시 현장에 투입돼야 한다. 자살이 미수에 그쳤을 경우엔 시도자를, 자살이 발생한 경우엔 유가족을 안정시키고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도록 유도하는 등 사후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엔 이런 업무를 담당할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이 때문에 박지영 상지대 교수는 “자살은 전화상담 한 번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정부는 자살예방센터 직원의 수를 늘리고 근무 연속성을 보장해 이들이 전문성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복지부의 올해 자살예방사업 예산총액은 89억4000만 원이다. 내년에는 이마저 감액돼 85억2600만 원이 관련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자살 실태를 감안할 때 예산 배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 0.1%로 자살예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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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에 있는 자살기도자 상담실 ‘희망의 숲’에 걸린 화이트보드. 삶을 포기하려다 구조된 사람들이 남긴 글이 적혀 있다.

    정부는 2008년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 발표 당시 ‘2013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 명당 20명으로 감소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현은 요원하다. 특히 20, 30대 젊은 층 사망 원인 1위가 여전히 자살이다. 10대에서도 자살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를 제외하면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만 10대 사망 원인 1위가 ‘운수사고’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문제에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살예방사업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2018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을 20명으로 낮출 경우 2014~2018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은 5조2135억~10조4853억 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12.8명으로 낮추면 총 8조4218억~16조9399억 원의 편익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이채정 국회예산정책처 사회사업평가과 사업평가관은 “자살은 국가 전반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데, 우리나라가 2009~2013년 실질적으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투입한 사업 예산은 약 100억 원에 불과하다”며 “자살예방사업에 대한 정부의 추진 의지와 투자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실에서 자살예방법 제3조 1항 ‘국민은 자살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은 사실상 힘을 잃은 상태다.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1만3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1만3000개의 서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이 문제를 현장에서 하나하나 풀어나갈 전문가 양성과 시스템 구축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범정부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리적 부검’으로 자살률 낮춘 핀란드, 퇴역군인 대처 시스템 구축한 미국

    30.2 → 17.3

    핀란드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다. 앞은 1990년, 뒤는 2010년 수치다. 한때 ‘자살 많이 하는 나라’로 악명 높던 핀란드는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나라로 꼽힌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이 발생했을 때 사망자의 의료기록과 경찰기록 등을 검토하고 주변인을 인터뷰해 구체적 자살 동기, 자살 방법, 심리적·사회적 영향 등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핀란드는 1986년 10년 예정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87년 한 해에만 총 1397건의 자살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했다.

    일본도 정책적 노력으로 자살률을 크게 낮췄다. 2003년 인구 10만 명당 27명에 달하던 자살자 수가 2013년 18.7명으로 줄었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10만 명당 28.7명)와 헝가리(10만 명당 19.4명)에 이은 자살률 3위에 해당하지만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2006년 세계 최초로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한 점, 자살예방사업에 2011년 134억 엔(약 1266억 원), 2012년 236억 엔(약 2230억 원), 2013년 287억 엔(약 2711억 원) 등 꾸준히 예산을 투입한 점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은 특히 2012년 자살자 10명 중 6명(59.8%)이 무직인 것을 확인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하는 등 실태별 맞춤정책을 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1년 시작한 ‘뒤르켐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자살자가 남긴 빅데이터를 분석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와 문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또 미국 사회에서 특히 자살률이 높은 집단인 퇴역군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 범정부적 대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밖에도 뉴질랜드가 청소년과 원주민에 특화된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하는 등 선진국들은 자살의 구체적 원인을 분석해 이에 적용할 대책을 만드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살예방종합대책 발표 당시 다양한 사업을 나열하는 데 그쳐 실질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살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 등을 통해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자살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참고 : ‘자살예방 국가전략 비교 : WHO 프레임워크로 분석한 뉴질랜드, 미국, 아일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호주 및 대한민국의 국가전략’(‘보건사회연구’ 제33권 1호), ‘자살예방사업의 문제점과 개선과제’(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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