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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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낙하산은 없다

공공기관 임원에서 사외이사까지…자격 검증과 감시 없는 인사 사각지대

  • 조창현 정부혁신연구원(사) 이사장·전 한양대 석좌교수 chycho@korea.com

    입력2015-09-07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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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낙하산은 없다

    2012년 7월 6일 부산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물이라도 고인 물은 언젠가는 썩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훌륭한 인재로 시작된 조직이라 할지라도 인사 제도가 지나치게 폐쇄적이면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수요를 파악하기 어렵고, 적절히 대응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청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장점 덕에 적절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인사 제도는 공·사조직을 막론하고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낙하산 인사’는 외부 인사 영입 제도의 변형된 한 형태이나, 외부에서 영입된 모든 인사가 낙하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래 들어 공공기관들이 거듭되는 무자격, 무능, 부적절한 낙하산 인사를 감행한 탓에 외부 인사 영입 제도 자체가 그 빛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였다. 한마디로, 문제는 외부 인사 영입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인사당국의 미숙함과 어설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도 직업공무원이 통상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직급은 1급으로 한정하고 장차관직은 정무직으로 정해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외부 인사 영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인사가 다른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에 비해 말썽이 적은 까닭은 임명권자가 인사를 확정짓기 전 청문회 등 복잡한 인사 검증 절차를 거치면서 당사자에 대한 거품이 빠지고 비리나 부적격성 등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인사 매번 실패하는 이유

    어쩌다 공공기관의 인사는 모두 실패한 낙하산 인사가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무직에는 대통령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출중한 인재를 발탁하려고 노력하는 데 비해, 공공기관의 인사는 정치인인 대통령이 신세를 진 정치인이나 기타 인사 청탁자들의 직장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인사의 근본적 목적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의 검증 및 임명 절차가 국회 청문회는 고사하고 다른 과정조차 허술하고 느슨하게 돼 있는 까닭은 임명권자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는 이들을 되도록이면 말썽 없이 신속하게 소화하기 위해서다. 공공기관 인사의 본질이 단순히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기관의 직책이 요구하는 자격 있는 일꾼을 찾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낙하산 인사는 인사의 기본적 원칙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합리적 절차조차 무시한 직업소개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역대 정권에서 공공기관 임원직에 낙하산 인사가 이뤄질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공공기관의 임원직을 임명권자와 가까운 전직 고관이나 선거운동에 공이 큰 인물들에 대한 논공행상의 보상직위 정도로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이들 공공기관 임원직에 대한 국회 등 외부 기관의 자격 검증이나 언론의 체계적인 감시가 부실했던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다. 그동안 국가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아 집행하는 공공기관 임원급에 대한 인사가 말 그대로 ‘인사의 사각지대’에서 이뤄져왔던 셈이다.

    착한 낙하산은 없다

    해외 부실 정유사를 인수해 1조 원대 국고 손실을 초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낙하산 인사에 따른 국민의 피해는 날로 늘어나고, 그 피해 액수 역시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고 있다. 먼저 MB(이명박)정부에서 벌인 자원외교로 45조 원이 잘못 투자됐는데, 낙하산 인사를 통해 공공기관의 핵심 직위에 오른 이들은 그 직위를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도 모자라 국가적 투자계획을 농락해 막대한 국고 손실을 가져왔다.

    몇 해 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저축은행 부실 및 비리 사건의 원인도 금융권의 낙하산 관행 때문이었다. 금융감독기관의 전·현직 간부가 감독을 받아야 할 저축은행의 주요 간부직에 낙하산으로 취임함으로써 후배 공무원들이 얼마 전까지 상관으로 모신 선배들을 ‘촘촘’하게 감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실한 금융기관에 대한 금융감독 업무가 무력화되는 순간이다.

    그뿐인가. 대기업과 그로부터 하청을 받아야 먹고사는 소형업자 간 불공정거래에 대한 심사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현직 간부가 피검사 회사의 간부직 또는 법률회사의 간부로 앉아 있던 탓에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법과 원칙대로 정부 기능을 수행하려는 수많은 선량한 공무원의 손발을 다름 아닌 낙하산이 묶고 있다.

    “언젠가 나도” 공무원들 밀어주고 끌어주고

    이러한 환경에서는 선배들을 무시한 채 ‘법’대로만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을 인지상정이라고 여기는 게 우리나라의 조직문화다. 현재의 후배 공무원 역시 언젠가는 앞서 퇴직한 선배 공무원들처럼 낙하산의 혜택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도 낙하산 인사에 대한 처벌이 느슨한 또 다른 이유다.

    낙하산 인사의 피해는 비단 물질적 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낙하산 인사가 있는 한 그 조직이나 기관에는 경쟁력 있는 좋은 인사 제도가 자체적으로 정착되는 게 어려워진다. 또한 임원 임기를 무시한 채 들이닥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해 조직은 극도로 정치화되고, 직원들은 조직의 생산성이나 공신력을 높이는 일보다 일찌감치 줄서기에 분주해져 3류 조직으로 전락하기 쉽다.

    이 같은 행태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각 부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년 및 조기 은퇴자의 낙하산 수요다. 조직의 지속적 팽창이나 확대에 한계를 느낀 각 부처에서 날로 적체되는 승진 수요를 해소하는 한 방편으로 조기 은퇴가 거의 제도화된 상태다. 정치적 낙하산이나 행정부의 낙하산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과 한계점은 이 ‘낙하산’들이 자신들이 투입되는 조직 또는 기관의 업무나 기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고, 그 직책에 대한 열정이나 헌신이 내부 출신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낙하산 인사는 공공기관의 자율적인 인재육성을 저해한다. 또한 외부의 부당한 인사 관여를 허용하다 보면 무자격자, 무능력자가 주요한 국가 기능의 전략적·정책적 판단에 오류를 범하기 쉬워 국고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박근혜 정부가 이른바 4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공개혁은 박 대통령이 낙하산인 관피아(관료+마피아)의 뿌리를 뽑겠다며 취임 초부터 강조해온 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관피아가 건재함은 물론, 근래 들어 사외이사직의 39%가 전직 고위공무원이라고 하니 낙하산 인사가 바야흐로 절정에 이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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