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2015.08.17

단순 녹화장치에서 안전 도우미로

5채널에 충격 감지 센서까지…야간 녹화 영상 화질 개선과 AS 보완 필요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8-17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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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 녹화장치에서 안전 도우미로
    블랙박스가 자동차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RS글로벌에 따르면 2008년 4만7000대에 불과하던 블랙박스 판매량은 2010년 38만6000대, 2012년 155만 대, 2013년 195만 대, 2014년 200만 대로 급증했고 시장 규모는 5000억 원이 넘는다. 2014년 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동차 등록대수가 약 2012만 대인 것을 고려하면, 차량 3대 중 1대는 블랙박스를 장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 운전자보험 가입 시 블랙박스를 구매하면 보험료가 3~5% 할인돼 블랙박스는 운전자와 더욱 밀접해졌다.

    블랙박스는 기능과 디자인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영상 녹화와 저장만 가능한 1만 원대 기기부터 차량 앞뒤와 좌우를 촬영하는 100만 원대 기기까지 다양하다. 나날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기 때문에 최신 제품이라도 2년쯤 지나면 기존 가격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블랙박스 기술은 소비자의 선택과 함께 계속 진보해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변신을 거듭한 블랙박스는 얼마나 진화했을까. 그 변화상을 훑어봤다.

    안전 운전 음성안내…KS인증도 도입

    차량용 블랙박스의 초기 모델은 영상을 녹화하고 저장하는 기본 기능만 있었다. 촬영 가능한 방향은 차량 앞쪽뿐이었고, 카메라가 한 개라는 뜻에서 ‘1채널’ 블랙박스라 불렀다. 초기 블랙박스는 영상을 재생하려면 저장용 메모리칩을 개인용 컴퓨터(PC)에 따로 연결해야 해 불편했다. 저장 용량도 8GB(기가바이트), 16GB로 제한돼 며칠 단위로 녹화 영상을 삭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2010년 이후 차량 앞쪽과 뒤쪽을 모두 촬영하는 카메라가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2채널’ 블랙박스다. 이로써 차량 뒤쪽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정황을 기록할 수 있었다. 저장 용량도 32GB, 64GB, 128GB 등으로 다양해졌다. 영상 화질을 결정하는 HD(High Definition·높은 선명도)와 이보다 더 화질이 좋은 풀(Full)HD도 확대 보급됐다. 블랙박스는 화면 해상도에 따라 영상 저장 용량이 달라지는데, 1채널 16GB 블랙박스 기준으로 HD(720×1280픽셀·초당 20프레임 촬영)는 약 8시간, 풀HD(1920×1080픽셀·초당 30프레임 촬영)는 약 4시간 길이의 영상을 저장할 수 있다.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다. LCD(액정표시장치) 모니터를 달아 기기의 작동 상황과 녹화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기존에는 저장 용량이 다했을 때 영상을 지우지 않으면 추가 녹화가 안 되는 단점이 있었는데, 자동으로 이전 영상을 삭제하고 새로운 영상을 녹화하는 ‘오토 포맷’ 기능도 생겼다. 또한 차량 앞뒤뿐 아니라 양쪽 측면 촬영까지 가능한 ‘4채널’ 카메라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더욱 스마트하게 진화했다. 일부 기기는 충격을 감지하는 센서를 부착해 사고 전후 20초를 ‘이벤트 폴더’에 자동으로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안전 운전을 위해 주행 중 차선을 이탈하거나 차량에 이상이 있을 때 음성으로 알려주고 급발진 횟수도 표시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도 추가해 과속 단속구간을 확인할 수 있고, 무선통신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영상을 볼 수 있는 기능도 개발됐다. 기존 ‘4채널’에 실내 급발진 같은 영상까지 촬영하는 ‘5채널’도 나왔다. 이 밖에 위급 상황 시 지인에게 문자메시지 전송, 순간 연비 표시, 화면 절전모드 설정, 앞차 출발 알림, 야간 사고 시 조명 자동 켜짐 등도 새로운 기능이다.

    지난해부터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KS(국가표준)인증을 받는 제조사도 생겼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에 따르면 블랙박스 KS인증제는 2013년 처음 정립됐다. 현재 인증을 받기 위한 주요 요건은 70도에서 정상 작동, 85도에서 일정 시간 방치한 후 실온 상태에서 정상 작동, 사고 영상 위·변조 및 삭제 탐지, 초당 20프레임 이상 촬영 등이다. 고온에서의 작동이 중요한 이유는 장시간 사용으로 기기 내부가 뜨거워지거나 차내 온도가 높아지면 블랙박스가 고장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블랙박스 KS인증을 받은 제조사는 에스티엠아이, 지넷시스템, 아이전자, 우전앤다성으로 모두 지난해 9월 이후 인증을 받았다”며 “KS인증은 업체가 자발적으로 신청할 때 시행하는 것이므로 인증받은 제조사 제품이 가장 우수하다거나, 인증받지 않은 제품의 품질이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순 녹화장치에서 안전 도우미로
    최신 기능보다 기본 기능에 충실한 제품

    향후 블랙박스는 절전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저전력 블랙박스를 설계하는 양진영 스마트IT융합시스템연구단 연구원(정보통신학 박사)은 “블랙박스업계에서 안전을 점점 더 강조하기 때문에 주차 중에도 방전되지 않는 블랙박스 배터리가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 사고 시 선명한 녹화 기술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7년째 블랙박스 유통업을 하는 권지원 강남B·C 대표는 “야간 촬영용으로 적외선램프를 부착한 블랙박스가 있지만, 가로등 불빛이나 별도 조명이 없는 환경에서는 화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블랙박스의 평균 가격은 10만 원대 후반~30만 원 선이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가 그보다 저렴한 제품을 선호한다. 권지원 대표는 “중국산 등 가격이 싼 제품을 구매했다 후회하는 소비자가 많다”며 블랙박스 구매 전후 주의할 점을 조언했다.

    먼저 최신 기능이 불필요하게 많은 제품보다 기본적인 녹화 및 저장 기능이 안정적인 제품이 낫다. 기능이 복잡하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물차 운전자 등 장거리를 주행하거나 기기 조작에 미숙한 소비자에게는 LCD 모니터가 달리고 저장 용량이 넉넉한 제품이 적절하다. 사용한 지 3년이 지난 제품은 렌즈 기능이 크게 악화되므로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정적인 AS(사후관리)를 받으려면 오프라인 전문점에서 제조·유통사의 서비스 품질이나 경영 상황 등을 듣고 사는 편이 좋다. 기업이 부도가 나 AS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매출 438억3045만 원을 올렸던 ‘다본다’는 영업손실 약 107억 원, 당기순손실 약 110억 원을 기록해 5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현재 다본다는 택배 AS와 무료 장착 서비스 일부가 중단돼 소비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경제 전문가는 블랙박스가 앞으로도 꾸준히 팔릴 것으로 예상한다. 윤덕환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겸임교수는 “요즘은 ‘각자도생’이란 용어가 유행할 만큼 개인이 자신의 정당함, 무고함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그러한 용도로 블랙박스의 필요성은 계속 증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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