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0

2015.08.10

영어 강의 늘린다고 슈퍼 글로벌 대학 될까

교육도 ‘잃어버린 20년’…출신 학교로 평가하는 채용 시스템부터 바꿔야

  • 다케히코 가리야 옥스퍼드대 닛산일본연구소 교수

    입력2015-08-10 14: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영어 강의 늘린다고 슈퍼 글로벌 대학 될까
    1980년대 일본 교육 시스템의 우월성은 세계적인 관심 대상이었다. 미국 교육부가 87년 ‘일본 교육의 현재’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 교육의 현황을 파악하고 성공 비밀을 확인하려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미국 교육정책에 대한 미래 전망과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교육 시스템이 누린 황금기는 머지않아 끝을 보게 됐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세월’이라는 기나긴 경기 침체의 수렁에 빠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같은 국제검정시험에서 일본 학생들의 성적은 여전히 우수했지만, 일본 교육 시스템을 향한 관심은 금세 사그라졌다. 오늘날 일본 교육을 성공 사례로 꼽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일본 교육계에서 일어난 인식 변화를 통해 국제화 시대에 교육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초중고교 교육이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던 1980년대에는 제조업 분야 근로자의 질이나 생산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대학 등 고등교육 분야가 중시된다. 교육과 경제 사이 연결 고리는 첨단기술, 생명의학, 금융, 기타 서비스 분야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맞춰 상향 조정되고 있다. 세계 대학 순위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것도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종신고용 시대에 통한 명문대 만능주의

    고등교육 과정 학생들의 국제적 이동이 늘어난 것도 변화의 원인이다. 초중고교 교육과정과 달리, 고등교육 과정의 학생들은 선진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용이하다. 외국 학생이 늘면서 대학의 국제화 시장이 커졌고 이로 인해 대학 순위표가 더 중요해졌다. 세계 대학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선진국은 저마다 우수한 해외 학생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최근 교육 관련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며 자국 대학의 세계 순위를 올리기 위해 나섰다. ‘슈퍼 글로벌 대학’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존 대학들의 열악한 교육 상황은 개선하지 않은 채 이러한 정책을 펼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답을 구하려면 먼저 일본 대학 교육의 질이 낮아진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사실을 짚어보자. 일본 기업들은 채용을 결정할 때 지원자의 대학 성적을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지원자 학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본 대학생은 다른 선진국 학생과 비교했을 때 대학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훨씬 적다.

    1960~70년대 일본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당시, 일본 기업들은 특이한 인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직원들로 하여금 여러 업무를 돌아가며 맡게 해 여러 기술을 익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연공서열식 승진 및 임금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이른바 ‘종신고용’이라는 장기적인 고용 상황에서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인력관리 시스템은 산업 경제 발전기에 장기적인 노동력 부족 상황에 직면했던 고용주들이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강조되는 건 훈련능력이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각 기업들만의 특별한 기술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익히는 능력을 뜻한다. 훈련 능력은 채용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심지어 이미 다른 직장 경험을 통해 얻은 직무 경험보다 우선시됐다. 즉 일본 기업들은 경력이 없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을 선호했다. 더 유연하고 훈련이 용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때 지원자의 훈련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출신 학교, 출신 대학이었다.

    이런 채용 방식으로 학생들은 일류 학교에 들어가는 데만 혈안이 됐다. 교육 시스템과 채용 시스템이 선순환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이는 합리적이고 심지어 효율적이기까지 했다. 기업들의 근로자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학생들에게는 성적과 경제적 이익의 관계가 확실하게 다가왔다. 이 관계는 ‘생산성 높은’ 산업인력을 제공함으로써 일본 경제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최소한 1990년대 초 일본 경제가 튼실했던 시절에는 말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의 자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의 세계화가 심화됐다. 이와 함께 청년 인구가 서서히 감소하면서 지금까지 일본 교육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되게 한 모든 여건이 사라져버렸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로 고용주들은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하지만 중년의 정규직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고용 시스템 때문에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 근로자들로 공백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90년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전체 근로자의 20% 정도였지만 2014년에는 37.9%로 거의 2배가 됐다.

    진정한 국제화

    그럼에도 과거의 채용 관행은 변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채용 결정 과정에서 각 개인이 차지하는 인력풀 내에서 위치는 여전히 대학 이름으로 결정되고 있다. 반면 직무교육은 더는 효과적이지 않다. 젊은 세대의 이직률은 계속 증가하는데 기업들은 여전히 인력풀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신입사원을 선호한다. 고용주로서는 국내 노동시장의 인력풀에서 상대적으로 훈련 능력이 높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 각지의 훨씬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뜨거운 국제 경쟁에 직접 부딪히지 않는 한, 이러한 일본 특유의 시스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 교육의 이면에서는 현재 심화되고 있는 세계 교육 경쟁의 영향을 실감할 수 있다. 그중 하나로 일본 정부가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려고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한 점을 들 수 있다. 일본은 37개 대학을 ‘슈퍼 글로벌 대학’으로 지정해 국제화를 위한 공적 자금을 제공할 계획이다. 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 개혁 정책들은 이 ‘슈퍼 글로벌 대학’의 영어 강의 수를 늘리는 데는 성공할 것이다. 그 결과 일본으로 공부하러 오는 해외 학생 수는 늘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 학생들 역시 머지않아 일본 대학 교육의 후진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변화의 열쇠는 일본 노동시장의 채용 시스템을 개조하는 데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개혁 정책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는 듯하다. 세계화에 맞춰진 개혁은 일본 대학들의 이미지는 제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실질적인 계획과 지원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지 않는 한, 이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 국제화는 일본 노동력의 국제 경쟁력은 낮추고, 오히려 대학들과 학생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환경만 더 심화되게 할 것이다.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영어 원문은 http://globalasia.org/article/japans-faltering-universities-face-challenging-times/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