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2015.06.22

속는 줄 알면서도 안 하자니 찜찜

마스크 폭리·과장 광고·스미싱 범죄…행정처분에 그치거나 처벌 어려워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6-22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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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는 줄 알면서도 안 하자니 찜찜

    메르스 확산으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져 개당 단가가 급등하자 소비자들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은 수업이 재개된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등굣길 모습.

    네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주부 이은경(33) 씨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4주째인 6월 중순 약국으로 마스크를 사러갔다. 그동안 이씨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정도로 지냈는데, 메르스 확산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스크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약국에서 일회용 마스크 가격을 들은 이씨는 어이가 없었다. 개별 포장된 어린이용 마스크가 3000원, 어른용 마스크가 3500원이었던 것. 그는 “주변에서는 분명히 개당 500원꼴로 일회용 마스크를 샀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가격이 이렇게 올랐는지 모르겠다. 두어 번 더 쓸 수 있다 해도 일회용인데 매번 사서 쓰다 보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바이러스 완벽하게 걸러주는 공기청정기?

    5월 20일 첫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견된 이후 4주째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이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마스크의 경우 한때 품귀현상이 빚어지며 가격이 배 이상 올랐다. 6월 16일 서울 서대문구 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KF80(미세입자 차단율 80%) 일회용 마스크의 가격은 개당 3500원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KF80 마스크의 가격도 개당 2500~4000원. KF 수치가 올라갈수록 미세입자 차단율도 높아지는데 KF95 마스크의 경우 물량이 달려 한때 시중약국 판매가가 8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소비자 불만이 높아지자 6월 11일 대한약사회는 ‘마스크, 손세정제 같은 건강·위생용품이 메르스 확산에 따라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제품 공급가가 올라 판매가가 인상된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한약사회는 ‘이는 약국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라 시장 원리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마스크 품절에 따른 가격 폭등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막아준다는 각종 제품의 거짓·과장 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직접판매 마케팅업체 A사는 자사 공기청정기를 ‘메르스 바이러스 완벽 차단 제품’이라고 광고하며 12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한 육아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제품의 광고성 게시글에는 ‘A사 공기청정기는 바이러스·박테리아·발암물질 등 94개 유해물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벽히 걸러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메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형이기 때문에 이 제품만 있으면 메르스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속는 줄 알면서도 안 하자니 찜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 육아카페에서는 ‘메르스 잡는 공기청정기’라며 제품을 홍보하는 글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왼쪽). 한국인터넷진흥원은 메르스 스미싱 범죄에 대한 경계를 당부했다. 사진은 관련 문자 메시지 화면.

    위생용품 판매업체 B사는 이산화염소를 이용한 휴대용 살균기를 3만 원에 판매하면서 메르스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이 업체는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 ‘이산화염소는 각국 정부가 승인한 친환경 소독제로 안전성 평가를 받았다. 알코올의 50만 배에 달하는 살균력이 있는 이산화염소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100% 비활성화시킨다. 이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메르스도 예방할 수 있다’며 소비자를 현혹했다.

    다용도 자외선 살균기 판매업체 C사도 침구 등의 진드기나 세균을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자사 제품에 대해 ‘메르스 바이러스까지 99.9% 살균해주는 자외선 살균기’라고 광고하며 온라인에서 10만 원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모두 공정위로부터 입증되지 않은 거짓 광고 사례로 지적됐다. 공정위는 “파급 효과가 크거나 위법성이 명백한 사안은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르스 치료제가 없는 가운데, 일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자사 제품이 면역력을 강화해 메르스 퇴치에 도움을 준다고 앞다퉈 광고하고 있다. D업체는 온라인 블로그 광고 게시글에서 ‘메르스에 제대로 된 예방법은 자가면역력을 올려주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 건강기능식품은 면역력을 400% 이상 증가시켜준다’며 마치 메르스 예방효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 광고했다.

    또 E한의원은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메르스 예방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려 ‘자체 생산하는 여성 전용 유산균 가루제품이 면역력을 증강시켜준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유산균이 메르스 예방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 육아카페에 올라온 ‘메르스 예방은 면역력 강화부터’라는 게시글에는 녹용 성분이 함유된 캡슐 제품이 마치 메르스 예방 즉효약인 것처럼 작성돼 있었다. 작성자는 ‘F업체가 30년 동안 연구한 끝에 개발한 식품으로 해외 특허까지 받은 면역력 증강 특효식품이다. 메르스 예방차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관련 처벌법이 없어 6월 중순 현재까지 온라인에는 메르스 과장 광고가 범람하는 실정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 관련법, 식품위생법에 따라 의학적 효능을 과장 광고한 사례는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메르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면역력을 강화해준다고 광고할 경우 직접적으로 의학적 효능을 광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어 행정처분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환자에게 지원금 입금” 거짓 문자도

    메르스에 편승한 스미싱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메르스 관련 내용이 포함된 스미싱 문자메시지와 e메일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송돼 악성코드가 유포되고 있다. 문자메시지의 경우 첨부된 인터넷주소 URL을 클릭하면 곧바로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다운로드되는데, 이를 설치할 경우 휴대전화 기기 내부의 공인인증서 등 주요 정부가 유출될 수 있다. 또 e메일의 경우 문서로 위장한 악성코드가 개인용 컴퓨터(PC)에 깔리면 해커의 원격제어를 통해 정보 유출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경찰청은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메르스 환자 등에 대한 지원금을 입금하겠다는 핑계로 개인정보, 금융거래정보 등을 입력하게 하고 인터넷뱅킹에서 이를 이용해 돈을 가로채는 보이스 피싱, 스미싱 사례가 메르스 핫라인(전화번호 109)을 통해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수법은 보건소 등 의료기관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계좌번호나 개인정보를 요구하거나 홈페이지 주소를 불러주면서 접속하게 하는 등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보건소는 메르스 접촉자 등에게 관리에 대해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할 뿐 지원금과 관련한 연락은 하지 않는다. 치료비는 비급여항목·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전액을 국고 지원해 처음부터 내지 않으며, 긴급생계비는 확진자와 격리대상자에 대해 보건복지콜센터(129)에서 신청을 받아 지원하는데 개별 안내는 하지 않는다”며 관련 전화를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메르스를 악용한 보이스피싱과 스미싱 범죄는 사전에 차단하기 어려워 피해 사례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최근 공공기관에서 메르스 예방수칙 등 각종 문자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심이 덜하다는 점을 노리고 이 같은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청 보안앱을 설치하면 안전한 URL인지 확인 가능한데, 무엇보다 개인이 의심을 갖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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