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2015.06.08

“메르스보다 복지부가 더 무섭다”

질병본부 최초 환자 확진 요구 무시…초기 대응 골든타임 나흘 허비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5-06-05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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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보다 복지부가 더 무섭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앞줄)이 5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 장관은 “메르스의 전파력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문 장관 뒤는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부터).

    ‘한국에서 (메르스 발생 확인 후) 초기 3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지만 ‘슈퍼 확산’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병원이 감염 통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환자가 30명을 넘어가고 사망자가 3명으로 늘어난 6월 2일, 미국 전문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담당 피터 벤 엠바렉 박사의 말을 이용해 한국 내 폭발적인 메르스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을 ‘병원의 감염 통제 실패’로 못 박았다. ‘사이언스’는 또한 한국 내 메르스 확산을 ‘폭발적 슈퍼 확산’으로 표현하며 ‘중동에서도 이번처럼 환자 1명(최초 발병 환자)이 20명이 훨씬 넘는 의료진과 환자를 감염시킨 전례는 없었다’고 적시했다.

    세계적 과학자와 과학저널조차 놀라워하는 한국 메르스 확산 속도. 과연 WHO 소속 엠바렉 박사의 말처럼 ‘슈퍼 확산’을 제때 통제하지 못한 책임이 국내 각급 병원에 있는 걸까. 국내외 감염학계는 메르스 같은 세계적 전파력을 가진 감염병의 확산 방지는 최초 발병 환자의 확진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는가에 달렸다는 데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메르스의 경우 긴밀한 접촉(비말감염)에 의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초 발병 환자의 확진이 빠르면 빠를수록 2차, 3차 감염자를 그만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본의 충격적 확진 거부 진상

    국내의 경우 메르스 최초 발병 환자로부터 감염이 폭넓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만큼 최초 발병자에 대한 확진만 빨랐다면 격리 인원도 줄고 2차, 3차 감염자도 수십 명 수준으로 늘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해 2명의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한 미국의 경우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각급 병원의 증상 신고 단 하루 만에 음성 환자라고 확진해줌으로써 국민의 ‘메르스 공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경우는 전혀 달랐다. 법정전염병인 메르스의 확진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질본)가 대학병원으로부터 메르스 최초 의심 환자 신고를 받고도 확진 검사 자체를 세 차례나 거부함으로써 감염병 초동 대응시간을 나흘이나 날려버렸기 때문. 국내 감염학계는 엠바렉 박사가 슈퍼 확산의 책임을 병원으로 돌린 데 대해 “엠바렉 박사는 자신이 사이언스 기사에서 밝혔듯 ‘발병 초기 3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분석을 한 것”이라며 메르스의 폭발적 확산 책임을 복지부와 질본으로 돌리고 있다.

    ‘주간동아’는 감염학계 원로 교수 Y씨로부터 최초 감염자 A(68)씨의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흘이나 늦어진 사연에 대해 듣고, 사실 파악에 나섰다. Y교수가 밝힌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A씨는 5월 12일부터 고열과 심한 기침, 설사 증상 등으로 지방 병·의원을 전전하다 17일 오후 서울의 유명 B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국내 최고 수준 감염내과 의료진이 포진한 B대학병원 측은 ‘A씨가 바레인에서 채소농사를 짓는다’는 환자 가족의 말과 A씨 증상이 중동에서 유행하는 메르스와 똑같은 점으로 미뤄 A씨 병이 메르스 감염이란 결론을 내렸다. 17일 밤 의료진은 질본에 다급히 A씨에 대한 확진 검사를 요구했지만 질본은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다’라며 검사를 거부했다. 질본은 도리어 병원 의료진에게 ‘12가지 다른 호흡기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병원 측은 12가지 호흡기 검사를 다 해봐도 별 이상이 없자 18일 오후 다시 질본에 확진 검사를 요구했지만 질본은 전날과 같은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메르스보다 복지부가 더 무섭다”

    서울 한 병원에 붙은 있는 메르스 증상 신고 요청문.

    그새 A씨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A씨를 간호하던 부인 C(63)씨가 고열과 기침 등의 메르스 증상으로 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다급해진 병원 측은 환자 가족에게 질본의 확진 거부 사실을 알렸고, 환자 가족이 직접 5월 19일 오전 질본에 확진 검사를 의뢰했지만 이번에도 검사 요구는 묵살됐다. 열을 받을 대로 받은 환자 가족은 친척인 감사원 고위 간부에게 이런 급박한 사정을 설명했다.

    5월 20일 오전 질본은 ‘집중 감사를 벌이겠다’는 감사원 간부의 압력성 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검사를 시작해 그날 오후 확진 판정을 내렸다. 그 와중에도 질본은 병원 측에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책임은 병원이 져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추후 역학조사 결과 A씨는 4월 말 메르스 집중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사실이 밝혀졌다.”

    B대학병원 측은 Y교수의 제보 내용에 대해 ‘주간동아’가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평상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을’의 위치에 있는 대학병원은 일단 부인부터 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분노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 메르스라는 감염병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정보가 전무하던 상황에서 질병을 명쾌하게 진단해낸 것에 대해 칭찬은 커녕 핀잔과 책임 전가를 하고 있는 질본에 대한 원망이 다분했다.

    확진 거부가 낳은 어마어마한 파장

    B대학병원 관계자는 “정말 답답했다. 질본의 확진 판정이 늦어져 A씨를 격리병실에 입원시키지도 못했다. 확진 판정이 나지 않으면 하루 100만 원에 가까운 격리병실 요금을 A씨 본인이 다 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음성으로 나오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5월 20일 오후 확진 판정이 나자 질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의사 6명, 간호사 11명 등 A씨와 접촉한 우리 병원 의료진 21명을 격리조치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메르스 최초 발병자 A씨에 대한 질본의 확진 판정이 나흘간 늦어지면서 B대학병원을 포함해 A씨가 그 이전 사흘 동안 진료를 받았던 3개 시도 개인 병·의원 의료진과 같은 병실, 같은 병동에 있었던 환자들이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는 점이다. A씨와 접촉했던 의료진은 A씨에 대한 확진 판정이 나고 질본의 추적 조사가 이뤄져 격리될 때까지 짧게는 4일, 길게는 9일 동안 다른 환자들을 진료했고, A씨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환자들은 각 병·의원에서 치료받은 뒤 지역사회로 뿔뿔이 흩어졌다. A씨에 대한 확진 판정만 일찍 나왔어도 2차, 3차 감염자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A씨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응급실, 병실, 병동 환자와 방문객들에 대한 질본의 역학조사 및 추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건 모르겠다”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A씨가 5월 17일 오후 B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 들른 병·의원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A씨는 12일 증상이 처음으로 발현하자 집 인근 충남 아산시 D의원을 찾았고 13일, 15일에도 그곳에서 외래 진료를 받았다. 총 3차례 외래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A씨는 의사 1명과 간호사 4명, 약국 약사 2명 등 총 9명의 의료진과 접촉했다. 이들 의료진은 12일 A씨를 진료한 이후 20일 오후 A씨에 대한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 격리조치를 받기 전까지 총 8일 동안 다른 환자들을 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5월 29일 격리조치됐던 D의원 의료진 중 간호사 1명이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명 났지만 6월 3일 ‘주간동아’ 확인 결과 D의원은 그날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진료를 계속했다. D의원 관계자는 “A씨와 접촉하지 않은 다른 원장과 간호사들이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할 아산시보건소 관계자는 “A씨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다른 환자들에 대한 질본의 추적 조사가 이뤄지고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우리는 모른다. 질본 측에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5월 15일 오후 지역 의원에서 증상에 차도가 없자 A씨는 경기 평택 E병원에 입원했다. 각 언론에서 P병원으로 언급된 곳. 이곳에서 A씨는 환자 26명을 감염시켰고, 그중 2명이 사망했다. 같은 병동에 있다 감염된 환자에게서 3차로 감염된 환자 1명도 사망했다(6월 4일 현재). A씨와 접촉한 이 병원 의료진 29명도 20일 확진 판정이 있기 전까지 다른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감염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자진해 병원을 폐쇄했다. 하지만 질본이 A씨에 대한 확진 검사를 거부하는 동안 이 병원에 있던 환자들은 퇴원해 뿔뿔이 흩어졌고 이들 중 다수가 3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감염 의료진 다른 환자 계속 진료

    E병원에서도 증상에 차도가 없자 A씨는 5월 17일 오전 서울로 올라와 강동구 F의원을 방문해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원장에게 진료를 받았다. A씨 증세가 위중하다고 판단한 F의원 의사가 대학병원급 병원으로 갈 것을 권하자, A씨는 그때서야 B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A씨가 F의원에 머문 시간은 단 20여 분. 하지만 F의원 의사는 28일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정됐다. A씨와 접촉한 F의원 의사와 방사선사는 A씨의 확진 판정이 있은 20일 이후 격리조치를 받을 때까지 진료를 계속했으며, F의원은 의사를 교체해 그 후로도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F의원의 메르스 확진 의사와 관련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강동구 관련 카페에서는 ‘5월 28일까지 진료를 계속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관할 강동구청 가정복지과는 5월 29일 ‘일일동향보고’ 문서를 통해 ‘5월 28일 F의원 의사가 메르스 확진 판정으로 격리조치됐다’고 밝혔다. 이 문건 보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A씨에 대한 확진 판정이 있고 8일 후 의사가 격리조치된 셈이다. 이에 대해 강동구보건소 관계자는 “우리는 아무것도 답할 수 없다. 질본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권준욱 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A씨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모든 환자를 격리시켰다”고 자신하며 “병원 내 3차 감염은 더 발생할지 몰라도 지역사회로 전파는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G대학병원 한 감염내과 교수는 “복지부가 자신들의 실수에 대해 철저한 반성은 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솔직하게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과 통제 불능 상태를 인정하고, 메르스 감염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올바른 정보 전달을 통해 대단위 전파를 줄여나가야 한다. 계속 거짓말을 하면 국민 불신과 공포만 더해질 뿐이다. 감염학계 내에서는 ‘바이러스보다 복지부 거짓말이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도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메르스보다 복지부가 더 무섭다”

    국내 최초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 여성(58)이 6월 1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경기 한 병원의 응급실 앞에 보건당국 기준에 따라 마련된 메르스 관련 임시 진료소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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