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돈 있는 데 이혼 있다”

재산 문제로 갈라서는 이혼전쟁 천태만상

  • 이명숙 (사)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naurylaw@daum.net

    입력2015-05-08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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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있는 데 이혼 있다”

    경제적 이유로 이혼을 선택하는 부부가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 밀집지역.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혼인과 이혼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35세였던지라, 남녀 모두 빨리 결혼해 빨리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연히 조혼(早婚)이 일반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균수명이 짧으니 소박을 당하거나 사별하더라도 혼자 살아야 할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러니 수절을 강요하는 유교 사상도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상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평균수명도 2배 이상 길어졌다. 2011년 현재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남자 77세, 여자 84세다. 이제는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보고 있다. 수명이 늘어나 오래 살게 되면서 혼인과 이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만혼(晩婚)이 일반화하고, 재혼(再婚)과 이혼,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일부종사나 수절을 미덕으로 여기고 강요하는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단연코 경제적 이유가 될 터다. 특히 점점 늘어가는 이혼 가정에서의 경제적 잣대는 처절할 정도다.

    철없던 시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만나 가정을 이뤄도 10년, 20년 혼인생활을 하다 보면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고 이성을 만나는 기회도 많아진다. 이성을 보는 잣대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부부간 갈등도 커진다. ‘가족을 위한 희생’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크게 생각하는 시대적 특징도 부부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인 행복’에는 경제적 이유가 매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배우자가 경제력이 없어 비전이 없다’ ‘너무 가난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는 젊은 부부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혼인 기간이나 연령을 불문하고 이혼하는 부부에게는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자녀양육비가 가장 큰 다툼 요인으로 떠오르곤 한다.

    부모 이혼 부추기는 자녀들

    또 평균수명 증가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길다는 생각은 경제적 어려움을 심각한 이혼 사유로 고민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이혼한 70대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미 고전이 됐다. 가정폭력이나 외도에 시달리는 아내 가운데도 모든 재산이 자기 명의로 돼 있거나 상당한 액수의 재산이 있으면 이혼 대신 참고 사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재산이 남편 명의로 돼 있는 상태에서 남편이 외도하며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사귀는 여자에게 재산을 조금씩 넘겨주는 경우에는 남아 있는 재산이라도 보장받기 위해 결혼한 자녀들이 어머니를 앞세워 이혼을 요구하곤 한다. 이혼을 통해서라도 아버지의 재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노후를 자식들이 책임져야 하고, 자신들의 상속 재산에도 적신호가 켜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의리가 있어서 이혼소송이 벌어지면 폭력적이거나 외도를 일삼는 등 이혼 사유를 제공한 아버지 또는 어머니를 적대시하고, 약자이자 피해자인 쪽 편에 서서 증언하거나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자녀들도 지나치게 영리해져버렸다. 부모 중 경제력을 가진 쪽을 드러내놓고 지지하거나, 심지어 양심에 반해 거짓 진술까지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자녀조차 이혼소송이 시작되면 큰 집에 살거나 맛있는 고급식당에 데려가는 아빠 또는 엄마 쪽과 함께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재혼하면, 재혼한 부모의 행복이나 정서적 안정보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상속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더 걱정하는 경향도 확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치매에 걸리거나 중환자실에 입원한 노령의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딸이 새어머니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하거나 혼인무효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60대 아들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93세 아버지 이름으로 10년 넘게 재혼생활을 해온 새어머니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건, 치매에 걸린 76세 회사 대표인 아버지와 50대 여비서와의 혼인신고를 둘째아들이 무효라고 주장해 혼인무효판결을 받은 사건 등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아버지의 경제력과 자신들의 상속 재산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런 소송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혼이혼을 하고자 하는 이는 대부분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으며, 재산분할로 나눌 것이 없거나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 없으면 황혼이혼율도 낮은 게 현실이다.

    만혼·이혼·재혼 흔들리는 가정

    “돈 있는 데 이혼 있다”
    이러다 보니 젊은 층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만난 30대 중반 남성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자 “대학 졸업하고 수년간 취직을 못 하다가 몇 년 전 겨우 취직해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번다. 이 돈으로 언제 집을 마련하고, 집도 없는데 누가 결혼을 해주겠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어 결혼은 오래전 포기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사회가 힘들어지고 결혼이 갖는 의미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결혼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나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힘들게 결혼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출산을 기피해 2013년 현재 출산율이 1.18명에 그친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는 후배가 “맞벌이 부부로 밤낮 없이 회사 일에 치어 사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나.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드느니, 차라리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 있게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두 사람이 만나 자녀 2명은 낳아야 현재 인구가 유지되는데, 서울은 출산율이 0.968명으로 1명도 출산하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210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현재의 절반이 되고, 2300년에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인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가정과 정서적 안정에서 시작된다. 수명이 길어지고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사회가 변하면서 경제적 가치가 그 어느 가치보다 소중한 것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우리 가정을 지탱해오던 전통 미덕이나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취업 불안, 경기 불안, 고물가, 주택난 등 수많은 문제가 경제 문제로 귀결되는 현실에서 팍팍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경제적 가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과연 경제적 가치가 최고 가치가 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문제로 인한 끝없는 정서적 갈등과 가정파탄에 따른 엄청난 기회비용을 우리 사회 모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혼과 출산 기피, 이혼과 재혼의 증가는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잡아야 사회도, 국가도 안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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