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2015.01.19

조용한 저녁 시간의 동반자

전쟁과 우연이 빚은 명품, 포트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01-19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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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문화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와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명품 포트(Port)와인도 전쟁을 계기로 탄생했다. 1151년 현재의 프랑스 보르도를 소유했던 아키텐 공국의 공주 엘레오노르가 영국 왕 헨리 플랜태저넷과 결혼하면서 보르도는 영국령이 됐다. 하지만 이는 영토분쟁의 씨앗이 됐고, 결국 1337년 백년전쟁이 발발했다. 패전한 영국은 보르도를 잃자 새로운 와인 생산지를 찾아 나섰는데, 포르투갈 북부 도루(Douro) 지방에서 최고 와인 산지를 만나게 됐다.

    도루는 험난한 산악지대로 도루 강가의 가파른 비탈을 계단식으로 깎아 포도나무를 기른다. 작열하는 태양에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조한 여름 날씨를 보이는 도루는 보르도를 대체할 지역으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문제는 운송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도 영국까지 긴 항해를 거치는 동안 와인이 푹 삭아서 원래 맛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품은 우연이 만들어냈다. 영국 리버풀 출신의 한 와인상이 도루에서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와인을 맛본 것이 발단이었다. 그가 마신 술은 발효가 끝나기 전 증류주를 부어 발효를 멈춘 주정강화 와인이었다. 그는 이 와인이야말로 영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높은 알코올 도수 덕에 긴 항해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곧장 수입에 착수했다. 포트와인이란 이름 또한 당시 와인을 선적하는 항구 도시 포르투(Porto)에서 나온 것이다. 이 와인은 예상대로 영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다른 와인상도 앞다퉈 도루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포트와인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토니(Tawny) 포트와 빈티지(Vintage) 포트가 대표적인데, 이 두 와인은 자못 상반된 스타일을 지닌다. 토니 포트는 큰 오크통에서 8년 이상 숙성한 와인을 블렌딩해 만들기 때문에 생산연도인 빈티지 대신 블렌딩을 한 와인의 평균 나이에 따라 10, 20, 30, 40년으로 구분한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토니 포트는 숙성 기간이 길수록 적갈색에서 황갈색으로 변하고 말린 과일과 견과류의 농축된 향이 일품이다.

    반면 빈티지 포트는 포도 작황이 최고 좋은 해에만 만들기 때문에 10년 평균 3회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토니 포트가 숙성된 맛에 초점을 뒀다면 빈티지 포트는 농익은 포도의 맛과 향을 극대화한 것으로, 2~3년간 오크 숙성을 거친 뒤 바로 병에 넣어진다. 따라서 부드러운 토니 포트와 달리 단단한 타닌과 검은 과일, 초콜릿, 스파이시향이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빈티지 포트는 병입 상태로 100년 이상 보관 가능한데, 어린 상태의 와인을 즐겨도 좋지만 나이 든 와인은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향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빈티지 포트가 수입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적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가 2014년 선정한 100대 와인 중 1위인 2011년산 다우(Dow’s) 빈티지 포트는 특히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빈티지 포트는 일반 레드 와인처럼 오픈하면 2~3일 내 다 마시는 게 좋지만, 통 숙성을 오래 거친 토니 포트는 공기 접촉에 강해 오픈 후에도 한 달 정도 보관 가능하다.

    저녁식사 후 포트와인 한 잔으로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를 정리하는 조용한 시간에 더없이 좋은 동반자가 돼줄 것이다.

    조용한 저녁 시간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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