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2015.01.19

“장사정포는 허깨비, 평양도 안다”

군사 분야 고위 탈북자…2000년대 초 시뮬레이션에서 ‘서울 불바다 불가능’ 결론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1-16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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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정포는 허깨비, 평양도 안다”
    시각을 바꿔보자. 북한 장사정포 위협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관점은 바로 ‘평양의 눈’이다. 북한 군수산업을 총괄하는 제2경제위원회 업무에 오랜 기간 관여하다 2000년대 이후 서울에 온 탈북자 A씨는 이를 가장 정확히 전달해줄 수 있는 인물. 북한 국방위원회 직속 제2경제위원회는 각종 무기체계의 연구와 생산을 담당하는 부서로, 우리의 방위사업청에 해당한다. 흔히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 이후 남한으로 온 최고위급 탈북자’로 불리는 A씨는 지금도 당국의 엄중한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A씨는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해 “한마디로 허깨비”라고 잘라 말했다. 기존의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는 물론, 새로 등장한 300mm 방사포 역시 현대전에서의 활용도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 당국이나 조선인민군 수뇌부가 대량살상무기 중심으로 전력구조를 재편해왔음에도, 오히려 남측만 ‘20세기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질타다.



    살상면적 평가 40배 차이

    ▼ 장사정포 위협에 관한 한국군 당국의 분석을 접한 일이 있나.



    “말이 안 되는 대목이 여럿이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170mm 자주포에 대한 설명이다. 배치한 지 30~40년에 이르는 이 자주포는 북한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실전 가치가 없다고 분류하고 있다. 사거리를 늘리느라 포신 2개를 이어 붙여 제작했는데 정밀공업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정확도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포탄도 워낙 작아 살상반경이 50㎡에 불과하다. 가로세로 7m 남짓의 적은 면적에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의미다.”

    ▼ 한국군 당국의 자료에서는 170mm 자주포탄 1발의 살상면적을 지름 51m로 평가한 적이 있다. 면적으로 환산하면 40배 이상 차이가 난다.

    “50㎡도 개활지에서 측정한 것이므로 서울처럼 빌딩이 많은 시가지에서는 그보다 훨씬 작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북측이 170mm 자주포를 여전히 최전방에 전진 배치해둔 이유는 남쪽의 공격 능력을 낭비하게 만들려는 것에 가깝다. 어떻든 도심에 닿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남측을 압박하는 수단일 뿐이지, 실제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240mm의 경우 여러 발의 포탄을 동시에 발사하는 방사포이므로 피해 면적도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재래식 전력 가운데 굳이 위협적인 것을 꼽자면 240mm 방사포일 것이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에서 사용된 122mm 방사포는 포탄이 가벼워 발사차량 내부의 인원과 장비만으로도 재장전이 가능하지만, 240mm부터는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 상대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이다. 사실상 갱도진지 주변에서만 사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대부분의 갱도진지 위치가 한국과 미국의 감시에 노출돼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연평도 포격에서처럼 사격을 가한 뒤 자리를 옮겨 반격을 피하거나 연속사격을 신속하게 반복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전 초기 딱 한 차례 발사하고 나면 그대로 쓸모가 없어질 일회용에 가깝다. 이론상의 재장전 시간에 전체 수량을 곱해 수만 발을 날릴 것이라는 추상적인 계산이 의미가 없는 이유다.

    신무기는 운용하다 문제가 발견되면 개선해야 제대로 된 무기가 되지만, 북한은 개발만 할 뿐 개선은 하지 않는다. 그럴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240mm 방사포를 개발한 게 1990년대였음에도 2005년까지 단 한 차례도 시험발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 무기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만족한 것이다.”

    ▼ 북한이 새로 개발한 300mm 방사포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을까.

    “300mm 방사포는 2000년대 초 평양방어사령관이던 이영호가 강하게 주장해서 개발에 착수했다. 50km 이하는 포병으로, 300km 이상은 미사일로 타격이 가능한데, 그 사이가 비어 있으니 이를 맡을 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300mm 방사포는 중국이 종주국이고 해외에도 여러 차례 수출한 바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 당시 협력생산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거부당했고, 그 대신 설계도만 들여와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제2경제위원회는 300mm 방사포 개발에 반대했다. 한마디로 제작비에 비해 파괴력이 형편없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먼저 정확성 문제다. 중국은 방사포탄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장치를 달아 정밀도를 크게 높였지만, 북한으로서는 이게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소형 프로펠러를 달아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도다. 더욱이 사거리를 늘리려고 추진제를 많이 싣는 바람에 탄두가 작아져 파괴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같은 비용이라면 단거리 미사일을 제작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뜻이다. 한 번 사격한 뒤 재장전이 어렵기는 240mm보다 더 심하다. 지름 30cm에 길이 7m에 이르는 포탄 1발의 무게가 1t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역시 개전 초기 일회용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장사정포는 허깨비, 평양도 안다”
    ▼ ‘충남 계룡대까지 사거리 안에 포함된다’면서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강력한 무기체계로 설명하는 우리 군 당국의 판단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근본적으로 방사포는 정밀타격이 아니라 여러 발의 포탄으로 면적을 때리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는 독일과 소련이 맞붙었던 제2차 세계대전 때나 유용했던 방식이지, 정밀타격이 중시되는 현대전에서는 사실상 거의 쓸모가 없다. 계룡대 같은 군사시설이 300mm 방사포 수준의 파괴력으로 무력화될 리 만무하다. ‘서울 불바다’를 만들려면 최소한 군단급 전력이 동원돼야 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이나 미국에 미리 감지되지 않을 리도 없다.

    일례로 2000년대 초 인민무력부가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한 결과 장사정포 전력으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아무리 포탄을 쏟아붓는다 해도 입힐 수 있는 피해는 미약하고, 포 전력 대부분이 1회 사격도 제대로 못한 채 궤멸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해 대량살상무기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하는 것도 이러한 판단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 그러나 북한군은 실제로 대규모 군사훈련 때마다 방사포 일제사격 장면을 연출하며 불바다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시용이다. 지도자가 참석하는 ‘1호 행사’에서 불꽃이 날아다니는 그럴 듯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남측이 왜 ‘장사정포가 위협적’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장단을 맞추느냐다. 서울에 온 이후 관계 당국자들에게 여러 차례 물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 현대전의 양상이 바뀌고 북한군도 바뀌었지만, 남한 당국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 머물러 있다. 북한 핵개발에는 오히려 둔감한 채 재래식 공격의 공포에만 집착하는 기묘한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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