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8

2014.12.22

팽목항의 눈물 닦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의인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12-22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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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의 눈물 닦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팽목항엔 눈이 많이 내렸어요. 날씨도 정말 춥고요. 그래도 어떡합니까. 가족들이 계신데 저도 있어야죠.”

    서울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떨어진 12월 17일, 장길환 씨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자원봉사자다. 중간에 과로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진 때를 제외하곤 하루도 가족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진도에서 농원을 운영하는 장씨는 “사고 당일 배가 침몰했고, 탑승객 중 학생들은 다 구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체육관으로 달려갔는데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더니 끝내는 아이들이 대부분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라. 거대한 초상집이자 눈물바다가 된 체육관에서 가족들을 돕기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이 됐다”고 했다.

    11월 11일 수중 수색이 공식 중단됐지만 실종자 가운데 5명의 가족이 아직 진도에 있다. 장씨를 비롯한 일부 자원봉사자도 그들 곁에 머무르는 상태다. 동생과 조카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 가족 권오복 씨는 “바다 밑에 있는 배 생각을 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선체 인양이 확정되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될 때까지는 진도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색 작업이 중단되고 정부 지원도 끊긴 상황에서 가건물 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지만, 여전히 이곳에 머물며 우리를 도와주는 봉사자들, 그리고 쌀과 반찬 등 먹을거리를 보내주는 분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도 했다.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이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고가 우리 국민에게 남긴 상처도 쉽사리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날 분노와 불신이 우리나라의 국민감정이라고 할 만큼 팽배한 건 세월호 침몰이 남긴 깊은 상흔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참담한 고통 속에서도 세월호 가족들을 돕기 위해 나선 많은 이의 선행은 우리 사회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는 평을 듣는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이후 진도 현지를 찾아 봉사에 참여한 이는 5만145명에 이른다. 대부분 평범한 학생과 주부, 직장인인 봉사자들은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과 슬픔을 공유했다. 이들을 위해 끼니때마다 밥을 하고, 쓰레기를 줍고, 옷가지를 빨고, 휴대전화 충전까지 도맡았다. 안산지역 개인택시기사들은 아이 시신을 찾은 부모를 팽목항부터 안산까지 무료로 태워주는 봉사를 했고, 의사와 약사들은 응급진료실을 꾸렸다. 성직자와 상담 전문가들도 자신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족들을 도왔다.



    잠수사들도 달려왔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 작업이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자 잠수 자격을 가진 수많은 이가 진도로 모여들었다. 현장 투입 인원을 추리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12월 17일 의사자로 지정된 고(故) 이광욱 씨도 잠수 경력 30년의 베테랑 잠수사로, 둘째 아들과 동갑내기인 단원고 학생들을 꼭 찾아오겠다며 수색에 참여했다 5월 6일 숨을 거뒀다.

    대형 재난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한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저자 레베카 솔닛은 “재난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존하거나 이웃을 구하기 위해 용감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고 했다. 진도에 바로 이런 순간이 찾아왔고, 이웃을 위해 용감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한 수많은 ‘영웅’이 희망의 증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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