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2014.12.01

“환경·사회·지배구조 따져 투자해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3P(사람·지구·이윤) 관심 갖는 기업이 미래 기업”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12-01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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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책임투자(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컨설팅기업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이사(사진)는 한때 잘나가는 증권맨이었다. 2000년 현대증권 지점장이던 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이코리아 펀드’가 불공정 시세 조정에 휘말린 게 밝혀지자 회의감을 느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해 7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영국 애시리지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영국 최대 연금펀드인 헤르메스 연금펀드에서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서스틴베스트는 그가 2004년 한국에 돌아와 세운 SRI 컨설팅 기업이다.

    류 대표는 투기적 속성이 강한 국내 투자시장의 대안으로 SRI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SRI는 기업에 투자할 때 재무적인 요소 외에 비재무적인 요소(ESG)를 중요하게 보는 투자 방식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유엔 사회책임투자원칙(PRI)에서 투자 의사 결정 시 고려하게 하는 핵심 평가 요소다.

    “서스틴베스트는 상장기업의 ESG를 평가한 자료를 책임투자자에게 제공해 투자 의사 결정을 하도록 돕습니다. 증권회사들이 기업의 재무적인 부분에 국한해서 본다면 우리는 재무적인 부분 대신 그 기업의 ESG를 보는 거죠.”

    재무적 요소만큼이나 중요한 ESG

    서스틴베스트에서는 기업의 ESG 평가를 어떻게 진행할까. 이곳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상장기업 지속가능경영 분석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ESG의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서스틴베스트에서는 책임투자자에게 재무적인 상관관계를 가졌을 법한 ESG 지표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 제공한다. 그는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재무적인 요인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지만 ESG를 관리하지 못해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꽤 많다”고 말했다.



    “영국,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ESG에 관해 굉장히 활발한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유엔 PRI에 따르면 투자할 때 장기적 시각에서 ESG를 고려하는 것이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Fiduciary Duty)에 충실한 투자이며, 이를 확대하면 사회의 공익적인 효과도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환경·사회·지배구조 따져 투자해야”
    서스틴베스트는 먼저 기업 인터넷 홈페이지, 지속가능성보고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보고서 등 공개된 자료 위주로 평가하고, 자료가 정리되면 그걸 기업 측에 보내 피드백을 받는다. 그렇게 정리된 자료를 기업 측에 다시 보내 보완 과정을 거쳐 데이터를 확정한다. 별도의 기업 설문조사는 하지 않는다. 기업이 대부분 자신이 잘한 부분만 부각하려 하고 못한 부분은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2004년에만 해도 자체적인 ESG, CSR 보고서를 내는 기업은 2군데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여 개 기업으로 늘어났습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ESG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도 늘어났고요. 저희가 정리한 자료를 기업에 보내면 30% 정도만이 답을 보내옵니다. 반응이 없는 기업은 이 문제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내부적으로 정량화한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유럽 같은 경우 SRI 책임투자펀드 규모가 전체 펀드의 35~40%를 차지하기에 기업들이 이에 대해 열심히 대응합니다.”

    ESG가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재무적으로 탄탄한 거대 기업이라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1세기 최악의 환경 재앙’이라 부르는 2010년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다. 2010년 4월 BP(British Petroleum)가 멕시코 만 마콘도 유정에 설치한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호가 폭발하면서 현장 노동자 11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엄청난 양의 원유가 유출됐다. 올해 9월 4일(현지시간) AP통신은 법률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BP가 이 사건으로 180억 달러(약 18조32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 것으로 전망했다.

    “BP는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6위(삼성전자 13위)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기업이었지만 원유 유출 사고를 겪으면서 주가가 절반 가까이 폭락했고, 지속적인 사고 수습 비용 지출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ESG에 신경 쓰지 않으면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죠.”

    서스틴베스트가 국내 상장기업의 사회책임 수준을 평가한 ‘2014 상반기 주요 그룹 지속가능경영 평가 결과’에 따르면 OHSAS 18001(전 세계 13개 국가표준기관과 인증기관이 참여해 제정한 국제규격의 안전경영시스템), KOSHA18001(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부여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 등 안전경영 관련 인증 혹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안전보건정책을 마련하고 시행 중이라고 밝힌 곳은 조사 대상 612개 기업 중 191개(31%)에 불과했다. 류 대표는 “특히 운송이나 석유화학같이 규모가 큰 산업에서는 안전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은행에서 투자할 기업의 작업장 안전에 대해 다방면으로 조사를 벌여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대출을 거부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펀드의 설립 목적과 투자 기업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지침도 마련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재보험기금을 산업재해(산재)가 다발로 일어나는 회사의 주식에 투자한다면 기금 조성 목적에 부합하지 않겠죠. 대만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에서는 산재 다발성 기업, 안전 수준이 일정 이상 되지 않는 기업에는 산재보험기금의 투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 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입니다. 기업에 돈을 주는 주체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는다면 기업들도 안전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수익성만 따지는 카지노식 투자

    그는 현재 국내에 “어떻게든 돈을 벌면 된다는 식의 투기성 투자가 많은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해외 공적연기금의 투자 운영 규칙을 보면 대부분 수익성 외에 안전성과 공공성을 논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맞지만, 기왕이면 룰을 지키고 편법을 쓰지 않으면서 수익을 내는 기업을 찾아 투자할 필요가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그런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무조건 질주해온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3시간에 1명꼴로 사망자가 생긴다고 할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재율이 높은 국가가 된 거죠. 중진국을 넘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지속가능성의 3대 핵심인 3P(사람(People), 지구(Planet), 이윤(Profit))에 관심을 갖고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책임투자 산업을 키워 카지노 캐피털리즘에 잠식된 국내 자본시장을 지속가능발전하게 만들고, 국내 투자자의 투자 문화도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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