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2014.10.27

화들짝 놀란 놈, 속으로 웃는 놈

한국, THAAD 배치 자가발전 소동…美 의회, 한국 지갑 열어라 신호

  •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입력2014-10-27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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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들짝 놀란 놈, 속으로 웃는 놈

    2009년 3월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시험발사된 미군 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미사일.

    크게 중요하지 않아 무시해도 좋을 문제를 의도적으로 부각해 찬반을 둘러싸고 편을 가르는 쟁점, 이를 일컬어 사회학에서는 ‘의사(擬似) 쟁점’이라 부른다. 필자 눈에는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국에 배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논쟁 또한 바로 이런 경우다. 구체적인 ‘팩트’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논란이 전 사회 차원으로 끌어 올려져 대중에 의해 ‘소비’되고, 그 과정에서 각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미국 정부가 보유 중인 THAAD는 본토에 2개, 미국령 괌에 1개 포대를 배치해놓은 것이 전부다. 이 밖에는 현재 추가 생산이나 배치 계획이 없다. 국방예산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이 무기체계 1개 포대를 배치하는 데는 최대한 낮게 잡아도 1조 원 이상이 들어간다. 만일 THAAD가 핵미사일을 억제하는 데 그렇듯 결정적 구실을 한다면 왜 미국은 생산을 중단한 것일까. 아무리 예산 사정이 있다 해도 이보다 더 급한 무기체계는 없을 텐데 말이다.

    또한 THAAD 체계는 공중 발사 미사일을 대상으로 시험된 적은 있어도 지상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대상으로 시험평가를 진행한 적은 없다. 150km 고고도에서 상대 미사일을 요격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요격 성공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요컨대 북한 핵미사일을 억제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이다.

    당분간 THAAD 배치 가능성 없어

    여기까지 따져보면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이 조만간 국방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THAAD의 한국 배치는 사실 그리 현실적인 쟁점이 아니다. 한국이 미국에 배치를 허용한다 해도 당분간은 배치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분의 THAAD 포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의 숱한 논란에도, 10월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렇듯 현실성 적은 이슈가 왜 갑자기 한국 외교안보의 중심 문제인양 떠오른 걸까. 2009년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가 이어진 직후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THAAD 미사일의 주한미군 배치를 본국에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미국 국방부는 해외 미군기지 중 3곳에 THAAD를 배치하는 문제를 잠시 고려했다. 당시 검토는 이후 한국의 THAAD 도입 찬성론자들이 ‘우리가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만 하면 미국은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THAAD를 배치해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근거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러한 착각이 ‘미국이 우리 측에 THAAD 배치 방안을 타진해왔으나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배치가 되지 않았다’는 식의 언론보도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본질과 달리 사태를 호도하게 만든 출발점이다. 지난여름 이후 미 국방부와 태평양사령부 고위관리들은 익명을 전제로 “THAAD 배치문제를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거나 “한반도 내 배치를 위한 부지 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는 마치 미국이 당장 이 무기체계를 배치하려고 준비하는 것으로 오인됐고 찬반 논란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그 어떤 협의도 한 적 없다”고 부인하며 선을 그었지만 소용없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로버트 워크 미 국방부 부장관은 9월 30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전략자산인 THAAD의 배치는) 미 국방부가 아닌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사항”이며 “(한미동맹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처지를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미국은 이 무기체계의 한반도 배치문제를 중국, 러시아와 협의했지만 이들이 반대했다고도 그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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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4일 김관진 대통령안보실장(앞줄 가운데)이 미국을 방문하고자 출국하고 있다. 당시 김 실장은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도입과 관련해 “아직 (미국으로부터) 공식 통보된 바 없고, 한미 간 협의된 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여기서도 미국 측 문법에는 ‘만일 한반도에 THAAD가 배치된다면’이라는 가정법이 깔렸다는 점이다. ‘THAAD를 배치하겠다’가 아니라 ‘만일 배치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양해하겠느냐’는 일종의 질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당장 배치할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신중론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렇듯 당장 배치할 것도 아닌 무기체계를 한미 간 혹은 미·중 간 주요 의제로 떠오르게 만든 배후 논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필자의 질문에 한 미국 측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에 THAAD 배치를 먼저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지난해부터 박근혜 정부의 몇몇 핵심 인사와 예비역 장성 등이 워싱턴을 방문해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미국은 두고만 볼 거냐”며 THAAD의 한국 배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것. “미국 미사일방어(MD) 네트워크의 전략자산을 한국에 배치해 중국을 견제하지 않으면 한국은 중국화될지도 모른다”는 이들의 말이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오바마 행정부의 THAAD 예산 삭감에 불만이 많았던 미 국방부 일부 고위관료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미 국방부 일부 인사의 요구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미국 측 인사들의 시각은 대략 이렇다. 미·일동맹 가속화에 따른 한미동맹 이완을 우려하는 한국의 일부 보수층과 THAAD 예산 삭감 재검토를 원하는 미 국방부 일부 인사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고, 이는 한국 언론에 THAAD 배치 검토 시사 발언을 흘리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중국은 개연성도 높지 않은 THAAD의 한국 배치 시나리오를 자기 뺨을 때리는 위협으로 인식하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렇게 형성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유발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사고’에 가까운 결과였다.

    반면 미 의회의 계산은 또 다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한국을 적절히 활용해 THAAD 생산 재개에 필요한 자금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나아가 15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괌 미군기지 조성에도 미사일요격체계의 합동 운용성 강화 차원에서 한국 측의 재정적 기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는 최근 발간된 미 의회 보고서에 여과 없이 표출된 바 있다.

    이후 미국 측은 다양한 경로로 한국 측 지갑이 열리기를 기대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9월 초 국내 언론에 소개된 미국 측 당국자의 “한국도 (THAAD 배치) 비용을 부담하면 (안보비의) 공동 분담(cost sharing)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한국에서 촉발된 THAAD 논쟁이 즐거울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SCM을 앞두고 “THAAD의 ‘T’자도 나오지 않았다”며 지갑 자물쇠를 걸어 잠그느라 분주했던 우리 국방부와는 정확히 대비된다. 논란이 불거지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마는 대한민국 정부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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