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7

2014.07.21

운전면허 시험문제 공개 왜 8개월간 쉬쉬했나

교통공단 2년 전 판정에도 공개 미뤄…출판사에는 무료 제공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이근희 인턴기자·원광대 한의대 2학년

    입력2014-07-21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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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면허 시험문제 공개 왜 8개월간 쉬쉬했나

    4월 24일 도로교통공단 충주면허시험장 소속 시험버스에서 운전면허 학과시험을 치르고 있다.

    운전면허 학과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8월부터 실제 시험에 나올 문제를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서점이나 운전면허학원에서 예상시험문제집을 따로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충분히 시험 대비가 가능하게 됐다는 뜻. 이는 ‘운전면허 학과시험 문제은행 공개를 거부할 수 없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른 조치로, 기존 학과시험 예상시험문제집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각 출판사는 된서리를 맞게 됐다.

    운전면허 학과시험은 도로교통공단이 해마다 새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으로 치르다, 2010년 8월부터 도로교통공단이 만든 문제은행(총 300개 문항)에서 실제 40문항을 임의로 추출해 출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학과시험 문제가 도로 관련법과 교통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도를 높이기보다 출판사가 만든 예상시험문제집만 외우면 응시생 대부분이 합격할 수 있는 암기 위주라는 비판이 많았던 데다, 턱없이 높은 합격률 때문에 시험문제 출제자와 출판사 사이에 문제 유출 또는 유착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은행 출제 방식으로 학과시험 제도가 바뀐 후에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2009년 11월 경찰청은 “운전면허 학과시험 출제 관행에 문제가 있다”며 도로교통공단에 2010년 5월까지 2000문항의 학과시험 문제은행을 만들 것을 지시하고, 완성되면 그해 7월 일반인에게 인터넷이나 정부 기관지에 공개할 것을 약속했다. 당시 경찰청이 밝힌 ‘학과시험 문제은행 시스템’의 정의는 도로교통공단이 시험문제를 만들어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컴퓨터를 이용해 문제의 출제, 관리 및 시험과 평가를 하는 것이었다.

    출판사 판매액의 10% 인세로 받아

    2010년 8월 경찰청의 1년 전 약속은 모두 거짓말이 됐다. 학과시험 문제는 문제은행에서 출제되기 시작했지만 개발된 시험문제는 당초 약속했던 2000문항이 아닌 300문항에 그쳤고, 문제은행은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 대신 도로교통공단은 자신들이 개발한 문제은행의 시험문제를 각 출판사에 판매액의 10%를 인세로 받는 조건으로 팔아버렸다. 인세는 저작권료 명목이었다. 이때부터 각 출판사가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받아서 만든 시험문제집을 사는 사람은 국가기관에 책값의 10%를 지불한 셈이 된다.



    당시 문제은행을 만들고 저작권 판매를 결정한 경찰청 운전면허시험단(2011년 1월 도로교통공단으로 흡수 통합) 측의 해명은 이랬다.

    “문제은행을 만드는 데 7억4000만 원가량을 치르고 있다. 비용이 들었다. 여기에다 매년 총 문제의 20% 정도를 새로 만들어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각 출판사에게 판매액의 10%를 저작권료 명목으로 받고 (문제은행을) 팔기로 방침을 바꿨다. 문제은행 구축에 들어간, 또는 앞으로 더 들어갈 예산은 운전면허를 따려는 사람, 즉 응시생이 물어야 한다.”

    그러자 교통안전 관련 시민단체와 관리단(도로교통공단) 사이에 문제은행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관리단은 “한국저작권위원회로부터 저작권 보호를 받는 공공저작물”이라 주장했고, 시민단체 측은 “국가 예산(응시수수료 포함)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만든 저작물이므로 문제은행에 포함된 모든 문제의 저작권은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있으며, 이는 저작권법 제7조의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 측은 “문제은행의 각 문제는 도로교통법과 자동차 관련법 등 각종 법률과 규칙, 판례 등을 토대로 (응용해) 국가기관이 만든 편집물(창작물 포함)이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문제은행의 일반 무상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법조항의 유권해석에 나선 문화체육관광부(당시 문화관광부·문광부)는 “저작권법 제7조 4호에 나오는 ‘편집물’은 법률과 규칙, 의결, 결정 따위를 단순 ‘편집한 것’을 뜻하며, 따라서 이를 응용 또는 새로운 창작이 가해져 만들어진 문제은행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라 맞섰다.

    문광부는 자신들의 유권해석에도 반발이 그치지 않자 법제처에 ‘제1호, 제3호에 규정된 것의 편집물’ 부분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하지만 법제처도 문제은행을 저작권법에 따른 공공저작물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 후 문제은행과 관련한 저작권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문제는 6월 경찰청이 정강 녹색교통정책연구소장의 “문제은행의 내용을 출판사에 매매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서면 질의에 대해 “문제은행의 내용을 사전에 출판사에 판권 없이 무료로 제공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답을 보내면서 불거졌다. 알고 보니 도로교통공단이 1월 1일부터 출판사에 무료로 문제를 공개하고 있었던 것.

    운전면허 시험문제 공개 왜 8개월간 쉬쉬했나
    법제처 유권해석 거부한 셈

    그렇다면 도로교통공단은 왜 갑자기 출판사로부터 받던 수억 원에 달하는 저작권료를 포기하고 문제은행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하려 한 것일까. ‘주간동아’ 취재 결과, 도로교통공단은 이미 2년여 전인 2011년 1월 20일 법제처로부터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개 청구가 있을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편집저작물로 등록된 후 출판됐다 하더라도 공개를 거부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다시 말하면 문제은행은 공공저작권이자 마땅히 공개돼야 할 공공정보이기도 하므로 일반 국민의 요청이 있으면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다.

    도로교통공단이 법제처의 유권해석과 국회의원들의 비판, 시민단체의 꾸준한 공개 압력을 2년여 동안 거부한 이유는 단순해 보인다. 2010년 8월 당시 출판사들과 맺은 인세 계약이 지난해 말까지 유효했기 때문. 실제 공단은 1월 1일 출판사들과 ‘운전면허 학과시험 문제 이용허락(출판)계약’을 맺으면서 인세를 받지 않았다. 무상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인세 수입 때문에 거부했던 셈. 공단은 법제처로부터 이런 내용의 유권해석을 받은 사실뿐 아니라 정보 공개를 요청하면 문제은행을 무료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아직까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8월부터 인터넷에 공개된다는 내용도 ‘주간동아’ 취재 결과 밝혀진 내용이다.

    정강 소장은 “도로교통공단이 법제처의 유권해석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1월부터 무상 공개 방침을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는 이유는 무상으로 문제은행을 공급받은 각 출판사측에 8개월 동안이라도 특혜를 주기 위한 행동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상한 점은 이것뿐이 아니다. 도로교통공단은 6개월간의 준비작업 끝에 6월 5일 홈페이지에 10개 외국어로 된 문제은행을 모두 공개한 반면, 유독 한국어 문제은행은 8월로 공개를 미뤘다. 1월 무상으로 문제은행의 내용을 받아 문제집을 출간한 출판사와의 유착 의혹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학과시험 문제집 출판사 관계자는 “우리는 1월 계약 당시 문제은행이 8월에 공개되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1월의 문제은행 무상 제공은 임시로 결정된 내용이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했다. 외국어를 먼저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출간된 책자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이미 책자로 나와 있는 데다 문제은행이 700문항으로 늘어나는 8월에 맞춰 공개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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