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2

2014.06.16

축구는 DNA다, 삼바와 함께

브라질 국민들 축구는 일상이자 행복…축구 선수가 되면 신분 급상승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전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축구리포터 lunapiena7@naver.com

    입력2014-06-16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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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에서 축구는 하나의 문화이자 민족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냥 온 나라가 축구뿐이다. 유럽과 남미로 양분된 축구 세계에서 브라질의 축구 문화는 특유의 멋과 맛이 가미된 차별성을 보인다.

    유럽 축구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에 맹목적인 수준의 충성도를 보인다. 아버지가 응원한 팀이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대대손손 이어져 한 가문이 해당 팀의 정서와 정신을 공유하는 식이다. 브라질은 좀 다르다. 브라질 사람에게도 축구는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마치 공기나 물 같은 존재지만 응원팀에 대한 충성도는 유럽 같지 않다. 그들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보다 스스로 축구를 하고, 경기를 관람하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낀다.

    다양한 민족이 소통과 화합

    브라질은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진 나라로, 원주민 인디오와 정복자였던 포르투갈계 백인, 거대한 사탕수수농장과 금광에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계 사람들, 20세기 초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노동자, 그리고 그들 사이의 혼혈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산다. 이들의 역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독특한 것은 이럴 경우 세대가 지날수록 상처가 깊어지고 곪아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브라질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화합한다는 점이다.

    브라질 음악 ‘삼바’에는 이러한 브라질 사람의 성향이 그대로 담겼다. 2014 브라질월드컵 공식 주제가 ‘우리는 하나’(We are One(Ole Ola))가 삼바의 흥겨운 리듬과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브라질 국민에게 외면받는 데서 알 수 있듯, 삼바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이다. 애초 이 음악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 온 나라 권력을 독점하는 백인에 대한 흑인의 저항에서 시작됐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처우에 고통 받던 브라질 흑인들은 고향의 리듬을 연주하며 위로를 얻었다. 몸과 마음은 땅으로 꺼지기 일보 직전인데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격렬하리만큼 경쾌하고 신명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락에 인도, 포르투갈 리듬과 다른 이민자 사회의 음악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삼바는 점점 풍성하고 입체적인 형태를 갖게 됐다. 현재 삼바는 당김음이 있는 4분의 2 박자 타악기 리듬을 중심으로 여러 민족의 현악기와 관악기가 연주하는 멜로디가 혼합된 형태를 갖고 있다.

    삼바 역사를 좀 더 깊이 살펴보자. 브라질에서는 1888년 흑인노예해방이 선포됐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백인 지배층은 삼바를 하급문화로 여겼고, 유럽에서 온 문화인 ‘카니발페스티벌’에서 삼바를 연주하는 것을 금지했다. 삼바는 여전히 흑인 빈민지역에서 연주되는, 그들만의 저항음악이었다. 그러다 1930년대 말 집권한 바르가스 정부가 축구와 삼바를 국가 통합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부는 소수의 백인 럭셔리 클럽팀에서 백인 선수들만 즐기던 유럽 문화 축구를 대중화했고, 타악기로만 연주하던 삼바에 좀 더 입체적이고 다민족적인 색을 입혔다. ‘백인 문화’ 축구와 ‘흑인 문화’ 삼바에 각각 상업적이고 중독성 있는 색채를 가미해 전자는 브라질 국민 스포츠로, 후자는 카니발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 공연으로 재탄생하게 한 것이다.

    이 정책은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정부에 반대하던 진영의 정치인, 지식인조차 폭발적 국민 반응에 동참해 축구와 삼바를 권장하고, 이 둘을 국민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이제는 브라질 축구를 보통 ‘삼바 축구’라 하고, 삼바를 들으면 많은 이가 자연스레 축구를 떠올린다. 출신 성분이 다른 두 문화가 끈적끈적하게 공생하는 셈이다.

    이는 다른 나라와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블루스는 노예해방 이후에도 지속되는 인종차별과 빈곤 등 흑인이 겪는 절망적 현실과 애환을 애절하게 절규하는 음악이다. 현대에도 블루스 공연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만 위안을 얻을 뿐, 음악이 끝나면 마음의 상처는 다시 꽁꽁 숨겨두게 된다. 공유의 장은 따로 없다. 현재 블루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국가적 아이콘이라기보다 세계적으로 마니아를 가진 글로벌 장르음악이다.

    삼바는 다르다. 보통은 삼바 하면 늘씬한 반나체의 미녀가 요염한 춤을 추는 퍼레이드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만, 브라질에서는 배불뚝이 아저씨나 육중한 몸집의 아주머니도 삼바에 맞춰 춤을 추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삼바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춤곡이 가진 엄격한 순서와 법칙이 아예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온몸을 흔드는 것, 이른바 막춤이 허용된다. 그렇게 한바탕 춤을 추다 보면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잊을 정도로 재미있다. 모두 막춤을 추며 서로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이는 것. 전율적으로 다 같이 흔들고 망가지면서 어떠한 논의와 회의로도 이룰 수 없는 합의에 원만하게 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삼바가 가진 매력이다.

    물론 매년 닷새 동안 열리는 삼바 카니발과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브라질이 완벽하게 계층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통합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두 가지가 각기 다른 민족, 인종을 브라질 국민으로 묶어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온몸으로 축구하고 응원하고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판검사나 의사가 되는 것을 신분 상승의 지름길로 여겼다. 빈부격차가 상상을 초월하는 브라질에서는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신분 상승의 거의 유일한 길이다. 20세기 말 최고의 축구 스타인 호나우두의 어머니는 아이스크림가게 점원이었다. 호나우두가 16세 때 브라질 크루제이루 EC와 계약하자마자 그 가게를 통째로 구매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PSV 에인트호벤, FC 바르셀로나, 인터밀란을 거치며 그는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인기도 치솟았다. 더불어 그의 가족은 왕족처럼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됐다.

    가족 중 축구 선수가 한 명 있으면 3대가 호의호식하겠다는 생각에 한때 필자도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축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에는 브라질 문화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브라질 사람은 비장하게 가문의 영화와 개인 영달을 위해 축구를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좋아서, 신명이 나서 온몸을 움직인다. 그것이 바로 브라질의 축구 문화다.

    브라질에는 체계적인 축구 선수 육성 프로그램이 없다. 하지만 브라질 어린이는 뭐든 굴러가는 것만 있으면 포장도 안 된 길에서 발로 차며 혼자서라도 드리블을 연습한다. 어린 시절부터 신나게 보고 듣고 느낀 삼바 리듬을 바탕으로 온몸으로 공격하고 온몸으로 수비하고 온몸으로 응원한다. 머리로 하는 축구로는 본능에 맡기는 축구를 절대 이길 수 없다. 브라질 축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 아닐까.

    6월 18일 오전 7시(한국시간)! 드디어 우리 태극용사들이 러시아와의 경기를 위해 출격한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최종 평가전에서 당한 충격적인 패배 때문에 속이 그다지 편치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을 뒤척이거나 설렘으로 밤을 지새울 테고, 경기가 시작하는 오전 7시에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질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단순히 우리나라가 승리하기만을 바라며 응원할 게 아니라, 경기 자체를 즐기는 나 자신에 집중해 기쁨과 설렘을 보고 듣고 느끼며 표현하는 열정적인 응원을 해보면 어떨까. 어디선가 들은 삼바 음악을 콧노래로 부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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