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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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갖춘 ‘중화 야심’ 고삐 풀렸다

중국 대외정책 중재보다 ‘강압전략’…미국 패권전략과 충돌 동아시아 먹구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3-12-09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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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갖춘 ‘중화 야심’ 고삐 풀렸다

    중국 신예 전투기 젠-15가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 갑판에서 출격하는 모습. 중국 언론은 최근 이 전투기가 양산체제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문화적 현실주의(Cultural Realism)’. 앨러스테어 존스턴 미 하버드대 교수가 1995년 펴낸 연구서적 제목이다. 언뜻 딱딱해 보이기만 하는 이 책은, 그러나 학계를 넘어 워싱턴 정가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수천 년 역사 동안 중국 대외전략이 보여온 특성을 분석했다는 그의 주장이 향후 중국 대외정책 행보와 관련해 매우 염려할 만한 전망을 던졌기 때문이다.

    흔히 무경칠서(武經七書)라 부르는 중국의 7대 고전병법서를 주로 분석한 그는 중국이 무력 사용과 관련해 서구 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전통 위에 서 있다고 주장한다. 협상보다 무력 과시나 사용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고, 위기나 갈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데다, 방어나 중재보다 강압전략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중국 대외정책 사고방식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은 여건만 조성된다면 언제든 힘을 과시하고 나서려는 DNA를 가슴 깊이 새긴 나라라는 뜻이다. 그는 이러한 특징이 현대 중국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국력이 충분히 강해지면 중국발(發) 힘의 정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주로 중국계 전문가들이 제기한 반론의 근거는 폭력적인 수단보다 덕(德)과 예(禮)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자나 맹자, 주자 등이 오히려 중국 문화에 더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존스턴의 주장은 마침 떠오르던 이른바 ‘중국 위협론’과 맞물리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다가올 먹구름을 예상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18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그사이 엄청난 경제성장과 군비 증강에 힘을 쏟은 중국은 서서히 ‘힘의 정치’를 공개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신호탄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사건이 바로 11월 23일 베이징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다. 이어도를 넘어 기존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과 일부 중첩될 뿐 아니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까지 포함해 일본 방공식별구역을 상당부분 차지하는 공세적 행보였다.

    한국·일본을 자극하는 공세적 행보



    그 과정에서 중국 군부의 견해가 강력히 작동했다는 사실 역시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수년 전부터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주장해왔으며 지난여름 무렵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종 결심을 내렸다는 홍콩 언론의 분석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이 ‘중국판 NSC’로 불리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창설해 대외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 시도하자 군부 일각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를 달래는 차원에서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승인해줬다는 게 그 골자다. 서구 국가와 비교하면 군부가 여전히 상당한 발언권을 지닌 중국 대외정책 결정 과정의 ‘위험한 고리’다.

    존스턴이 중국을 들여다본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 대외정책 패턴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국제법에 대한 강한 의식’과 ‘정교한 계산에 따른 정책결정’을 꼽는다. 분쟁이 벌어질 경우 이를 어떤 식으로든 국제 체제(regime) 차원의 논의를 통해 개입 혹은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이러한 특성은 한층 공고해졌고, 그 덕분에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위상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게 국제정치학계 정설이다. 9·11테러와 이후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행보 때문에 일부 금이 가긴 했지만, 냉전 직후 혼란기에도 세계질서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유일 초강대국이던 미국 특유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러한 미국의 특성이 이번 방공식별구역 파문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초 미국은 한국, 일본과 함께 중국의 선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즉각 발표했고, B-52 폭격기 2대를 급파해 무력시위를 감행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강 대 강’ 대결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져 나온 이유였다.

    그러나 상황이 진행되면서 미국 측 행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12월 4일 중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부통령은 당초 예상과 달리 공개석상에서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시 주석과의 비공개 협의에서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바이든 부통령이 12월 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밝힌 내용. 당초 일본 측은 중국의 구역 설정 철회를 요구하는 강력한 공동발표를 기대했지만, 미국이 선택한 카드는 ‘중·일 간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 체제 구축’이었다. 중국의 일방적인 행보는 염려스럽지만, 그 해법은 ‘국제 체제를 통한 해결’이라는 ‘중재자’의 태도라는 의미였다.

    남은 것은 한국이다. 사태 초기 국방부를 중심으로 KADIZ의 즉각적인 확대를 공언했던 정부는 파장을 우려한 외교부 일각과 미국 측의 유보적 태도가 맞물리면서 거듭 선언을 연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예정된 당정협의가 미뤄지는가 하면, 바이든 부통령의 서울 방문 이후에야 KADIZ 확대의 범위와 시점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마음은 중국식의 강성 정치를 흉내 내고 싶지만, 몸은 강력한 한미동맹과 국제정치 원칙론에 묶인 한국의 옹색한 처지가 숨김없이 드러난 한 주였다.

    신냉전시대 우울한 그림자

    분명한 사실은 이 같은 그림이 이제 서막일 뿐이라는 점이다. ‘힘의 정치’라는 중화(中華)의 DNA는 막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따름이다. 중국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직 미국에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지만, 하늘 길과 바닷길을 고스란히 맞댄 한국으로서는 그 꿈틀거림마다 고된 요동을 피할 방법이 없다. 중국발 돌발변수와 미국의 반걸음 떨어진 태도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뜻이다.

    정작 최악의 시나리오는 따로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대외정책 패턴을 분석한 많은 전문가는 두 나라의 특성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이들의 설명은 중국과 미국의 차이를 설명하는 최근 해석과 그대로 맥이 닿는다. ‘무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련’과 ‘정교한 셈법을 중시하는 미국’이라는 도식이다. 이는 고스란히 ‘이대로 가다가는 소련에 하염없이 밀리고 만다’는 미국 내 보수강경파의 주장으로 이어졌고, 같은 관점에서 카터 행정부의 대외정책 노선을 공공연히 비판했던 대표적인 인물 콜린 그레이는 정권 교체 이후 백악관에 군축담당 자문으로 입성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대소(對蘇) 강경노선이었다. ‘악의 축’ 소련을 타도하기 위한 군비경쟁의 시대, 냉전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야기한 일련의 파문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에서 ‘주동작위(主動作爲·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로 변모하고 있다는 중국의 전략이, 더는 자제하지 않는 중국의 행보가, 미국의 대외정책 흐름에도 악영향을 끼치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행정부의 유보적인 대중(對中) 노선이 워싱턴에서조차 설 땅을 잃게 되는 순간 확연해질 우울한 신(新)냉전의 그림자다. 그 사이에 낀 한국의 숨 가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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