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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섬마을…모래톱 백로…북송 문인화가 그림 스타일
1350년경 그린 ‘독화로사도’ 유일한 고려 수묵화 확실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그림1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 그림2 암석 비교. 그림3 나뭇잎 비교.

시서화 교류에서 고려(918~1392)와 송(960~1279) 문인의 관계는 매우 긴밀했다. 고려 화가 이영(李寧)은 1124년 사신들과 함께 북송(960~1127)에 들어가 휘종(徽宗·재위 1100~1125) 요청으로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에게 그림을 가르쳤고, ‘예성강도(禮成江圖)’도 그렸다. 고려 인종(재위 1122~1146)은 이영 그림을 중국 명화로 알고 기뻐했다. 1190년 이규보(1168~1241)가 지은 시는 남송(1127~1279) 문인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고, 그림 족자로까지 만들어져 널리 퍼졌다.

842년부터 1074년까지 232년 동안의 중국 화가 284명을 기록한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서 곽약허(郭若虛·?~?)는 “고려가 고상한 문화를 추구해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청색 종이로 만든 접이식 부채에 그린 그림을 통해 두 종류의 고려 화풍을 소개했다.

‘소상죽석도’와 같은 암석화법

하나는 고려 귀족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부녀자나 말도 그려 넣었다. 다른 하나는 물가 풍경으로, 바닷가 모래톱에 사는 새, 연꽃, 꽃, 나무 등을 그렸다. ‘독화로사도’(그림1)는 후자 경우다. ‘독화로사도’처럼 바닷가 모래톱을 묘사한 공예품으로는 직경 5.6cm인 13세기 은제도금신선타출무늬 향합에 새긴 족자 속 그림이 있다.

‘그림1’은 8세기 구도로 ‘주간동아’ 879호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전체적으로 북송 문인화가 화법을 사용했는데, 암석은 소식(蘇軾·1036~1101), 나무는 미불(1051~1107), 쇠백로는 북송 문인화풍으로 그렸다.

‘그림1’ 속 암석 화법은 중국미술관이 소장한 소식의 ‘소상죽석도(瀟湘竹石圖)’와 같다. 이를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조맹부(趙孟 ·1254~1322)의 ‘수석소림도(秀石疏林圖)’, 가구사(柯九思·1290~1343)의 ‘청비각묵죽도’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그림1’과 소식의 그림은 붓끝이 획 중심을 지나는 중봉(中鋒)을 주로 사용했으나, 조맹부는 붓끝이 밖으로 치우친 측봉(側鋒)으로 그렸다. 가구사의 암석은 소식이나 조맹부와 다르게 도식적이며, 돌 위에 농묵으로 ‘태점(苔點)’까지 찍었다(그림2).

‘그림1’ 속 나무 화법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미불의 큰아들 미우인(米友仁·1090~1170)의 ‘소상기관도권(瀟湘寄觀圖卷)’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 그림은 현재 미불의 회화작품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화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림1’과 이 그림은 나뭇잎 형태를 ‘·#52003;’처럼 처음과 끝이 위로 향하는 앙두법(仰頭法)으로 볼륨감 있게 그렸다. 이는 다른 그림에서 찾기 힘든 두 그림만의 공통점이다. 원나라 이후 미불 화법 모델인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고극공(高克恭·1248~1310)의 ‘운횡수령(雲橫秀嶺)’은 나뭇잎이 모두 ‘―’처럼 평두법(平頭法)으로 그려졌다(그림3).

쇠백로를 그린 북송 문인화가 그림은 현재 전하는 게 없다. 북송 시서화 전통은 금나라 문인들이 계승했다. 하지만 금나라 문인화가가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 쇠백로 그림도 전하는 게 없다. 귀하게도 금나라 대정(1161~1170) 때 제작한 자주요(磁州窯) 도자기 베개에서 북송 문인들의 시서화를 만날 수 있다. 이때 제작한 도자기 베개에 쇠백로 그림도 있다. 이를 ‘그림1’ 쇠백로와 비교하면 같은 화법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그림4).

‘그림1’에는 그림을 그린 퇴경 화사와 컬렉터인 유하노인 글씨가 있다. 현재 전하는 그림으로만 봐도, 화가가 그림에 직접 시를 쓴 경우는 북송 그림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당시 화가는 작품에 정작 자신의 서명이나 도장은 찍지 않았다. 그림 위에 컬렉터가 직접 글을 남긴 경우는 늦어도 남송 초기 작품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화가나 컬렉터가 그림 위에 글을 남기는 일은 적어도 1150년 이전에 보편화됐다.

‘그림1’ 왼쪽 아래에 있는 유하노인의 글은 이렇다.

“오른쪽 칠언절구는 송운곡(宋雲谷)의 ‘백구(白鷗)’ 시다. 내가 매번 이를 읽을 때면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낀다. 퇴경(退耕) 화사에게 부탁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거는 보물로 삼았다. 유하노인.”

송운곡의 시 ‘백구’를 쓴 퇴경 화사의 글씨는 ‘그림1’ 오른쪽 위에 있다.

“타고난 본성이 세상일에 구애받지 않고 소탈해 품성이 매우 높아/ 맑고 깨끗한 가을 강물에서 노닐기에 충분하다/ 물고기 구하러 진흙탕에 가지 마라/ 도리어 진흙탕을 원망하며 타고난 하얀 털을 더럽히네.”

유하노인과 퇴경 화사 글씨가 실마리

그림4 ‘독화로사도’와 자주요의 ‘쇠백로’ 비교.

유하노인 글에 따르면, 퇴경 화사가 그린 것은 분명히 송운곡의 시 ‘백구’다. ‘그림1’은 이규보에 따르면, 이백의 시 ‘백로’를 그린 것이다. 하얀 갈매기인 백구와 백로는 서로 다른 데 어떻게 된 것일까. 유하노인과 퇴경 글씨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유하노인은 소식 글씨, 퇴경은 미불 글씨를 배웠다. 한편 두 사람 글씨에서 공통적으로 조맹부 글씨 짜임새가 보인다. 1346년 성사달(?~1380)이 쓴 ‘연복사종명(演福寺鐘銘)’ 속 글씨는 조맹부 글씨가 고려 문인에 의해 완벽히 재현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림1’은 늦어도 1350년경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을 공산이 크다. 만일 유하노인이 ‘백로’를 ‘백구’로 잘못 썼다면 ‘그림1’이 완성된 시기는 위로 올라간다. 현재로선 ‘그림1’ 제작 시기가 12세기부터 14세기 중반까지로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림1’은 이규보가 칭송했던 ‘독화로사도’ 원작이나 화고를 똑같이 그린 것이다.

‘그림1’은 안평대군 이용(1418~1453) 명으로 안견이 1447년 그린 ‘몽도원도’와 어떠한 시대적 차이를 지닐까. 산수화에서 실제 경치를 묘사한 게 아닌, 장식적 효과로 사용한 태점은 제작 시기를 구분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된다. 고려 수묵화 ‘그림1’에는 태점이 없는 반면, 조선 초 안견 그림엔 태점이 있다. 안견의 ‘몽도원도’는 북송 곽희(郭熙·?~?) 화풍을 이은 원나라(1271~1368) 말기 그림을 따랐다. 즉, 원나라 말기에 유행하던 곽희 화풍을 배운 것이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곽희의 ‘과석평원도’에는 태점이 없지만, 곽희 화풍을 배운 원대 그림 ‘경령옥수도’에는 태점이 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남송 하규(夏圭·?~?)의 ‘계산청원도(溪山淸遠圖)’는 장식적인 태점이 수묵 산수화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됐음을 말해준다. 그 유행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조맹부의 ‘수촌도(水村圖)’에서 확인된다. ‘몽도원도’ ‘과석평원도’ ‘계산청원도’ ‘수촌도’를 비교해보면, 태점 유무와 그 변화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그림5).

‘그림1’은 우리나라 바닷가 섬, 섬마을, 모래톱에 서 있는 백로를 8세기 유행하던 구도와 북송 문인화가의 그림 스타일로 그린 작품이다. 즉, 이규보가 노래한 명화 ‘독화로사도’를 늦어도 1350년경 똑같이 베낀 것이다. ‘그림1’은 현재 종이나 비단에 그린 우리나라 순수 회화작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유일한 고려 수묵화다.

그림5 태점 비교.

감정학 박사 1호 이동천의 ‘예술과 천기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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