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4

2013.02.04

신동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 “멍 때려 뇌 휴식을 허하라!”

디지털 자극으로 뇌는 계속 긴장, 단순한 시간 가져야

  • 김시원 객원기자 seannakim@gmail.com

    입력2013-02-01 17: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동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 “멍 때려 뇌 휴식을 허하라!”
    가히 스마트폰의 음모라 할 수 있겠다. 엄지손가락의 사소한 노동으로 두뇌의 모자람을 채우고, 수많은 이와 소통하는 길을 열며, 한시의 무료함도 허락하지 않는 무한한 재미의 원천을 제공하는 대가로 생활 전반과 인간관계는 물론, 뇌신경 회로까지 주무르겠다는.

    우리 손에 스마트폰이란 이름의 전능한 기기를 쥔 지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60% 이상이 최소 6분에 한 번꼴로 스마트폰에 접속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스스로 통제 못하면 이미 중독

    신동원(49) 성균관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지하철이나 사무실, 침실, 심지어 화장실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스마트폰에 중독됐으며, 디지털기기의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된 뇌는 혹사당하다 못해 그 지형도까지 바뀔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스마트폰에 통제당하는 현대인의 문제점을 뇌과학적으로 밝힌 저서 ‘멍 때려라!’(센추리원)를 통해 스마트폰 중독을 통렬히 비판한 신 교수를 서울 강북삼성병원 외래진료실에서 만났다.



    “사실은 제가 정말 심했어요. 병동 사이를 오가면서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도대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정신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고, 제 전문분야인 뇌가 작동하는 방식, 즉 인간성에 위배된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논문을 다운로드받으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맛집 리뷰를 확인하며 친구와의 모임 장소를 정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있더라”는 신 교수는 디지털화로 인한 뇌 손상을 파헤쳐보겠다는 연구자의 시각이 아니라, ‘나와 당신은 다르지 않다’는 동등한 스마트폰 사용자의 눈으로 집필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자기 경험을 계기로, 스마트폰을 통제하지 못한 채 오히려 통제당하는 현대인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뇌과학적으로 밝혀내려 했다는 그는 “막상 책이 나오자 의외로 주변 관심이 폭발적이어서 나 자신이 더 놀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중독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어떤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이미 중독된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고객과 상담하는 도중 상대가 기분 나빠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은행 직원이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꺼놓지 못하는 학생 등이 그런 경우죠.”

    신 교수가 책에서 가장 강조한 바는 스마트폰 중독이 뇌 발달 자체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이성적 판단과 충동 조절, 타인에 대한 배려, 깊은 사고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디지털기기에 과다하게 노출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실제로 그가 접한 환자 사례를 소개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지닌 독자로 하여금 ‘나도 중독이 아닐까’ 하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외롭고 슬플 때 같이 밥 한 끼 먹을 친구가 없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가 2000명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신 교수는 우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더 스마트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고 꼬집는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가 내놓은 해답은 간단하다. 저서 제목처럼 “멍 때려라”는 것이다.

    “‘멍 때려라’는 말은 인터넷과 디지털 자극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뇌에게 휴식을 허락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 뇌는 집중→휴식→집중→휴식→집중 방식으로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하며 일하죠. 그런데 현대인은 계속 집중→집중→집중→집중만 거듭하고 있어요. 우리 뇌는 몇천 년 전부터 변함없는데, 여기에 불균형이 생긴 거죠.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멍 때리기’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서도 신 교수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고무줄을 계속 잡아당기면 탄력을 잃고 늘어져버리는 것과 같아요. 달리기 선수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달려야 잘 달릴 수 있듯이 뇌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집중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 자연스럽게 멍 때리기를 해왔는데 잊고 있을 뿐이죠.”

    스스로도 멍 때리려고 노력한다는 신 교수는 “멍 때리기와 함께 몰입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 운동 또는 단순작업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숙면을 취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접속보다 접촉’이 뇌 활성화

    신동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 “멍 때려 뇌 휴식을 허하라!”

    1월 15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열린 신동원 교수의 ‘멍 때리자’ 건강강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거나 몸에 집중하는 거예요. 과음처럼 하고 난 뒤 후회스럽고 공허하다면 그것은 중독이죠. 운동이나 뜨개질처럼 하고 난 뒤 뿌듯해지고 기술도 향상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단순하게 보내는 것이 좋아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 힘든 지경이라면 멍 때리기를 위해 먼저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엔 좋은 점이 많죠. 다만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면 됩니다. 밤 11시 이후 또는 고객과의 만남이나 공부 등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할 땐 꺼놓으라는 거예요. 다행히 많은 사람이 슬슬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을 국내에 도입한 지 3년인데 그 사이 뇌가 바뀌어야 얼마나 바뀌었겠어요.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기기가 우리를 풍요롭게 하지 못하고 되레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면, 인간성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 교수는 책에서 ‘접속보다 접촉’ ‘머리는 비우고 사람은 채워라’는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는 생활을 강조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최신 정보를 속도감 있게 탑재하고, 손쉽게 맺고 끊을 수 있는 팔로 수를 늘리는 것보다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것이 뇌를 위해서도 바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디지털기기에 일찍 노출될수록 뇌 신경경로가 강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어릴수록 중독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디지털기기 중독도 술이나 담배처럼 끊기 힘들고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도 큰데, 알코올이나 니코틴과 달리 아이들에게 너무 관대하게 허용되는 게 현실이죠. 자녀를 생각한다면 깊은 사고가 필요 없는 스마트폰을 쥐어주기보다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번뜩이는 자극으로 가득한 디지털기기는 절제하기 힘든 물건이다. 하지만 이젠 정말 ‘스마트’하게 스마트폰을 통제할 때가 아닐까. 신 교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10세 남자아이 환자가 스마트폰을 하게 해달라고 조르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너한테는 독이야. 스마트폰을 허락하기엔 네가 무척 소중해.”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