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0

2013.01.07

오직 MB에 충성한 ‘稅 남자’

한상률, 백용호, 이현동 전·현 국세청장 5년 내내 잡음과 논란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3-01-07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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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MB에 충성한 ‘稅 남자’
    이명박(MB) 정부 5년간 국세청은 시끄러웠다. 비리 의혹이 이어졌고, 정치권력이 국세청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인사 관련 잡음도 계속됐다. 그 중심에는 한상률, 백용호 전 국세청장과 이현동 현 청장 등 ‘MB의 남자’를 자처한 3명이 있다.

    MB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국세청은 전 정권을 겨냥한 사정(司正)성 세무조사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장이 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새 정부에서도 살아남으려고 기획했다는 뒷얘기가 무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정화삼 씨가 대표로 있던 제피로스 골프클럽(2008년 3월)이 첫 표적이 됐다. 정씨는 국세청 고발로 이어진 검찰 수사과정에서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의 단골식당이던 서울 종로구 삼계탕집 토속촌,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2008년 5월)도 세무조사를 받았다. ‘다음’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터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진원지였다.

    정치권력 하수인?

    그해 7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졌던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회사였음에도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지방국세청(서울청) 조사4국이 세무조사에 나섰다. “공정성을 기하려고 교차조사를 했다”는 게 당시 국세청 측 설명이었으나, MB정부 내내 표적조사 논란이 제기됐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이후 검찰수사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후원자로 알려진 이상호 원장의 우리들병원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이들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소식이 알려질 때마다 “정기 세무조사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수긍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가령 우리들병원만 해도 청와대 하명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직접 세무조사에 나서서 전 정권과 가까운 사람을 겨냥한 표적 세무조사라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국세청’을 둘러싼 논란 중심에는 한상률 전 청장이 있다. 2009년 초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은 거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제일 먼저 터진 건 그림로비, 골프로비였다. 국세청 차장 시절이던 2007년, 당시 전군표 청장에게 그림을 선물하며 인사로비를 했다는 의혹과 2008년 12월 MB정부 실세들과 골프를 치고 폭탄주를 마시며 인사청탁을 했다는 의혹이었다. 한 전 청장은 2004년 세무조사를 받은 한 해운회사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5000만 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도 받았다.

    2009년 11월 세무조사를 무기로 기업들에게 미술품을 강매했다는 의혹을 받던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은 “MB정부 출범 직전 한 전 청장이 국세청 차장 자리를 제의하면서 3억 원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전 국장은 또 이명박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벌어졌던 포스코건설 소유 서울 도곡동 땅과 관련한 의혹도 폭로했다. 2007년 대구지방국세청장 당시 포스코건설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고 적힌 전표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2011년 2월 한 전 청장이 귀국한 직후 시작된 검찰 수사과정에선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확인됐다. 한 전 청장이 청장에서 물러난 이후 주정업체 3곳과 대기업 3곳으로부터 자문료, 고문료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한 전 청장이 돈을 받는 과정에서 기업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자신의 옛 부하직원들을 동원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은 한 전 청장이 2년간 주정업체로부터 받은 자문료 6900만 원만 뇌물로 판단했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골프로비, 태광실업 기획조사 관련 의혹 등은 아예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나왔다. 2012년 8월 31일 서울고등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그림로비,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사조직으로 전락한 국세청

    오직 MB에 충성한 ‘稅 남자’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국세청 조직을 사실상 사조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 전 청장은 청장 취임 직후인 2007년 11월 국세청 간부들에 대한 감찰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특별감찰팀’(특감팀)을 만들었다. 특감팀은 국세청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조직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한 전 청장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을 감찰하는 게 주목적이라는 비난이 높았다. 심지어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국세청을 퇴직한 직원에 대해서도 감찰에 나서 ‘민간인 사찰’ 의혹까지 샀다. 이런 사실은 2011년 초 진행된 한 전 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물론 국세청뿐 아니라, 다른 권력기관의 감찰팀이 하는 일은 대동소이하다. 현 기관장의 잠재적 경쟁자가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는지, 특히 정권 실세를 만나 현 기관장을 낙마시키려 하지는 않는지 등이 집중 감찰 대상이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의 특감팀은 이런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국세청장이 새 정권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무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현동 청장도 무리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청장은 서울청장 시절 국세청 감찰팀을 움직여 안원구 당시 국세청 국장에게 사퇴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안 전 국장은 “당시(2009년 7월경) 이 청장을 직접 만나 항의했다. 그러나 이 청장은 ‘본인이 편한 대로 생각하라. 그런데 그게(절차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고 답했다. 이 청장의 행동은 분명히 직권남용 소지가 있었지만, 그는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청장이 직권을 남용해 안 전 국장에게 사퇴를 강요하던 당시 국세청 책임자는 허병익 전 차장과 2009년 7월 청장에 취임한 백용호 현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이다. 이들은 사실상 이 청장의 직권남용을 방조 혹은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현동 인사스타일은 TK 독식

    MB정부 5년 내내 국세청 주변에선 인사 관련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자기 사람 심기, 대구·경북(TK) 출신 독식 인사라는 얘기가 많았다.

    2009년 1월 그림로비, 골프로비 의혹 등으로 한 전 청장이 국세청을 떠난 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신임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청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6개월만이었다. 그러나 백 청장은 세무 분야 비전문가였다.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을 차관급인 국세청장에 임명한 것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된 것은 공정해야 할 국세청 수장에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임명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MB정부 출범 이후 5년간 줄곧 요직을 도맡았다. 그리고 2010년 7월 국세청장에서 퇴임하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맡고 있다.

    백 청장 후임으로 임명된 이현동 청장의 초고속 승진은 이명박 국세청 인사스타일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청장은 이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 나간 직후부터 초고속으로 승진해 청장에 올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1개월)을 지낸 그는 국세청 핵심 요직인 조사국장(6개월)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곧이어 국세청 빅3 가운데 하나인 서울청장(6개월)으로 영전했고, 곧바로 국세청 차장이 됐다. 서울청 국장에서 국세청 넘버2인 차장이 되는 데 1년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이 청장이 단행한 여러 번의 국세청 인사는 그때마다 구설에 올랐다. 주로 TK 출신인 이 청장이 자신과 고향이 같은 인사를 주요 요직에 배치한다는 비판이었다. 이 청장은 2010년 첫 인사 때부터 자신의 고등학교(경북고), 대학(영남대) 후배인 조현관 국세청 개인납세국장을 중부지방국세청장에 임명하는 등 TK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그 결과 국세청 고위공무원 가운데 약 50%가 TK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2011년 6월 인사에서도 주요 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을 대부분 TK 출신 인사로 채웠다. 특히 특명조사를 주로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4국장에 자신의 고향 후배를 앉힌 것은 물론 본청 조사국장, 서울청 1국장, 중부청 조사 3국장 등 요직에 모두 TK 출신을 배치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선을 앞두고 단행한 지난해 7월 인사에서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청장의 고향 후배인 조현관 중부청장이 서울청장에 임명돼 논란이 일었다. 이로써 국세청장, 서울청장, 본청 조사국장을 모두 TK가 싹쓸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10월 국세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설훈 민주통합당 의원은 “국세청 핵심 요직으로 꼽히는 곳은 어김없이 고향이나 학교로 이현동 청장과 엮여 있다. 고위직 인사가 도를 넘은 청장 정실인사로 이뤄지다 보니 제대로 된 세무행정이 이뤄질 리 만무했다”고 비판했다.

    이현동과 민간인 사찰 의혹

    “100만 원 봉투 2개”…이 청장 “돈 안 줬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한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원관실 직원들의 입막음용으로 쓴 자금 가운데 일부가 이 청장에게서 나온 사실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확인됐기 때문. 지난해 12월 ‘한겨레신문’이 공개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 기록에 따르면, 이 청장은 100만 원씩 담은 봉투 2개를 휴가비용 명목으로 최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을 통해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과 이인규 전 지원관에게 건넨 것으로 돼 있다. 2011년 7월 31일 진 전 과장이 작성한 메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최모 행정관이 나에게 EB(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지칭)가 생활비조로 주는 것이라면서 500만 원을 줬고, 이어 이현동 청장이 이번 여름에 휴가를 다녀오라면서 주는 것이라면서 봉투 하나(나중에 100만 원임을 확인)와 또 다른 봉투(비슷한 크기여서 100만 원으로 추정됨)를 주면서 ‘이것은 이 청장이 이 국장(이인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에게 주라’고 하더라고 함.”

    이와 관련해 지난해 5월 26일 최모 전 행정관은 검찰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메모를 보니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영호(비서관)가 저에게 진경락에게 전달해주라면서 봉투 3개를 줬는데, 1개는 이영호 비서관이 주는 것이라 했고, 나머지 1개는 이현동 청장이 주는 것이라며 전달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인규 국장에게 전달해주라는 봉투도 받았는데, 메모에는 진경락이 이인규 국장을 만나기도 싫다면서 전달 부탁을 거절한 것으로 돼 있지만 제 기억에는 진경락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청장은 검찰에 제출한 서면답변서를 통해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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