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0

2013.01.07

몸과 영혼이 멍드는 아이들

때리고 굶기고 아동학대 증가, 한 해 1만여 건 신고접수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1-07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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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영혼이 멍드는 아이들

    신체 학대로 머리털이 빠진 아이.

    #1 경기 ○○시(지역은 기관 측 요청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부인은 딸 넷을 홀로 키우며 상가 건물에서 살았다. 하지만 큰딸이 고등학생 때 낙태수술을 받자 엄마는 변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 개와 고양이를 발견하면 무작정 집으로 데려왔다. 쓰레기도 들고 왔다. 큰딸과 둘째 딸은 집을 나간 지 오래. 결국 엄마는 중학생인 셋째 딸, 초등학생인 넷째 딸, 그리고 고양이 6마리, 개 27마리와 1년여 동안 살았다. 문제는 건물임대료가 밀려 전기는 물론 수도까지 끊기자 엄마가 밥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두 딸을 방치했다는 점. 결국 동물 소음과 배설물 냄새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민원을 접수했다.

    #2 경기 ○○시. 엄마는 늘 술에 취해 있다. 돌을 갓 지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오는 도우미에게 술주정을 한다. 도우미에 따르면, 아이 엄마가 아이를 때린 적도 있고 방에 가둔 적도 있다고 한다. 아이 아빠는 전처와 이혼하지 않았지만, 아이 엄마와 사실혼 관계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다. 엄마가 아이를 심하게 때렸거나 방치했다면 아이와 격리할 수 있지만, 기관에서 조치를 취하기에는 애매한 상태. 주변인이 기관에 신고해 기관 관계자가 현장을 찾아가 방바닥에 떨어진 라면을 먹는 아이를 목격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3 경기 ○○시. 엄마는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인 딸들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하물며 이마나 볼에 난 여드름까지 신경 쓴다. 엄마는 여드름을 자신이 치료해야 한다며 손으로 짠다. 상처가 덧나 딱지가 생기면 엄마는 그 딱지를 뜯고, 식초 등으로 자가 치료를 시도한다. 결국 두 딸 얼굴은 화상 입은 사람처럼 흉하게 변했다. 이런 아내를 남편은 맥없이 바라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딸들이 1년 365일 내내 된장국과 밥 두 공기를 먹지 않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행여 딸들이 반항하면 사정없이 때렸다. 결국 딸들은 가출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찾았다.

    몸과 영혼이 멍드는 아이들
    방바닥에 떨어진 라면 주워 먹어

    앞에 언급한 사례들은 최근 굿네이버스 경기도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이다. 경기도는 1200만 명에 이르는 인구 밀집 지역으로, 아동학대 발생률도 높은 수준. 언뜻 보면 앞의 세 사건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엄마가 자녀를 학대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 사건이 엄연히 달랐다. 첫 사건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에서 엄마를 ‘설득해’ 정신병원에서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게 했고, 지금까지 통원 치료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방치한 엄마는 수사기관에서 문제로 여기지 않아 어떤 조치도 받지 않았다.

    아이 여드름에 집착한 엄마의 경우, 기관 관계자가 심리 검사를 권유하자 “나는 문제없다”며 완강히 치료를 거부했다. 결국 기관은 여드름에 집착하는 엄마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검찰 측에서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뒤에야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이 엄마는 이례적으로 검찰 처분을 통해 교육을 받게 됐지만, 대다수는 치료 등을 받지 않는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이를 학대하는 행위자 대부분은 부모인데도 현재 아동복지법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행위자에 대한 교육이나 치료를 강요할 수 없게 돼 있어 현장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더는 학대받지 않게 하려면 학대 행위자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 정도는 사건이 안 된다’며 훈방 조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관과 경찰 간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것입니다.”

    부모 학대가 83.1%

    몸과 영혼이 멍드는 아이들

    신체 학대를 당한 아이의 상처.

    한편 학대 아동 일시 보호시설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학대당한 아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머물지만, 그 기간에 정부로부터 합당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부는 이 시설에 운영비로 월 23만 원을 지원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서 심리치료를 기대하긴 어렵다. 게다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담당해야 할 아동 수가 너무 많다. 보건복지부의 ‘2011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전국 45군데)이 담당하는 아동 수는 평균 22만190명이다.

    이에 대해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학대 발생 건수에 비해 훨씬 적게 신고되는 이유는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낮은 이유도 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면서 “양극화 등으로 점차 심화될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증가한 상태. ‘2011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전국 4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아동학대 신고로 접수된 사례는 총 1만146건이고, 그중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사례는 8325건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6058건(72.8%), 잠재위험사례 745건(8.9%), 일반사례 1522건(18.3%)이었다. 아동학대를 유형별로 파악한 결과 중복학대가 2621건(43.3%)으로 가장 많았고, 방임 1783건(29.4%), 정서학대 909건(15%), 신체학대 466건(7.7%), 성학대 226건(3.7%), 유기 53건(0.9%)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로 판정된 아동학대 사례 기준으로 피해아동의 성별 분포를 살펴본 결과 남아 3069명(50.7%), 여아 2989명(49.3%)으로 비슷했다. 피해아동 연령은 만 10~12세가 1447건(23.8%)으로 가장 많았으며, 만13~15세 1317건(21.7%), 만 7~9세 1105건(18.3%)이었다. 피해아동은 반항, 충동, 공격성, 거짓말, 도벽 같은 특성을 가장 많이 보였다(5348건·37.4%).

    학대 행위자를 보면, 부모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가 5039건(83.1%)으로 가장 많았고, 친·인척 349건(5.8%), 타인 574건(9.5%)이 뒤를 이었다. 성별은 남성 3442건(56.8%), 여성 2606건(43%)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이 많았다. 학대 행위자의 직업은 무직이 1503건(24.8%)로 가장 많았으며, 단순노무직 829건(13.7%), 전업주부 692건(11.4%) 순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행위자와 피해아동이 동거하는 경우는 4739건(78.2%). 학대 장소가 가정인 경우는 5246건(86.6%)에 달했다.

    아동학대 사망 실태는

    12년간 141건…통계에 안 잡히는 경우 많아


    몸과 영혼이 멍드는 아이들

    방임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살던 집.

    부모의 자녀 학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기 불황에 시달리는 요즘 자녀 살해 사건을 비롯한 아동학대 사건이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최모(37) 씨가 3세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 버렸으며, 지난해 12월 5일 경기 일산경찰서는 아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학대해 숨지게 한 아버지 박모(23) 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어머니 주모(18)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4년 전부터 사실혼 관계였던 이들은 2011년 12월 보호시설에 맡겨둔 아들을 데려온 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습적으로 학대했다.

    뒤이어 12월 20일 인천 남동경찰서는 의붓딸(11)에게 소금을 과다하게 먹여 ‘나트륨 중독’으로 사망케 한 계모 양모(50) 씨에 대해 구속영창을 신청했다. 의붓딸은 8월 12일 자기 방에서 사망했는데, 경찰 조사 결과 새엄마는 아이가 숨지기 전까지 소금이 과다하게 들어간 밥과 국수를 강제로 먹이고 숨지기 전까지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전 문제로 시부모와 갈등을 빚다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푼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사망 관련 지원서비스 체계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은 총 141건에 달한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아동학대 건수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건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출생신고도 되기 전에 사망한 아이들이 많아 통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언론에 보도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분석한 결과, 학대 행위자는 미혼모가 34.8%로 가장 많았으며 친모(22.7%), 동거녀 및 계모(9.9%), 친부(9.2%)로 나타났다. 학대 행위자 연령은 20대(34%)와 30대(32.6%)가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학대 행위자 연령에 따른 아동 살해 이유는 10대의 경우 미혼모나 미혼부모에 의한 신생아 살해(86.7%)가 대부분이었으며, 20대는 미혼모와 미혼부모에 의한 신생아 살해(45.8%), 양육 능력 부족(27.1%), 산후우울증(10.4%) 순으로 나타났다. 30대는 양육 능력 부족(43.5%)이 가장 많았으며 보험금을 타기 위해(10.4%), 생활고(8.7%), 산후우울증(8.7%)이 뒤를 이었다. 한편 40대는 미신이나 잘못된 종교 때문에 아동을 살해한 사건이 45.5%로 가장 많았다.

    이 연구를 진행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영아 사망을 예방하는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아 살해 사건은 대부분 미혼모, 생활고, 산후우울증이 주된 발생 원인이므로 아동학대 사망을 줄이려면 미혼모뿐 아니라 자녀를 출산한 빈곤가정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동학대 행위자가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나온 이후에도 그를 추적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가정에 사망 아동 외에 다른 자녀가 있다면, 그 아이는 형제자매의 사망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보고서는 아동학대 행위자에게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행법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학대해 사망케 하더라도 부양할 다른 아이가 있으면 감형해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 행위자의 학대는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서 “처벌을 제대로 내린 뒤 학대 행위자를 강제교육하고 치료하는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동학대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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