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8

2012.05.21

전력 증강으로 수적 열세 극복 유사시 북한 진입작전 주도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05-21 09: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력 증강으로 수적 열세 극복 유사시 북한 진입작전 주도
    올 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장기 국방전략지침을 발표했다. 핵심은 크게 네 가지. 첫째 유럽·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지역)으로 전략 초점 이동, 둘째 작지만 유연성을 갖춘 첨단 합동군 육성, 셋째‘2개 전쟁 동시수행’에서 ‘1개 전쟁 수행, 타 지역 거부(One-Plus)’로 전환, 넷째 이라크·아프간전 방식의 대규모 고비용 전쟁수행 방법 수정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군의 전력구조 변화로 유사시 미 지상군의 지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미군이 지상군 위주로 감축하기 때문에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질 지상전은 전적으로 한국 육군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육군 전력의 실질적인 증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이견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 지상군의 구실과 전력에 대한 정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만큼은 공감을 얻는다. 지난 10여 년간 개혁 대상으로 꼽히며 방황하던 한국 육군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육군 전력 실질적 증가 필요

    유사 이래 전쟁의 주역은 지상군이었다. 전투는 대부분 지상에서 시작됐고 지상에서 종결됐다. 전선을 밀고 올라가 적의 심장부를 점령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1991년 발발한 걸프전은 전쟁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34개 다국적군에게 43일 만에 무릎을 꿇었다. 해·공군이 40일 동안 때리고 육군은 3일간 진군했다. 그걸로 전쟁은 끝났다.



    이후 걸프전은 미래전쟁의 이상적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지상군 병력 위주의 전투는 구식으로 치부되고, 해·공군의 첨단 화력으로 적의 지휘부를 정밀 타격하는 효과중심작전(Effects Based Operation·EBO)이 각광받았다. 지상군은 선발투수인 해·공군의 뒤를 이은 마무리 투수로 위상이 약화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육군 병력을 축소하고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는 ‘국방개혁 2020’을 수립한 배경에도 이런 기류가 있었다. 양을 줄이고 질을 높인다는 군사강국들의 전략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지상군 축소 전략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의 잇따른 전쟁 실패다. 첨단 화력으로 무장한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에서 전투에 이기고도 전쟁에 실패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지상군의 전통적인 기능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미군은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한 이후 죽을 쑤었다. 아프간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산악지형에선 해·공군의 첨단 무기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거 봐라. 결국 해결사는 육군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전선을 장악하고 점령하는 육군의 구실이 다시 부각된 거다.”

    군사기획에 정통한 한국국방연구원(KIDA) A박사의 얘기다. 군사전문지 ‘디펜스21’ 김종대 발행인도 미군의 실패에 주목한다. 그는 “다시 원시적 전쟁으로 돌아갔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에서 육군 병력을 많이 투입했다면 전쟁 양상이 바뀌었을 것이다. 미군도 효과중심작전을 사실상 폐기했다. 전쟁 목표가 타격만으로 끝난다면 지상군 임무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걸프전이 그랬다. 하지만 점령과 안정화가 전쟁의 목적이라면 육군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미래전쟁의 양상은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과학기술에만 의존하면 자칫 기존 군사력마저 무너질 수 있다.”

    다시 미국의 신(新)국방전략으로 돌아가자. 미국이 새로운 전략을 짠 것은 안보환경 변화와 재정 압박 때문이다. 안보환경 변화란 탈레반 같은 국제 테러집단과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뜻한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아시아의 테러 세력에 대한 새로운 대응전략과 중국의 패권 추구에 대한 강력한 견제가 미국의 중요한 안보목표가 된 것이다.

    신국방전략에 따르면 미국이 세계 경찰 노릇을 하겠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병력을 줄이려는 건 재정 압박에 따른 예산 감축 탓이다. 향후 10년간 육군은 57만 명에서 49만 명으로, 해병대는 20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언뜻 지상군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이에 대해 A박사는 “육군의 비중이 낮아 감축하는 게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미국은 신국방전략을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의 종료를 전제로 수립했다. 해외파병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더는 그 같은 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병제인 미국의 병력환경이 나빠진 것도 한 이유다. 지원자가 계속 줄어 현 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줄인다는 얘기다. 그는 “미군의 신국방전략 개념은 한반도 전장에도 적용될 것”이라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 지상군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KIDA의 B박사도 같은 견해를 내놓으면서 “미 육군의 병력 감소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아·태지역을 중시하는 데는 양면성이 있다. 북한에 경각심을 주고 대북 억제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반면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가 고착되는 것은 안보불안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미·일과 북·중 간 갈등이 심해지면 북한이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과신해 도발을 감행할 위험성이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한반도 전장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지형이 좁고 산이 많은 한반도 전장에서는 걸프전 같은 첨단전을 전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일단 비무장지대(DMZ)에서 지상군끼리 충돌하게 된다. 육군 중심의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전쟁은 북의 침공으로 시작될 테고, 북한군은 지상군 중심으로 긴 종심(縱深)을 형성하면서 빠르게 진격해올 것이다. 이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한국 해·공군이 도발 원점이나 평양을 때리는 것과 북한 지상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는 것은 별개 문제다.

    자주성 차원에서 육군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북의 침공으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국군 혹은 한미연합군이 북한지역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작전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쟁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국군에는 수복작전이겠지만 연합군에는 점령작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미군은 중국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움직이거나 진입 자체를 꺼릴 수 있다.

    결국 한국 지상군이 북한 진입작전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입작전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안정화작전에선 더더욱 그렇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육군 최고위급 지휘관은 기자와 만나 “안보 자주성”이라는 표현을 쓰며 “한국 지상군의 독자적 작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개혁 2020’은 3군의 균형전력 차원에서 해·공군 전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 육군은 병력과 부대를 줄이는 대신 기동력과 타격력을 강화하는 등 전력 질을 높이기로 했다. 이는 국방예산의 지속적 증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세계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국방비의 지속적 증가는커녕 도리어 감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 과정에 육군은 상대적 박탈감을 맛봤다. 해·공군의 전력 강화는 잠수함, 이지스함, 차세대전투기, 조기경보기 등 고가의 첨단 무기를 수입하는 것으로 일찍이 예산에 반영해 추진해왔다. 반면 육군 무기는 대부분 국내 자체 생산으로 마련한다. 도입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고 예산 반영 속도도 늦다. 이명박 정부는 ‘효율성’을 내세워 육군 전력 증강 예산을 삭감하거나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했다.

    육군 강화론의 전제는 한국 지상군의 전력이 북한 지상군보다 약하다는 점이다. 육군 측은 “북한 지상군에 비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현저한 열세”라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 국방비를 쏟아부었는데 왜 아직도 열세란 말인가. 군사전문가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공군에 비해 지상군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전력지수를 평가할 때 병력 수에 가장 큰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일단 열세로 나타나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한국 지상군이 북한 진입작전 주도

    전력 증강으로 수적 열세 극복 유사시 북한 진입작전 주도

    1사단 10연대 도라대대 병사의 늠름한 모습.

    이의성 육군본부 전력계획처장은 “북한은 해·공군은 사실상 포기하고 지상군에 올인하고 있다. 마지막 보루가 지상군인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 육군 병력은 한국 육군의 2배다. 현재 진행 중인 국방개혁을 완성하면 한국 지상군은 50만 명에서 38만 명으로 줄어들어 그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병력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현상유지도 힘든 형편이다. 복무기간 단축도 한 원인이지만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병역가용자원이 계속 줄기 때문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예비군의 실질 전력화를 주장한다. 미국의 주방위군처럼 1년에 몇 개월씩 급여를 받고 복무하는 준(準)상비군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경우 급여를 해당 기업이 주게 하면 예산 부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병력뿐 아니라 무기와 장비 면에서도 밀리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A박사의 설명이다.

    “북한군은 구매력이 높고 인건비가 싸게 먹힌다. 같은 성능의 무기를 산다고 치면 그쪽이 우리보다 훨씬 싼값에 마련할 수 있다. 즉 같은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의 무기를 훨씬 많이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질이 양에 밀린다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우리의 다연장포는 같은 기능을 가진 북의 장사정포보다 성능이 뛰어나지만 수량이 워낙 적어 열세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육군 전력을 증강할 것인가. 육군이 가장 먼저 꼽는 것은 보병전력 강화다.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A박사는 “보병 방어력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장병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쪽으로 전력 증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병력과 부대 감축으로 사단의 책임구역이 넓어지는 만큼 멀리 보고 멀리 때릴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종대 발행인은 “병사들의 야전 전투장비가 20년째 제자리다. 야전 전투력을 희생하면서 첨단 무기를 대량 구매하는 건 문제”라며 “일선 전투원의 생명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B박사는 “접적(接敵) 부대, 즉 GOP 부대의 화력을 크게 증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기 참모총장 취임 이후 육군은 ‘창끝부대 전투력 발휘’를 기치로 내걸었다. 창끝부대란 전투 일선에 있는 보병대대를 일컫는다. 먼저 감시 및 정찰 능력 강화. 적을 정확히 공격하려면 먼저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야간투시경과 주야간조준경, 다기능관측경, 소형 UAV(무인정찰기) 등 정밀 감시 장비가 필요하다는 게 육군 측 주장이다.

    다음으로 지휘통제 능력. 발견한 표적을 신속히 타격하려면 실시간 전장상황을 공유하고 기동 시에도 지휘통제가 가능한 대대급 이하 전투지휘체계(B2CS)를 구축해야 한다. B2CS는 대대장에서 일반 병사까지 음성과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의사소통체계다.

    셋째는 타격 능력. 원거리 정밀 타격이 가능한 저격용 소총과 4.2인치 및 81mm 박격포의 성능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전차, 장갑차를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보병용 중거리 유도무기와 단거리 로켓발사기도 요구된다.

    넷째는 기동 능력. 차륜형 전투차량과 소대 병력이 탑승할 수 있는 중형 전술차량, 산악지역에서 탄약과 물자를 원활하게 보급하기 위한 산악용 오토바이크 등이 필요하다. B박사는 기동성 강화를 강조하면서 특히 특수부대의 기동력이 취약한 점을 지적했다.

    “특수부대는 잘 훈련된 상태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특수헬기와 공기부양정 등 다양한 기동수단을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는 미국 자산에 너무 의존한다. 특수전용 헬기 도입이 시급하다.”

    비판적 시선도 있다. 그간 실질적인 전투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무기보다 전시용 혹은 과시용 무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병과 이기주의에 젖어 기능이 엇비슷하거나 중복되는 무기를 무분별하게 도입해온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행정 병력이 지나치게 많고 각종 사령부가 난립한 것도 효율적인 전력 증강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해·공군과 3군 합동성 구현 전략

    전력 증강으로 수적 열세 극복 유사시 북한 진입작전 주도

    GOP 부대 내무반. 2층 침대를 사용한다.

    군사전문가들은 “육군의 전력 증강은 3군 합동성 구현에 기여하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UAV와 공격용 헬기의 경우 “공군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선 “육군용과 공군용 UAV 작전고도가 다르고, 공군력 운용은 기상조건에 따라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육군의 작전 완결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B박사는 “전력 증강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전쟁에 이기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며 “해·공군 전력과 조화를 이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대 발행인은 “육군끼리 재래식 무기만 비교할 게 아니라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전력에 대응하는 무기체계와 합동작전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합참의 조정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철학이다. B박사의 제언이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이 당면한 과제이긴 하지만, 미래전쟁에 대비해 주변국과의 군사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육·해·공군 지휘관들이 자군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미래전쟁에 대해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장관과 대통령까지 참석해 국가의 생존전략을 세워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