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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기자의 感情이입]
“아슬아슬 송곳 질문은 생방송 시사프로의 책임과 의무”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박종진 앵커 “기계적 중립으론 시청자 만족 못 해”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정보 과잉 시대다. 뉴스를 갈무리해 전달하는 ‘코디네이터’ 구실이 중요해졌다. 뉴스앵커와 아나운서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다. 방송미디어는 활자 정보를 뛰어넘어 인격체를 통해 재해석되기 때문에 수용자에겐 더 없이 편리한 매체다. 그러다 보니 앵커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

수많은 고수가 용호상박하는 한국 방송뉴스 시장에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를 진행하는 박종진(45) 앵커다. 낮 시간(오후 5시)을 커버하는 시사프로그램인데도 방송 두 달 만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대표 시사프로그램으로 급부상했다.

고승덕 의원이 폭로한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직접 파헤친 초대형 특종을 비롯해, 가장 뜨거운 이슈의 중심 인물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내 날 선 질문을 쏘아대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시청자 뇌리엔 자연스레 복잡한 시사의 맥락이 간결하게 틀을 잡는다. 그에게 궁금한 20문항에 대한 20답을 ‘쾌도난마’식으로 들어봤다.

▼ ‘쾌도난마(快刀亂麻)’란 뉴스 브랜드가 도발적인데.

“‘얽힌 사물이나 꼬인 문제를 솜씨 있게 처리한다’는 의미가 썩 맘에 든다. 특히 ‘쾌’자가 주는 속 시원함이 내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 브랜드가 시청률에 상당한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본다.”

▼ 가장 이상적인 롤 모델이자 라이벌이라면.

“CNN의 래리 킹이다.”

래리 킹이 롤모델이자 라이벌

▼ 그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어릴 적부터 항일투쟁사에 관심이 많았다.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 내 신조가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다. ‘독립투사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실존적 고민을 자주한다.”

▼ 왜 방송기자가 됐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득 진실을 파헤치고 전달하는 기자도 잘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93년에 케이블TV 시대가 열렸고 경제방송인 MBN이 탄생했다. 그래서 경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겠다는 꿈으로 시작했다.”

▼ 자랑스러운 특종을 꼽는다면.

“1990년대 모 재벌 보험회사가 문서를 위조했다는 내용을 특종 보도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순위가 바뀌었다. ‘쾌도난마’를 통해 고승덕 의원의 ‘돈 봉투 발언’을 유도한 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파급효과가 컸던 특종일 것이다.”

▼ 아쉽게 생각하는 취재가 있다면.

“오래전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금융기관의 비리를 취재하다 중도에 포기한 일이다. 다양한 루트로 압력이 들어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쓰라린 대목이다.”

▼ 영문과 출신인데.

“애당초 법대 지망생이었다. 서울대에 대한 열망이 컸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어에 대한 아쉬움과 오기 등으로 오히려 영문과를 택했다(웃음).”

▼ 자신의 10대와 20대를 함축하는 한자성어가 있다면.

“각인일방. 우습지만 내가 만든 말이다. 1977년 홍수환 선수의 복싱경기를 보고 크게 감명받았다. 한참 경기에서 밀리던 그가 마우스피스를 뱉으며 ‘나도 한 방이 있어’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깨우침을 얻었다. 나 역시도 ‘한 방’을 키우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라도 한 방이 있음을 알고 절대 얕잡아 보지 않았다.”

▼ 30대 이후에는.

“생즉사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이다. 인생은 실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방송에서도 전투적으로 임한다. 그러고 보면 내 방송철학일 수도 있겠다.”

▼ 대학 때 데모는 해봤나.

“물론이다. 고려대에서 가장 전투적인 동아리인 ‘종교분과위원회’ 소속이었다. 87학번인데, 그때는 데모 안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한 시절이었다. 직접 화염병을 만들며 치열하게 투쟁했다. 운동권 스타와 달리 나는 ‘의병(義兵)’이란 심정으로 임했다. 최루탄을 맞아서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언제나 살아 있는 방송 하고 싶어

1월 2일 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왼쪽)과 함께.

▼ 지금의 정치관을 요약한다면.

“민족주의다. 김구 선생이 롤모델이다. 구시대적인 이념 대립에 휩싸인 작금의 한국 정치가 안타까울 때가 있다.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는데…. 대한민국 공통의 이익을 전제로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민족주의가 좋다.”

▼ ‘좋은 방송 출연자’란.

“용기 있고 자기 소신이 분명한 사람이다. 의외로 자기 보신(保身) 논리에 빠진 사람이 많다. 비겁한 거다. 실제 대한민국에는 정치와 경제 중심에 ‘철학 없는 위인’이 태반이다. 자기 철학이 확실한 사람은 언제나 ‘옳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방송가치가 크다. 이런 관점에서 강용석 의원은 매력적인 콘텐츠다.”

▼ 방송 진행 철학이 있다면.

“철저하게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앵커가 다음 질문을 준비하느라 건성으로 듣는 순간, 시청자는 바로 허점을 알아챈다.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고 촘촘하게 엇갈린 질문을 던져야 시청자가 방송의 진정성을 즐길 수 있다. 그게 바로 좋은 방송이다.”

▼ 소신이 너무 분명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진행자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시사프로에선 기계적 중립이 의미가 없다. 앵커가 철학과 방향성이 있어야 사안을 정리하고, 시청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물론 위험하고, 비난의 소지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앵커와 미디어의 책임이자 의무다.”

▼ 앵커와 경제부장 겸직인데.

“그래서 요즘 진통제를 맞아가며 방송한다. 앵커를 10년 이상 해왔지만 언제나 현직기자와 앵커를 겸직하자는 게 내 신념이다. 화면으로만 뉴스를 접하고 앵커 진행을 하면 감각이 현저히 떨어진다. 앵커로 활약하면서도 경제·정당팀장, 정치부장까지 맡는 등 현장을 포기한 적이 없다.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방송을 하고 싶다.”

▼ 앵커를 꿈꾸는 후배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내공 없는 방송진행은 금방 티가 난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회현상에 귀를 기울이고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슈가 된다면 무엇이든. 예를 들어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을 보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야 한다.”

▼ 누리꾼에게 ‘신상’이 털리기도 하나.

“물론이다. 처절하게 비판받는다. 방송은 공공성이 강한 매체다.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을 되삼킬 수 없다. 때론 내 표현과 진정성이 어긋날 때도 있다. 빈틈을 보이고 괴로울 때도 분명 있다(웃음). 스트레스는 바둑과 수학문제 풀이로 해결한다. 하지만 이게 즐겁다. 천직으로 생각한다.”

▼ 현실적인 경쟁자가 있다면.

“아무래도 TV조선의 ‘판’이 신경 쓰인다. 그 프로그램은 녹화방송이기 때문에 매끄러워 보인다. 반면 우리는 철저하게 생방송을 고집한다. 가끔 실수할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가장 솔직하고 용기 있게 사안에 대처한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덕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채널A란.

“된장국 같은 친근한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질리지 않게 오랫동안 시청자 곁에 있을 것이다.”

▼ CNN의 래리 킹을 닮고 싶다는 의미는.

“방송앵커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중해졌다. 기회와 능력이 된다면 래리 킹처럼 오랫동안 마이크를 잡고 현장에서 뛰고 싶다. 국민과 사회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

정호재 기자의 感情이입
“아슬아슬 송곳 질문은 생방송 시사프로의 책임과 의무” [ 2012. 02.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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