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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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3 ‘강아지똥’을 기다리며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1-01-17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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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강아지똥’(길벗어린이)이 우리 창작그림책으로는 최초로 지난해 하반기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외면받는 강아지똥이 봄비를 맞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이 된다는 내용으로,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란 없다는 가르침을 통해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준다. 해방 이후 최고 작가인 권정생의 글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알기 쉽고 정감 있게 표현한 작가 정승각의 붓놀림이 환상적으로 결합해 얻어낸 성과라 할 것이다.

    1996년 4월 처음 출간된 이 그림책은 2000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에 5만 부 정도 팔리다가 온라인서점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2002년 처음으로 10만 부를 넘어섰다. ‘강아지똥’ 애니메이션이 텔레비전에 방영된 2003년 12만 부가 팔리는 정점을 찍고는 기세가 약간 꺾였지만 2010년에도 6만5000부나 팔렸다.

    아동도서 분야에서 100만 질, 수천만 부 팔린 만화학습서 시리즈가 수두룩하고 100만 부를 넘긴 외국그림책도 없지 않다. 하지만 1990년 MBC 드라마로도 방영됐던 권정생의 대표적 장편동화인 ‘몽실 언니’(1984년 출간, 창비)가 100만 부를 넘긴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강아지똥’이 이뤄낸 성과는 정말로 대단하다.

    국내 단행본 창작그림책의 본격적인 역사는 ‘강아지똥’이 출간되던 무렵인 1990년대 중반이라고 보아야 한다.

    때마침 1980년대에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즐기며 책의 가치를 깨달았던 ‘386세대’가 책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등장해 자식에게 그림책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그림책 원화를 ‘예술’로 인정하고 전시회가 자주 열리면서 젊은 세대가 일러스트레이터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우리 그림책이 세계적인 상을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2010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받아 온 프랑스 그림책 출판사 뤼뒤몽드의 대표 알랭 세르는 “한국 그림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프랑스와 한국이 세계적으로 그림책이 발전한 두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한국 그림책의 최대 수입국(40%)이다.



    이제 그림책이 도약할 준비는 끝났다. 하지만 과도한 할인경쟁 탓에 구간 스테디셀러의 아성으로 굳어져 신간 론칭이 매우 어렵다. 게다가 번역 그림책의 시장 점유가 여전히 90%를 넘어서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그림책을 보고 자란 교사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려 하면 ‘초등학교 2학년에게 웬 그림책’ 하고 책을 빼앗는 교장·교감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정말 문제다.

    임팩트가 강한 그림책은 영상시대에 종이책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르다. 주부가 읽으면 우울증이 치료되고 노인들이 읽으면 치매가 예방된다고도 한다. 이제 그림책은 모든 세대가 함께 읽는 책이라는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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