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2010.03.02

힘겨루기 여전한 3곳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LH 공사 등 통폐합 기관 총력 유치戰 … 정부는 갈등 조정 실패, 의원은 법안 처리 늦춰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2-23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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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겨루기 여전한 3곳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10월7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 제막식을 열고 정식 출범했다.

    “당초 우리 지역에 오기로 한 기관이 없어졌으니, 다른 기관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닌가.”(통폐합된 공공기관 유치에 실패한 혁신도시 관계자)

    “통폐합은 규모가 큰 기관이 작은 기관을 흡수하는 것이다. 당초 우리 지역에 오기로 했던 기관의 규모가 큰 만큼 통폐합된 기관이 우리 지역에 오는 게 당연하다.”(통폐합된 공공기관 유치에 성공한 혁신도시 관계자)

    지난 한 해 전국 10여 개 혁신도시는 통폐합된 공공기관 유치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서로 덜 빼앗기고 더 빼앗아오기 위해서다.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 언론까지 가세해 유치전을 벌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지방 이전이 확정된 공공기관은 157개.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36개를 통폐합하고 일부 기관을 신설해 지방이전 공공기관을 147개로 조정했다. 이 가운데 세종시로 옮기기로 한 16개와 혁신도시 이외의 다른 지역에 개별적으로 이전하는 16개 등 32개를 뺀 115개가 실제 혁신도시로 분산 배치되는 공공기관이다.

    이들 공공기관 대부분은 이미 이전할 지방이 확정된 상태. 문제는 이전 지역이 다른 기관끼리 통폐합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와 한국정보화진흥원, 도로교통공단,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저작권위원회 6개다.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신설된 기관을 유치하려는 혁신도시 간의 미묘한 갈등까지 겹치면서 지역 간 갈등을 불러왔다.



    정부는 최근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저작권위원회 3개 기관의 이전 지역을 결정했으나, 나머지 3개 기관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해당 혁신도시 간 갈등도 여전하다.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와 지역 간 갈등으로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는 혁신도시 건설계획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 | 전북 vs 경남

    전북 혁신도시와 경남 혁신도시는 LH공사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LH공사로 통폐합되기 이전의 한국토지공사(이하 토공)는 전북 혁신도시,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는 경남 혁신도시로 이전이 확정된 상태였다. 현재 두 지역의 의견은 극과 극이다.

    전북은 분산 배치를 주장한다. 토공과 주공의 규모나 인원비율로 보면 4대 6인데, 본사를 전북에 둔다면 전북 2(24.2%)대 경남 8(75.8%) 비율로 분산 배치하는 게 적정하다는 의견이다. 전북도 이효기 혁신도시추진단 부단장의 말이다.

    “당초 정부안이 분산 배치였다. 지난해 11월4일 1차 지방이전협의회 회의에 앞서 국토해양부는 ‘양 도는 분산 배치율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 우리의 안을 마련한 것이다. 경남도는 처음에는 6(경남)대 4(전북) 비율로 분산하고 본사도 자기들 쪽으로 하자고 주장했다가 협의회에서 갑자기 자기들 쪽으로 일괄이전을 해야 한다고 선회했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경남은 분산 배치를 할 경우 통합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괄이전을 주장한다. 경남도 최규철 혁신도시주택과 주무관의 반박이다.

    “통합 목적이 두 공사의 중복업무를 없애고 효율화하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통합해놓고 그것을 다시 쪼개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은 두 공사 모두 분당에 있는데, 그걸 전북 전주와 경남 진주로 나누면 왕복 이동거리만 6시간 거리다. 경비도 문제지만 조직을 운영하는 데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LH공사는 공공기관 중 가장 큰 기관이다. 그런 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큰 기관이다.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분할은 안 된다. 전북도의 주장에는 본사와 핵심 부서를 그쪽에 유치해서 나중에 조직개편을 통해 본사를 확장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양측의 갈등은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됐다. 전북도와 경남도 지역 국회의원들은 앞다퉈 국무총리나 주무부처 장관인 국토해양부 장관을 찾아가고, 국회 해당 상임위인 국토해양위 의원들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자신들 지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전 안이 결정되도록 압박을 넣고 있다. 이런 일은 국회 본회의장에서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지난 2월4일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운찬 총리에게 LH공사 본사이전 문제에 대해 물었다. 정 총리는 이에 “현재 상황으로 봐서 LH공사 본사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나눠서 이전하는 것보다는 일괄이전하는 것이 옳다. (그 문제는) 국토해양부에서 연구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정 총리의 이날 발언으로 전북도는 발칵 뒤집어졌다. 경남도와 전북도에 LH공사를 분산 배치하기로 했던 그동안의 정부 방침을 뒤집는 발언으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2월10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 총리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졌다. 정 총리의 이날 답변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LH공사(본사)는 일괄이전이 맞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정부부처 분할이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말하는 과정에서 나온 원칙론이다. LH공사 본사 입지에 대해서는 국토해양부가 중심이 돼 전북과 경남 상호 간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므로 양측 합의에 기초해 현실에 맞춰 조속히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에 불과하다.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안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현재로서 양측의 합의는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1차 지방이전협의회 회의에 이어 12월9일 2차 회의도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 채 끝났다. 올해 초 열릴 예정이었던 3차 회의는 1월15일에 이어 2월3일까지 두 차례나 연기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측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전북도 측은 “우리는 정부에서 하자는 대로 하는데,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좀더 유리한 분산 배치안을 요구하고, 경남도 측은 LH공사 경남도에 일괄이전 방침을 고수하면서 “정부가 적극 나서서 경남도와 전북도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 측에 책임을 떠넘긴다. 이래저래 LH공사 이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 제주 vs 대구

    “제주도로 가려고 했던 정보문화진흥원은 기관이 폐지되잖아요. 그러니 대구로 오는 게 거의 확실하죠.”(대구시 박종명 혁신도시지원단 주무관)

    “원래 오려던 기관이 폐지됐으면 당연히 다른 걸 줘야죠. 원래 계획된 규모만큼 기능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제주도 이양문 혁신도시지원계 계장)

    대구 혁신도시와 제주 혁신도시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대구시로 옮기려던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제주도로 이전하려던 한국정보사회진흥원이 통폐합된 기관이다.

    사실 대구시로서는 크게 아쉬울 게 없다. 통폐합됐지만 제주도 쪽 기관이 없어지면서 지역이전 경합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다르다. 혁신도시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기관 한 개가 아쉬운 마당에 주요 기관인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빠진 것. 이에 “원래 제주로 오려던 기능을 주거나 다른 기관 하나를 달라”는 게 제주도 측의 요구다. 이양문 계장의 말이다.

    “혁신도시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사업인데, 하나가 없어지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기관을 줘야죠. 현재 대구시에 당초 계획된 규모만큼의 기능을 남겨달라고 요청했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대구의 교육과학기술원과 맞바꾸자는 안을 낸 상태입니다. 제주 혁신도시 콘셉트가 ‘국제교류·연수도시’라 교육과학기술원이 오기에 적합하거든요.”

    이에 대해 대구시의 입장은 어떨까. 박종명 주무관은 “제3의 기관을 달라는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으나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기능을 분담하는 것은 가능한 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소속된 행정안전부와 이전 지역을 결정하는 국토해양부가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한 관계자는 “대구시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을 가져가는 대신 다른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 강원 vs 울산

    정부는 최근 지방이전 계획을 승인한 11개의 공공기관 명단에 도로교통공단을 포함시켰다. 이전지역은 강원 혁신도시. 하지만 이는 절차상 하자가 있다. 도로교통공단과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은 통폐합 대상기관이다. 당초 도로교통공단은 강원 혁신도시로,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은 울산 혁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규모로 보나, 인력으로 보나 도로교통공단이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을 흡수하는 게 상식적이다.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통폐합 방침에 따라 두 기관 통폐합을 위한 관련 법안이 2008년 11월 국회에 제출됐다. 문제는 그 법안이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것. 통폐합 대상 공공기관 중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유일한 기관이 바로 도로교통공단이다.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이전추진단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로교통공단의 지방이전 계획을 승인해준 데에는 세종시 문제도 있고 해서 혁신도시 이전기관 마무리 작업을 서두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과 운전면허시험관리단 통폐합 법안이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국회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 중 울산을 지역구로 둔 한 의원의 반대 때문이다. 울산시에 이전하기로 했던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을 도로교통공단으로 통폐합하는 대신 뭔가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한 것.

    결국 정부는 과거 운전면허시험관리단에서 했던 업무를 그대로 맡는 ‘운전면허사업본부’(가칭)를 만들어 울산에 남겨두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예산에 이미 21억원의 부지매입비도 반영됐다. 이런 조건을 배경으로 관련 법안은 조만간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울산에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의 일부 기능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강원도 입장에서는 손해는 없는 것 아니냐. 운전면허시험관리단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도로교통공단이 결정할 문제”라는 강원도 관계자의 말에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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