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4 504 호 (p 42 ~ 43)


어려울 때마다 부활한 ‘단군’
홍익인간 사상은 포용과 보편성 … 한민족 동질성 회복과 구심점 구실 수행
이근철/ 국학원 운영이사
 

개천절을 맞아 서울 사직공원의 단군성전에서 열린 행사. 이제는 단군의 부활보다도 단군정신의 부활이 중요하다.

4338주년 개천절이 다가왔다. 우리에게 국조 단군은 어떤 존재인가.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치우 천황을 되살린 것 외엔 우리가 단군을 돌아본 적이 없는 듯하다.

2001년 9월에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단군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4.3%가 “단군이 민족 동질성 회복 및 구심점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단군에 대한 존재 인식에 대해서는 “신화적 인물”이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54.5%로, “역사 속의 실존인물”이라고 대답한 응답자 40.4%보다 많았다. 그렇다면 신화적 인물일지라도 민족의 구심점 형성을 위해 단군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단군을 실재하였던 인물로서 고조선의 건국 시조로 알고 있었다. 역대 통치자들은 자신을 단군의 계승자로 자처했고, 일반 백성들은 단군을 민족의 원시조로 간주했다. ‘제왕운기’에 동북부여·남북옥저·예맥 등이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씌어 있고, ‘삼국유사’는 “고구려 제1대 동명왕 주몽은 단군의 아들”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신라 화가 솔거가 단군 초상을 1000매 그린 것이라든가, 고려 시대 삼남 지방에서 집집마다 단군의 초상을 모시고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후기 신라와 고려 시기에도 단군을 민족의 원시조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신화·허구로 왜곡

그런 단군이 신화나 허구로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무단통치로 악명 높았던 초대 총독 데라우치의 명령으로 1910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전국의 경찰서를 동원해 단군 관계 역사서와 조선 지리서 등 수십만 부의 책에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압수하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중추원에 ‘조선사편찬과’를 설치하고 1925년 이를 ‘조선사편수회’로 개편했는데, 조선사편수회는 조선 총독과 정무 총감들의 지휘 아래 조직적인 조선사 왜곡을 감행하였다. 이때 “조선사의 편찬 기준은 편년체”라고 하여, 이 기준에 맞지 않는 단군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의 역사를 신라 박혁거세의 건국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조선사편수회 촉탁위원으로 조선사 편찬에 앞장섰던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1512년에 중간한 ‘삼국유사’ 정덕본 정본에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는 기사를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昔有桓因)”로 바꿔, 고조선 건국 사실을 깎아내리고 환인과 환웅을 신화적 내용으로 조작 유포하여 일반화되게 했다.

그는 건국신화까지 포함한 일본의 국가 기원 연대(기원전 660년)보다 약 1700년이 앞서는 단군 조선의 건국을 인정하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설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 같은 역사 왜곡을 감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군 조선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기록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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