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길의 한민족 리포트 ①]

몽골 상류층 사로잡은 ‘한국의 맛’
우형민씨의 ‘서울레스토랑’ 몽골 최고 식당 명성 … 순방 국가 원수들의 필수 코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시 전경.

1990년 한국-몽골 간 수교가 이루어진 후 몽골 땅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사람들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몽골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매년 50여명의 한국어 통역사를 배출해냈다. 지금은 울란바타르 대학, MIU, 후레정보통신 대학 등에 한국어과가 개설돼 수백명의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과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2002년 현재 몽골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800명.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 터전을 마련한 한국인이 약 25만명(조선족은 200만명)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숫자지만 한국과 몽골의 거리는 눈에 띄게 가까워지고 있다.

몽골말로 한국을 ‘솔롱거스’, 한국인을 ‘솔롱거스훙’이라 한다. 96년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솔롱거스잠’이라는 서울거리가 탄생했다. 서울과 자매결연을 맺은 울란바타르의 한 거리에 작은 정자와 간이화장실, 택시정류장, 기념비 등이 만들어졌고, 경기 남양주시가 건립한 ‘남양주문화원’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세워졌다.

사실 한국보다 먼저 몽골에 투자를 시작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몽골의 도로, 학교, 병원이 대부분 일본 자본에 의해 무료로 건설되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현재 몽골 국영방송 광고의 약 20%가 한국 제품들이다. 몽골 주재 일본 대사관 직원이 한 한국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몽골에 투자한 액수로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은데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더 좋아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글쎄요.” “일본인 중에는 한국인 같은 개척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몽골에 한국을 심어온 개척자들, 그들은 누구인가.

최고급·최고가 전략 주효

몽골 울란바타르 시 공원 안에 위치한 서울레스토랑의 전경. 철판볶음 쇼를 선보이는 서울레스토랑의 주방장. 서울레스토랑의 주인 우형민 사장(49)(왼쪽 부터).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출신인 우형민씨(49)가 몽골 울란바타르에 ‘서울레스토랑’을 개업한 것은 1996년 5월11일이었다. 서울에서 11년간 스위스계 회사를 다니며 식품가공기계 판매일을 하다 출판사를 차려 독립했으나 2년 만에 손을 털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그때부터 한국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해 몽골까지 왔다.

식품가공기계를 판매하는 동안 그는 식당 간판만 보아도 음식 맛을 알 만큼 맛의 달인이 됐다. 그가 몽골에서 택한 업종은 식당. 아버지 통장까지 탈탈 털어 40만 달러를 가지고 울란바타르 공원 내 800여평짜리 2층 건물을 빌렸다. 서울레스토랑은 우사장이 100% 투자하고, 울란바타르 시청이 땅과 건물을 빌려주는 조건(51대 49)으로 개업했다.

하지만 몽골 시장 개척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까지 기업이 아닌 개인이 몽골에서 사업에 성공한 경우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정부는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 보면 사정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도 식당 인테리어 공사에서부터 낭패를 겪었다.

0.3%의 몽골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 식당인 만큼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고 직접 못을 박으며 50여명의 몽골 노동자들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몽골 인부들은 일은 하지 않고 처음 보는 자재와 기술을 신기해하며 구경하기 일쑤였다. 그가 벽에 콘크리트 못을 박자 인부들은 빙 둘러서서 처음 보는 못 구경에 정신이 없었고, 한국에서 가져온 자재들을 제멋대로 가져가 버렸다. 50통의 페인트가 하룻밤 사이 7통으로 줄어 있는 일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이 지연되고 자재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초기 투자비용이 150만 달러까지 올라가자, 그는 식당 문은 열어보지도 못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빠져 울기까지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일이 있던 바로 다음날부터 몽골 노동자들이 말도 잘 듣고 물건이 없어지는 일도 줄어들어 무사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우여곡절 끝에 서울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개업 당일 중앙홀은 물론 9개의 방에 손님들이 꽉 들어차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물론 개업 2주 전 몽골 상류인사 300여명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몽골 국영TV를 섭외해 한국요리법을 집중 홍보한 덕분이었다. 또 서울레스토랑은 ‘최고급, 최고가’ 전략으로 몽골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몽골에서 가장 비싼 식당은 일본식 뷔페로 1인당 8달러였는데, 그는 과감하게 1인당 12달러로 가격을 책정했다. 울란바타르에 있는 15개의 한국식당과 1개의 일본식당, 수백개의 몽골식당 중 가장 음식값이 비싼 식당이 된 것이다. 몽골의 최상류층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잡으면서 하루 평균 3000달러의 매출을 거뜬히 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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