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2015.07.06

50년 유책주의 판결의 역사

특수한 경우 잘못해도 이혼 허용…선진국 1970년대 이후 파탄주의 채택 추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07-06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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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유책주의 판결의 역사
    대법원이 이혼소송에서 ‘유책주의’ 원칙을 확립한 1965년 판결 당시 청구인인 남편은 피청구인인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제시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아내가 △임신 불능이고 △자신의 바바리코트를 잡아당겨 찢어지게 했고 △시부모에게 불효했고 △성품이 포악해 이웃 사람과 자주 싸웠고 △금전을 낭비했고 △‘너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협박했고 △음식에 무엇을 넣었다고 위협했다는 등의 주장이 담겨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배척하면서 ‘청구인이 가정의 평화와 남녀의 본질적 평등을 무시하고 그 책임에 속하는 축첩행위를 한 점’을 들어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에도 우리 법원은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데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남편이 가출한 후 홀로 생활하던 아내가 다른 남성과 동거생활을 했다 해도, 원래 남편과 이혼을 원치 않으면 유책배우자인 남편이 먼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 판결도 있다. 1974년 해당 사건에서 대법원은 ‘청구인(남편)은 피청구인(아내)을 10여 년간 홀로 남겨놓고 타지를 전전하고 마지막에는 피청구인으로 하여금 다년간 식모살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버려두어 (중략) 청구인과 피청구인 간의 파탄은 그 책임이 오로지 청구인에게 있는 것이라 아니 볼 수 없는 바인즉 이러한 유책자인 청구인의 이혼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상대방이 혼인 계속의 의사가 없으면서 오기(傲氣)나 보복적 감정만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받아들였다. 이 원칙을 처음 밝힌 1987년 판결은, 아내가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해 복역하게 하고 이로 인해 남편의 의사면허까지 박탈된 상태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남편이 집으로 찾아갔는데도 냉대해 별거하게 된 사건이다. 이후 남편이 이혼을 청구하자 1심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피청구인(아내)이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하다”며 “비록 혼인의 파탄에 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는 배우자(남편)의 이혼 청구라 할지라도 이를 인용함이 상당하다”고 밝혀 이혼을 허용했다. 이후 대법원이 이에 불복한 아내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판결을 확정했다.

    민유숙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논문에서 ‘대법원이 사안별로 이혼 청구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상대 배우자가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근거로 삼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선 여전히 유책주의 원칙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파탄의 객관적 기준



    한편 선진국의 경우 파탄주의를 채택하는 추세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미국이 모두 파탄주의 이혼법을 갖고 있다. 파탄의 객관적인 기준은 별거기간으로, 미국의 경우 주에 따라 60일부터 5년까지 별거기간이 이어지면 혼인이 파탄에 이른 것으로 본다. 76년 파탄주의를 채택한 독일은 원칙적으로 부부가 3년 이상 별거하면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별거기간이 이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1년 이상 별거했고 양 당사자가 이혼에 합의하면 이를 허용한다. 69년 파탄주의를 채택한 영국도 혼인 파탄의 기준을 별거기간 5년으로 하되, 이혼 합의가 있으면 이를 2년으로 단축해준다. 우리나라가 유책주의를 채택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은 87년 최고재판소 판례를 변경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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