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트랜스지방 우린 왜 금지 못 하나

1회 제공량 중 0.2g 미만이면 ‘0’으로 표시…안 해도 과태료 100만 원이면 끝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6-29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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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지방 우린 왜 금지 못 하나
    3년 안에 미국 식품업계에서 트랜스지방이 퇴출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6월 17일 트랜스지방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GRAS)’ 식품목록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2006년 가공식품 포장지에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기를 의무화한 지 9년 만에 내린 결단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식품업체들은 2018년 6월부터 부분경화유 사용을 중단하거나, 자사의 부분경화유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FDA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트랜스지방은 팜유 같은 식물성기름에 수소 등 첨가물을 넣어 고체 상태로 만든 경화유다. 값이 싸고 저장성이 높으며 음식을 고소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패스트푸드나 과자를 적당한 고체 상태로 만드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가공식품에 많이 함유돼 있다. 특히 마가린, 쇼트닝, 빵, 도넛, 케이크, 팝콘, 햄버거, 감자튀김, 닭튀김, 초콜릿가공품, 중국식 볶음밥, 탕수육 등에 들어 있다.

    마가린 사용하고도 트랜스지방 0g?

    문제는 트랜스지방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이다.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잘 배출되지 않는다. 트랜스지방은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LDL 콜레스테롤의 혈청 내 수치를 증가시키는 반면, 건강에 좋은 HDL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감소시킨다. 따라서 트랜스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심장질환, 관상동맥질환을 유발하거나 뇌졸중, 당뇨 등이 발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열량 섭취량 2000kcal를 기준으로 트랜스지방이 2.2g을 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미국이 식품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트랜스지방을 아예 퇴출하겠다고 선언한 이유다.

    국내 트랜스지방 사용 실태는 어떨까. 2006년 미국에서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제가 도입되자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2007년부터 가공식품과 유제품에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를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식품 1회 제공량(과자는 30g)에 트랜스지방이 0.2~0.5g이면 ‘0.5g 미만’으로, 0.2g 미만이면 ‘0’으로 표시할 수 있다. 미국 FDA가 식품 100g당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0.5g 미만인 경우 함유량을 ‘0g’으로 표시하도록 허용하는 것에 비해 국내 기준이 더 엄격하다.



    실제로 국내 가공식품의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 의무화 이후 과자류의 트랜스지방 함유량은 꽤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2012년 12월 트랜스지방 함유량 실태를 조사하고 “국내 147개 과자류 1회 제공 기준량에 트랜스지방 평균 함유량은 2005년 0.7g에 비해 93% 낮아져 0.05g이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랜스지방은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걸까. 서울 청계천 부근 한 대형마트 매대에 진열된 과자들의 영양성분표를 살펴봤다. 팝콘, 초코칩류 등 일부 과자는 원재료명에 쇼트닝과 마가린이 포함돼 있음에도 ‘1회 제공량당 트랜스지방 0g’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정확한 수치 대신 ‘0.5g 미만’이라고 쓰인 과자도 있었다. 수입과자는 트랜스지방 0.5g이라고 밝힌 것이 많았다.

    유제품 코너로 가봤다. 한 휘핑크림 제품은 100㎖당 트랜스지방이 1g 포함돼 있었다. 2개의 버터 제품은 100g당 트랜스지방이 각각 2g, 3g이었다. 대체로 빵이나 과자보다 유제품에 트랜스지방이 더 많았다.

    트랜스지방 함유량에 대한 현행 표시제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트랜스지방 0g’이란 표시를 보면 대개 트랜스지방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0.2g 미만이면 0g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0g으로 표시됐다면 1회 제공량에 트랜스지방이 0.19g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유지류·과자류 등 특정 가공식품은 트랜스지방을 어느 정도 함유하고 있기에 완전한 0g은 존재하지 않는다. 식약처의 ‘당, 나트륨, 트랜스지방 섭취 저감화 영양교육 사이트’(www.foodnara.go.kr/hesalkids)에 따르면 쇼트닝과 마가린은 100g당 최대 14.6g, 전자레인지용 팝콘은 11.1g, 도넛은 6.4g, 튀김용 냉동감자는 5.9g, 케이크류는 4.2g, 비스킷류는 2.8g의 트랜스지방을 함유하고 있다.

    이종임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는 “요즘 시중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과자가 트랜스지방을 ‘0’으로 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無)트랜스지방이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팝콘에는 트랜스지방이 꼭 들어간다. 트랜스지방 ‘0’을 숫자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빵집서 파는 수제 과자, 성분 표시 안 해도 무방

    트랜스지방 우린 왜 금지 못 하나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제의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카페나 빵집에서 파는 수제 케이크와 과자 등이다. 이 경우 제품을 싼 포장지에 트랜스지방 등 영양성분을 일일이 표시하지 않아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식약처가 고시한 ‘식품 등의 표시기준’ 제3조에 따르면, 영양성분 표시 대상 식품은 ‘식품제조·가공업 및 즉석판매제조·가공업 신고를 해서 제조·가공하는 식품’이라고 명시돼 있다. 카페나 빵집은 ‘식품접객업’으로 신고하고 영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시중에서 파는 과자도 한 개씩 포장해 큰 상자에 담아 판매할 경우, 과자 개별 포장지에는 영양성분을 일일이 쓸 필요가 없고 전체를 포장한 큰 상자 겉면에만 표기하면 된다.

    식품제조사에서 트랜스지방 함유량을 표시하지 않아도 처벌 수위는 높지 않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별표 2 ‘과태료의 부과기준’에 따르면, 영양성분 표시 시 지방(포화지방 및 트랜스지방), 콜레스테롤, 나트륨 가운데 1개 이상을 표시하지 않은 경우는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즉 표시 사항을 위반해도 영업에 대한 강한 제재 조치는 없다는 의미다. 식약처 관계자는 “위 사항과 관련해 식약처가 식품기업을 직접 단속한 경우는 없으며, 표시기준 위반에 대한 적발 건수도 자체적으로 보유한 것이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할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다”고 답변했다.

    미국 FDA 결정대로 우리나라에서도 트랜스지방 사용을 중단할 가능성은 있을까.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며 “우리나라 식품은 미국 식품보다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적고 업체들이 표시기준을 잘 따르는 편이라고 본다. 또 2007년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 의무화 이후 업체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트랜스지방 수치를 낮췄기 때문에 현재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소비자 스스로 트랜스지방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음식을 주의해서 섭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종임 교수는 “많은 제빵업체가 비싼 버터 대신 저렴한 마가린, 쇼트닝 등을 쓴다. 가공식품을 섭취할 때 꼭 영양성분을 확인하고 트랜스지방이 들어간 것으로 의심되는 식품은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영양성분은 1회 제공량 기준으로 표시돼 있으므로 많이 먹을수록 몸속에 쌓이는 트랜스지방 수치도 그만큼 올라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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