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봄과 여름 경계 가른 거장들의 리듬

서울재즈페스티벌 2015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6-01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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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과 여름 경계 가른 거장들의 리듬

    서울재즈페스티벌 2015 둘째 날인 5월 24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영국 싱어송라이터 미카의 공연에 팬들이 호응하고 있다.

    사흘 내내 달은 눈썹 모양이었다. 맑은 하늘에 금성과 목성이 달 주변을 지켰다. 봄과 여름의 경계임이 확연했던 황금연휴,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재즈가 울렸다. 돗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귀를 기울이는 친구들과 연인들, 무대 앞에서 리듬에 몸을 맡기는 관객들이 음악을 완성했다.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서울재즈페스티벌 2015는 그렇게 봄과 여름의 경계를 갈랐다.

    본격적으로 페스티벌 시즌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5월을 대표하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올해 라인업은 9회라는 연륜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허비 행콕과 칙 코리아, 세르지우 멘데스, 아르투로 산도발로 이어지는 메인 스테이지 라인업은 말 그대로 세기의 재즈 거장들이 펼치는 향연이었고 베이스먼트 잭스, 미카, 에픽하이가 헤드라이너를 맡은 서브 스테이지는 ‘재즈’ 페스티벌이 아닌 재즈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이들에게 아낌없는 춤판과 ‘떼창’을 선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만큼 양과 질, 모두 출중했다는 얘기다. 라인업 대부분이 공개된 여름 록페스티벌들에 비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다.

    가장 인상적인, 기대 이상의 공연은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였던 아르투로 산도발이었다. 1949년 쿠바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해온 그는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의 뒤를 잇는 최고 트럼펫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현존 트럼페터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는 테크니션으로, 앤디 가르시아가 주연한 영화 ‘리빙 하바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해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참석 차 내한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 이유로 취소된 바 있어 재즈 팬들의 기대가 한층 높아져 있던 참이다.

    오후 8시 반, 해가 완전히 진 후 5인조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른 산도발은 90분 동안 ‘재즈’ 페스티벌과 재즈 ‘페스티벌’ 팬 모두를 만족케 하는 공연을 했다. 재즈 황금기 시절의 클래시컬한 스타일부터 라틴 재즈까지 다양한 스타일 안에서 그의 트럼펫은 말 그대로 폐부를 찔렀다. 4옥타브를 넘나들며 관객들 혼을 남김없이 빼앗아갔다. 록 기타에 비유하자면 초절기교의 속주와 감성 충만한 연주 모두에 능통한 장인의 솜씨일 것이다.

    트럼펫뿐 아니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답게 몇 곡에서는 건반 앞에 앉아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 스코어를 들려주기도 했다. 마이크를 트럼펫 삼아 들려주는 스캣에서는, 트럼펫이란 악기가 어떤 방식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그 원리를 이해하게 해주면서도 학습이 아닌 즐거움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리고 공연 마지막, 라틴 리듬을 퍼부어대며 돗자리에 누워 있던 관객들까지 스탠딩 구역으로 불러들였다. 그 순간 올림픽공원 잔디밭이 브라질 삼바 축제 현장처럼 보일 정도였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음악 스트리밍서비스에서 아르투로 산도발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자라섬도 그렇고 서울재즈페스티벌도 그렇고, 재즈페스티벌은 티켓 판매에 라인업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그러나 두 페스티벌 모두 관객 수는 웬만한 록페스티벌을 뛰어넘는다. 반면 한국 음악시장에서 재즈가 차지하는 비율은 부끄러울 정도다. 실제 음악시장과 페스티벌 시장에서 나타나는 이 괴리는 역으로 재즈가 문화 소비층의 삶에서 차지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페스티벌은 한국 문화시장에서 ‘거대한 여가 상품’에 다름 아니다. 실제 음악 마니아들만 상대로 한다면 살아남을 페스티벌은 세 손가락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여가 산업에서 재즈란 곧 기호다. 음악 장르에서 재즈의 기의(記意)와는 다른 그것을 담고 있는 이 기의는 아마도 피크닉, 소풍, 데이트 등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여가 문화와 음악 문화의 경계를 통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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