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정권교체 위한 忠言이냐 비노 수장의 친노 때리기냐

침묵 깬 김한길을 바라보는 당내외 두 가지 시선

  • 박수진 헤럴드경제 기자 sjp10@heraldcorp.com

    입력2015-06-01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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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교체 위한 忠言이냐 비노 수장의 친노 때리기냐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문재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 김한길 전 공동대표(오른쪽부터)가 5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정연 을지로위원회 2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김한길’의 입이 열렸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재보선) 패배 책임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입을 닫았던 그다. 의정 활동과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현안을 제외하고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당내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치며 ‘분당설’ ‘탈당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침묵은 계속됐다. 오랜 침묵이 깨진 것은 5월 11일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막말’ 사건으로 당 내홍이 극에 달한 직후였다. 침묵을 뚫고 나온 ‘포성’은 곧장 새정연 문재인 대표를 향했다. “친노(친노무현) 좌장과 야권 대표주자 중에서 결단하라”는 그의 주문은 친노와 비노(비노무현) 간 갈등에 불을 지폈다.

    이후 그는 문 대표와 친노를 향한 공격수를 자처한 듯 거침이 없었다.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 이후에는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주자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고, 20일에는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장문을 통해 ‘정치인답지 않은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문 대표의 정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날 대표직에서 사퇴한 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 이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의 발언과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물병 세례’를 두고 “친노가 스스로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월 27일 새정연 을지로위원회 2주년 기념식에서는 문 대표 면전에서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선거 패배의 책임과 반성이 실종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함께 가야 승산 있다

    당내에서는 그의 행보를 두고 설왕설래가 잇따른다. 당을 위한 충언(忠言)이냐, 주류인 친노 흔들기를 통한 존재감 과시냐라는 해석이 혼재한다. ‘충언’이라는 해석의 배경엔 정권교체 열망이 있다. 문재인 체제로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판단한 그가 총대를 멨다는 얘기다. 한 비노계 의원도 “요즘 ‘뇌구조’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김한길의 뇌구조를 보면 가장 중심에는 ‘정권교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길 전 새정연 공동대표의 정치 행로는 ‘킹메이커’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는 이대로는 다음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올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금 본인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다시 말해 ‘문재인’ 또는 ‘문재인 혼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김 전 대표는 이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언론에 “문재인 대표가 가장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라면 나는 2002년 노무현 당선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문 대표를 위해 죽기 살기로 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계속해서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이 함께 가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같이 가야 다음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을 당 안으로 끌어들인 건 김 전 대표다. 당 공동대표를 맡은 기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으나 어찌됐건 ‘야권 통합의 그릇’을 만든 건 김 전 대표다.

    김 전 대표는 문재인 대표의 독주 옆에 안철수 의원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을 들러리 세워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5월 21일 안철수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문 대표가 안철수나 박원순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 문제를 풀어가는 데 좋은 길”이라며 “다만 문 대표가 대권 행보를 독주하면서 나머지 두 사람을 옆에 세우는 모양새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김 전 대표의 최근 행보가 ‘당 흔들기’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그가 걸어온 ‘탈당의 과거’가 근거가 된다.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7년 그는 원내대표를 사퇴하고 한 달 후 의원 23명을 이끌고 탈당했다. 이후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까지 반 년 만에 당적을 4차례 옮긴다. 당내 일부 인사는 이를 두고 ‘분열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계 한 인사는 “화합과 혁신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김 전 대표가 혁신을 부르짖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당 흔들기’라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당내외 호사가들은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큰 줄기는 내년 총선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비노계 좌장으로서 입지 구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요구하면서도 “사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이유도 문재인 체제를 끌어내리는 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당내 한 인사는 “결국 문 대표를 향해 ‘내 얘기를 들어라’고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비노계 좌장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인정하라는 속내라는 뜻이다.

    비노 좌장 입지 구축

    정권교체 위한 忠言이냐 비노 수장의 친노 때리기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김한길 전 공동대표(왼쪽부터)와 5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 성장을 위한 남북경제협력’ 토론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당내 친노세력은 최근 김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며 2002년 대선 전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의 ‘노무현 흔들기’를 떠올린다.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주저앉자 정권교체에 불안을 느낀 비노 의원들은 ‘대선후보 교체론’을 대놓고 얘기했다. 후단협 사태의 앙금은 노무현이 집권한 이후에도 남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수용한 대북송금 특별검사(특검), 새천년민주당 분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 2004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져 양측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얘기는 다르다. 최근 그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2002년 9월 중순 노 후보의 요청을 받고 나는 뒤늦게 캠프에 합류했다. 55%까지 올랐던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노무현을 재벌 2세한테 팔아먹는다’는 비난을 감수해가며 나는 최선을 다해 정몽준과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당시 단일화 경선에서 노 후보가 패하면 이민을 떠날 생각까지 했다.”

    김한길의 발언은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주최한 남북경제협력 토론회에도, 을지로위원회 2주년 기념식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잠룡’으로 불리는 안 의원과 박원순 시장, 문 대표,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비노계의 또 다른 큰 축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노출을 삼가고 신중한 목소리를 내는 것과도 비교되는 행보다.

    정치인의 패권 경쟁을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다. 김 전 대표의 행보는 친노 수장으로 인식되는 문 대표에게 견제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의 중심에 국민이 있다는 사실이다. 제1야당이 재보선 참패로 얻을 교훈은 특정 세력의 패권보다 자기반성이다. 그 사실을 잊은 정치인에게 또다시 표를 던질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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