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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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불모지에 부는 신바람

평창올림픽 효자 종목 기대…단숨에 전력 강화 위한 ‘귀화 정책’이 묘수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5-04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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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스하키 불모지에 부는 신바람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출신인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4월 15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아이스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5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 I-그룹B(3부리그) 대회 네덜란드와 풀리그 2차전에서 7-1로 승리해 2연승을 거뒀다.

    피겨스케이팅이 겨울올림픽 여자종목의 꽃이라면, 남자종목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이스하키다. 링크 위에서 상대 골문을 노리는 아이스하키는 힘과 스피드가 넘치는 진정한 ‘남자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겨울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고, 입장권 수입 대부분을 차지하는 종목도 바로 아이스하키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메이저리그(MLB)와 미국미식축구리그(NFL), 미국프로농구(NBA)와 함께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로 불릴 만큼, 아이스하키는 돈과 팬이 모이는 인기 스포츠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이스하키는 대중적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 ‘있는 집 자식이 하는’ 귀족 스포츠란 인식이 강한 탓이다. 마니아들이 있지만 층이 두텁지 않다. 실업팀(대명상무 포함)과 대학팀이 각각 5개 팀에 불과할 정도로 저변도 넓지 않다.

    ‘아이스하키의 차범근’ 백지선 감독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4월 20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끝난 ‘2015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Ⅰ-그룹B(3부리그)’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날 5차전에서 크로아티아를 9-4로 이겨 4승1패(승점 12)를 기록한 한국은 이어 벌어진 경기에서 영국(연장승 포함 4승1패·승점 11)이 리투아니아에 2-3으로 패해 짜릿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지난해 안방 경기 고양에서 열린 그룹A(2부리그) 대회에서 5전패를 당해 그룹B로 강등된 한국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1년 만에 그룹A 복귀 꿈을 이뤘다.

    한국이 1년 만에 다시 그룹A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백지선(48) 감독의 힘이 컸다. ‘축구에 차범근, 야구에 박찬호가 있다면 아이스하키에는 백지선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 감독은 한국 아이스하키계의 보물 같은 존재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간 백 감독은 1990년대 초반 명문인 미국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며 1990~91시즌과 1991~92시즌에 잇달아 NHL 우승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맛본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2005년부터는 NHL 하부리그인 아메리칸하키리그(AHL)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산하 그랜드래피즈 그리핀스의 코치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13~2014시즌까지 총 9시즌을 치렀다.



    세계 아이스하키의 주류인 북미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백 감독은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고국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해 지난해 8월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한국이 지난해 9월 17일 IIHF로부터 평창겨울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확보한 것도 절반 이상은 백 감독 덕분이었다. 자동출전권 부활 조건으로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내걸었던 IIHF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백 감독이란 확실한 ‘보증 수표’를 내밀자 더는 ‘노(no)’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

    아이스하키 불모지에 부는 신바람

    백지선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

    지난해 11월 헝가리에서 열린 2014 유로아이스하키챌린지 대회에 첫 출전해 준우승을 일군 백 감독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짜릿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아이스하키계에 희망을 선사했다. 에인트호벤에서 본 백 감독은 합리적이면서도 철저한 지도자였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은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최고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짧은 기간 대표팀이 체질 개선과 기량 향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백 감독의 힘이었다.

    백 감독은 유럽 선수에 비해 몸집이 작다는 약점을 가진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상대적으로 좋은 ‘스피드’와 ‘스케이팅’ 능력을 극대화하면 세계 최강 수준의 팀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했다. 또 과거 국가대표팀에 비해 지원스태프 수를 대폭 늘리고, 일방적 지시가 아닌 토론식 대화를 통해 선수들의 자긍심과 기량 향상을 도모했다. 대표팀 내 ‘토종 에이스’ 김기성(30·안양한라)은 “백 감독님이 부임한 뒤 태극마크가 갖는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며 “팀 분위기도 좋아지고 기량도 늘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룹A 승격이란 당면 목표를 달성하긴 했지만, 한국 아이스하키는 세계 최고 수준 팀들과는 여전히 한참 거리가 있다.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획득한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에서 만날 팀들은 NHL 스타가 즐비한 캐나다, 미국 등 세계 최강팀들이다. 0-10 점수가 나와도 할 말 없는 상대들이다. 평창에서 한국 대표팀은 망신을 당하지 않고, 단 1승이라도 거두는 게 현실적인 목표다.

    귀화 태극전사, 적정 수 고민

    백 감독은 부임 이후 줄곧 ‘약속된 플레이에 따른 시스템 하키’를 강조하고 있다. 완성도를 높이기까지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한정된 선수 자원으로 전력 향상을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팀은 전략적으로 ‘귀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국제 아이스하키계에서 미국 또는 캐나다 출신 선수의 귀화는 흔한 일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일본은 1998년 나가노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복수 국적 선수 8명을 대표팀에 기용했고, 이탈리아도 2006년 토리노겨울올림픽에서 캐나다와 미국 출신 선수 11명을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한국 대표팀에도 ‘벽안의 태극전사’가 4명 있다. ‘귀화 1호’ 브락 라던스키(33·안양한라)를 비롯해 마이클 스위프트(28), 브라이언 영(27·이상 하이원)과 마이크 테스트위드(28·안양한라) 등이다. 라던스키는 법무부의 우수인재 특별 귀화를 통해 2013년 3월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복수 국적을 획득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테스트위드가 가장 최근인 3월 4번째로 귀화해 대표팀에 선발됐다.

    외국 국적을 가진 선수가 귀화해 태극마크를 달려면 최소 2시즌 이상 국내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안양한라 골리(골키퍼) 맷 달튼(29)의 추가 귀화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제 1시즌을 뛴 달튼은 2015~2016시즌을 마친 내년 3월 귀화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아이스하키에서 골리의 중요성은 팀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달튼의 귀화에 큰 공을 들이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고 대표팀을 귀화 선수로 모두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아이스하키계 내부에서도 ‘귀화 선수를 더 뽑아야 한다’는 주장과 ‘올림픽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백 감독은 ‘적정 귀화 선수 수’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평창겨울올림픽까지 채 3년이 남지 않았다. 귀화 선수를 많이 뽑으면 토종 선수들의 발전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당하지만, 단기간에 전력 향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귀화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는 어느 정도 필요할 수밖에 없다.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 평창겨울올림픽을 향한 긴 여정에 들어가 있는 ‘백지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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