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0

2015.03.23

‘꿀알바’ 연기자들로 확~ 젊어진 한국민속촌

돈 벌고 연기력 늘고 일약 스타 대열에…오디션 경쟁률 20 대 1 이르기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3-23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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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알바’ 연기자들로 확~ 젊어진 한국민속촌

    한국민속촌에서 \'백수 형\'을 연기하는 김탁(왼쪽) 씨가 관객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딩동~.’

    “네 이놈! 잡았다. 너 자꾸 벨 누르고 튈 거야? 어디서 이런 짓을! 어머니, 애 교육 좀 잘 시키란 말이요. 다시 오면 아주 혼쭐을 내줄 거요. 어, 근데 문이 안 열리네. 문 좀 열어! 여기 내 집이야! 아니, 사실 월세지. 어험!”

    3월 15일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민속촌). 능청스러운 ‘이놈 아저씨’의 연기에 관객들의 폭소가 터진다. “아빠, 유튜브에서 보던 ‘이놈 아저씨’가 진짜로 있어!” 제일 신이 난 건 꼬마 관객들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다 ‘아저씨’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까르르 웃는다.

    ‘민속촌 거지 공채’ 입소문도

    ‘이놈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가자 체육복 차림의 ‘백수 형’이 비실거리며 나온다. 몽롱한 눈빛에 헝클어진 머리, 입가엔 침 흐른 자국도 있다. “이웃에 피해 주지 맙시다. 백수도 잠 좀 자야 하잖아요?”



    건너편에는 1970년대 초등학교를 재현한 ‘1학년 3반 교실’이 있다. 20, 30대 관객들이 여고생 ‘나도하’와 사진을 찍으려고 긴 줄을 섰다. “전에 ‘구미호’ 역을 맡았던 언니 맞죠? 실물이 영상보다 훨씬 예쁘네요.” 이곳의 반장 ‘설까치’는 교실이 떠들썩해지자 “너희 계속 떠들면 시험 볼 거야. 싫으면 나랑 사진 찍든지”라며 관객을 웃겼다.

    즉흥 연기로 깨알 같은 재미를 선물하는 이들은 민속촌 ‘알바’(시간제 근로) 연기자들이다. 절반 이상이 연기자 지망생이거나 배우인 이들은 이미 유명 인사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민속촌 알바’ 관련 영상만 수십 개고, 일부 영상은 조회 수 30만 건을 훌쩍 넘는다.

    민속촌이 ‘연기 알바’를 모집한 것은 2012년부터다. 기존의 지루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한 직원이 ‘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관객과 소통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관객 호응도가 높자 2014년에는 연기자 공개 오디션을 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관상가, 구미호, 거지, 죄인, 사또, 사약을 내리는 어사 등이 재치 있는 대사를 뽐냈고 관객은 이들의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서 공유했다.

    이곳의 최고 스타는 조선시대 ‘거지’ 캐릭터다. 누더기를 걸치고 바가지를 내밀며 “한 푼 줍쇼”를 외치는 이들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거지다. 인터넷에서 ‘민속촌 거지 공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입소문이 퍼졌다. ‘거지’는 민속촌 내부에서도 ‘최고 알바’로 통한다. 종일 누워만 있어도 되고, 구걸해서 받는 돈은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하루 부수입은 3만~10만 원 선. 거지 유형도 다양해 외국어를 잘하는 ‘글로벌거지’, 무엇이든 받는 ‘상거지’, 노래와 춤에 능한 ‘꽃거지’, 어떻게 구걸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뭐하는거지’ 등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유명해지자 방송인 강용석, 개그우먼 김지민의 ‘민속촌 거지 체험’이 TV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관상가’ 캐릭터도 큰 인기를 누렸다. 유튜브에 올라온 ‘뜻밖의 이상형’ 영상은 여성 손님을 은근히 유혹하는 대사로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대 같은 관상은 처음이오. 눈이 맑고 흑과 백의 구분이 분명하며 코가 높이 솟아 있고 입술 또한 붉고 옆으로 긴 것이 딱 내 스타일이오. 좋은 일이 일어나게 부적을 하나 적어줄 터이니 그대의 손 좀 주시지요. 010…(손바닥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는다).”

    ‘구미호’ 캐릭터는 사랑스러운 애교로 민속촌의 스타가 됐다. 술상 앞에서 “오빠 당연히 ‘원샷’이겠죠?”라며 아양을 떠는 영상이 화제가 된 것이다. 영상 아래에는 ‘대학 가면 저런 후배 있나’ ‘귀여워서 내 간도 빼주고 싶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구미호’를 맡았던 이정후(20) 씨에게는 ‘팬’을 자처하고 SNS로 친구신청을 하는 사람도 많다.

    ‘알바’ 덕에 민속촌 관람객 수도 증가세다. 2014년 관람객 수는 전년보다 14.9% 증가했다. 20~40대 관람객 비중은 2012년 65%에서 2014년 80%까지 늘었다. 민속촌 마케팅팀 관계자는 “‘알바’들은 즐겁게 일하고 민속촌도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꿀알바’ 연기자들로 확~ 젊어진 한국민속촌

    3월 14일 진행된 한국민속촌의 ‘알바’ 오디션 ‘조선에서 온 그대’에는 7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열연했다.

    연기력 키우고 스타 되는 ‘꿀알바’

    민속촌 ‘알바’들은 연기력을 키우면서 일약 스타가 되는 일거양득 효과를 보고 있다. ‘백수 형’을 맡은 김탁(30) 씨는 본업이 연극배우. 그는 “연극무대에서 배우기 어려운 즉흥 연기가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사약을 내리는 ‘어사’ 역을 맡았는데 여성 관객이 “애인이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다”고 하기에 “그럼 내가 달콤한 사약을 주겠다”며 위로하는 대사를 즉석에서 지어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뮤지컬배우가 꿈인 이정후 씨는 민속촌 밖에서도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많다.

    일을 즐기면서 경력을 쌓는다는 점도 민속촌 ‘알바’의 장점이다. ‘설까치’를 맡은 김정원(25) 씨는 “소위 말하는 ‘꿀알바’다. 다양한 배역을 연습하고 관람객에게 웃음도 선사하니 일석이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속촌 관계자는 ‘알바’ 시급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다른 ‘알바’보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먼저 체력 소모가 많다. ‘이놈 아저씨’ 역을 맡은 윤태영(20) 씨는 고함치고 화내는 캐릭터라 최근에는 ‘백수 형’ 김탁 씨와 번갈아가며 연기를 하고 있다. 날씨와 관계없이 야외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 점. 이씨는 ‘구미호’ 역을 맡았을 때 하루 종일 나무 위에 올라앉아 관객과 대화해야 했다. 추운 겨울에도 7~8시간 일하느라 체온 유지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가끔 짓궂은 관객도 마주해야 한다. 윤씨는 “지난해 ‘뭐하는거지’를 맡았는데 구걸바가지를 발로 차거나 바가지에 든 돈을 가져가는 관객이 있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충에도 민속촌 ‘알바’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최근 민속촌의 ‘알바’ 공개채용 ‘조선에서 온 그대’ 경쟁률은 20 대 1가량 됐다. 최종 합격자들은 4월부터 시작할 ‘웰컴 투 조선’ 행사에 투입될 예정이다. 지원자들이 제안한 캐릭터도 주모, 약장수, 취객, 지리산반달곰, 비둘기 등 독특했다. 민속촌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한 달 전부터 준비하는 등 지난해보다 열기가 뜨겁다”며 “민속촌의 유쾌한 변신이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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