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4

2015.02.02

다시 올 수 없어 아름다운 첫사랑

김현석 감독의 ‘쎄시봉’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2-02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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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올 수 없어 아름다운 첫사랑
    젊음은 아름답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다. 그런데 젊음이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일 때, 그 사랑은 일종의 신화가 된다. 이뤄지지 않은 사랑일수록 신성함은 더욱 커진다. 안타까운 엇갈림과 가슴 아픈 후회, 지나갔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더 애잔한 것, 우리가 수많은 영화에서 만나 온 첫사랑은 곧 아름다운 실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쎄시봉’은 첫사랑, 추억, 실패, 아픔 같은 고전적 멜로 러브 스토리의 전형을 따라간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져 귀농한 왕년의 가수에게 누군가 찾아와 데뷔 시절을 묻는 것이다. “그래, 내게도 20대가 있었다”라는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으로 환기된 바 있지만 ‘쎄시봉’은 오늘날 젊은이에게 먼 데서 들려오는 소문과 다르지 않다. ‘쎄시봉’에서 활약했던 가수들이 지금은 대개 일흔 근처를 살아가는 노년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20대를 보냈던 1970년대 초반 서울 명동은 그야말로 낭만의 거리였다. 그 명동에 있으면서 팝송을 듣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은 문화의 첨단을 상징했다.

    영화에서는 당시 억압의 상징이던 미니스커트 단속이나 통행금지(통금)도 로맨스를 강화하는 장치로 쓰인다. 소나기를 만난 연인이 비를 피해 뛰어가듯, 당대 청춘은 치마 길이를 단속하는 경찰을 피해 뛴다. 낭만적 음악을 배경으로 슬로모션으로 뛰어가는 연인의 모습은 ‘나 잡아봐라’의 21세기적 재현처럼 보인다. 통금 단속에 걸린 남자친구에게 뛰어들 듯 다가가 키스 세례를 퍼붓는 장면도 그렇다. 당시엔 지독한 규제이자 금지였던 것이 이 영화에서는 욕망을 부추기는 달콤한 금지로 묘사되는 것이다.

    영화 ‘쎄시봉’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실존했던 공간과 실존했던 인물에 허구 이야기를 얹어 엮어낸 작품이다. 인기 듀오 ‘트윈폴리오’ 멤버 윤형주, 송창식과 가수 이장희 같은 실존인물 이름이 고스란히 쓰이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도 사실적으로 사용된다. 고증에 가까운 재현 위에 ‘트윈폴리오’가 실은 ‘트리오 쎄시봉’이었다는 허구가 얹힌다. 이들이 듀엣으로 데뷔해야 했던 사연, 그것에 바로 허구적 상상력이 개입한다.



    이 허구의 뼈대는 ‘트윈폴리오’와 이장희가 불렀던 노래 가사들이다. 당시 유행하던 번안곡의 가사는 무척이나 서정적이다. 특히 ‘웨딩케이크’ ‘하얀 손수건’ 같은 노래의 가사는 아쉬움과 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제목을 ‘웨딩케이크’로 하는 게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이 노래 가사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멜로드라마’가 중심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쎄시봉’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1970년대 서울 무교동의 질주와 20대 청춘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싱그럽고 발랄한 로맨스는 첫사랑의 복기가 왜 언제나 설레는 아름다움인지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다소 밋밋한 이미지의 배우 한효주를 톡 쏘는 매력의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로 연출한 김현석 감독의 솜씨도 칭찬할 만하다.

    문제는 첫사랑의 감정은 충분히 전달되는 데 비해 그 후 펼쳐지는 반전과 재회의 정서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에 헤어진 이들이 40대에 우연히 만나고 마침내 60대에 재회하는, 이 넓은 시간을 채우기엔 공감의 심도가 얕다. 그럼에도 귀에 익은 명곡이 세월을 관통해 어떤 감정을 전달해준다. 보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게 즐거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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