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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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들의 네버랜드 키덜트&하비 엑스포

무선비행기 날리고 RC카 조종하는 ‘어른아이’ 500만 시대, 나흘간 7만 명 운집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5-01-26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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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들의 네버랜드 키덜트&하비 엑스포

    1월 15일부터 나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덜트&하비 엑스포 행사장 전경.

    “신혼집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다 피규어 세계에 입문했어요. 레고, 아트토이가 가득 놓인 장난감 테마 카페에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었죠. 처음엔 피규어를 하나씩 사 모았는데 차츰 해적선 같은 플레이모빌에도 눈이 가더군요. 오늘은 여기 와서 모형 자동차를 몇 개 샀는데 저렴하고 예뻐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

    장난감 쇼핑에 들뜬 30대 초반의 결혼 1년 차 부부를 만난 곳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였다. 올해 처음 열린 ‘키덜트·하비 엑스포’에 참석한 이들은 혼잡한 공간에서도 즐거워 보였다. 프라모델, 피규어, 무선조종(RC) 모형기기, 플레이모빌, 레고, 아트토이, 구체관절인형 등 다양한 장난감에 열광하는 ‘어른아이’들이 모인 이 축제는 1월 15일부터 나흘간 7만 명이 넘는 인파를 모은 뒤 막을 내렸다.

    기자가 행사장을 찾은 1월 17일 오후 2시 30분쯤엔 입구부터 100m가 넘는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간신히 행사장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수많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현장에는 각종 키덜트 아이템과 콘텐츠 관련 업체 100여 곳이 마련한 부스 450개가 빽빽이 설치돼 있었고, 부스는 물론이고 통로마다 넘쳐나는 사람들로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성별, 세대 초월한 장난감 사랑

    힘겹게 사람들을 헤치고 행사장 초입 RC 제품 판매 부스에 들어서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진열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색 유명 스포츠카 모형을 바라보던 한 청년이 “저거 정말 갖고 싶었던 건데…” 하자 또 다른 청년은 “저 요트 좀 봐. 돛대가 2개야”라며 감탄했다. 뒷사람들 때문에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면서도 두 사람은 스포츠카와 요트 모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스를 빠져나오자 이번엔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을 번쩍이며 공중을 나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동영상 촬영과 저장이 가능한 쿼드콥터(회전날개가 4개 달린 비행체)의 시험비행이 한창이었다. 사람들로 북새통인 체험장 한편에는 갓난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는 유모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시 뒤 쇼핑봉투를 든 30대 주부가 황급히 달려왔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느라 아이를 깜빡 잊었던 것이다.

    오후 3시가 넘어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카페를 찾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빈자리가 없는데 안내판에는 ‘브레이크타임 3:00~3:30’이라고 적혀 있었다.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사람이 너무 몰려 기계가 고장 났다. 커피와 간식거리 판매가 불가능한 상태다. 수리가 끝날 때까지 병에 든 음료수만 팔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참을 기다려 생수 한 병을 사들고 나오자 보드게임존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부터 10대 청소년, 20대 커플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50여 개 테이블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초등생 아들 2명과 머리를 맞댄 채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던 40대 주부 이정연 씨는 “방학 때마다 애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닌다. 마침 엑스포가 열린다기에 왔는데 사람이 정말 많다. 나는 벌써 지쳤는데 아이들은 사흘도 있을 수 있겠다면서 갈 생각을 안 한다”며 웃었다. 옆 테이블에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중학생 딸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중년들의 네버랜드 키덜트&하비 엑스포

    ‘키덜트&하비 엑스포’에 참가한 아트토이 작가 기타이 신이 치로(왼쪽)와 델로스. 미니자동차 경주대회 풍경(위부터).

    보드게임존을 벗어나자 야외로 소풍 나온 듯 바닥에 돗자리를 펼치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접착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올가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RC자동차 경주대회 ‘2015 타미야 아시아컵(Tamiya Asiacup)’과 미니자동차 경주대회 ‘2015 타미야 미니 사륜(Tamiya Mini 4WD)’ 한국 대표 선발전이 펼쳐지는 장소였다. 이 자리에서 만난 30대 중반 김형일 씨는 10cm가 채 안 되는 크기의 미니자동차를 여기저기 손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그는 “미니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차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 참가자들이 지금 각종 튜닝을 하고 있어 접착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라며 “나도 곧 열리는 경기에 나갈 참이라 긴장된다”고 했다. 이 모습을 옆자리에서 지켜보던 또래 남성은 “원래 우리 둘이 친구인데 이번에 둘 다 결선에 진출해 경쟁 상대가 됐다. 친구가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계속 말 좀 시켜달라”며 웃음 지었다.

    바로 옆 RC자동차 대회장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RC자동차 시승식이 열리고 있었다. 경광등, 형형색색 LED 전구로 치장한 대형 트레일러와 덤프트럭에 올라탄 어린이들은 진행요원이 무선조종기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즐거워했다. 이날 현장에선 RC자동차 시승 체험, 쿼드콥터 무선조종 체험 외에도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렸다.

    아트토이 전시와 이벤트도 급증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아트토이 작가 기타이 신이치로와 한국 작가 델로스(Delos)가 함께 마련한 라이브 페인팅 행사가 펼쳐졌다. 신이치로는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자인팀 데빌로봇(Devilrobots) 소속으로 그동안 디즈니와 코카콜라 등 세계적 기업과 손잡고 다양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 가운데 한국에서 특히 유명한 캐릭터 ‘토후오야코(To-fu Oyako)’는 이날 행사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신이치로는 “한국에서 토이 전시와 이벤트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매우 뜻깊은 경험이 됐다. 양국의 토이 아티스트가 더욱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세계무대에 진출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한상훈 ㈜제이엑스포 차장은 “전국적으로 키덜트 인구가 500만 명쯤 되는 것으로 본다. 과거엔 키덜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았으나 최근엔 예술적 감수성을 가진 어른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번 엑스포가 끝난 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는 “‘지름신’이 강림했다” “맘에 드는 RC 제품을 못 샀는데 설날 보너스가 나오면 반드시 사겠다”는 등 행사 관람후기가 넘쳐났다. 아이보다 더 뜨거운 ‘어른아이’들의 장난감 사랑을 실감케 한 키덜트·하비 엑스포는 8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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