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2015.01.26

패션·뷰티 영역에 도전한 의약품

유유제약, 소셜데이터 26억 건 활용…‘멍 빼는 약’으로 과감하게 리포지셔닝

  •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 jhkim6@assist.ac.kr

    입력2015-01-26 13:4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패션·뷰티 영역에 도전한 의약품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 검색창에 ‘멍 빨리 없애는 법’ ‘멍 없애는 연고’ 등을 입력하면 연관돼 단골로 등장하는 일반의약품이 하나 있다. 바로 유유제약의 ‘베노플러스겔’이다. 3년 전만 해도 유유제약은 베노플러스겔을 ‘진통소염제’로 판매했고 영업사원들도 이 제품을 ‘멘소래담’과 유사한 제품이라고 광고했다. 그나마 차별적인 강점으로 내세운 게 “피부 자극이 적으니 민감한 아기 피부에도 사용할 수 있다”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해 멍 치료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후 베노플러스겔의 인지도와 매출은 크게 상승했다. 타깃 고객층을 아이에서 성인 여성으로 바꾸고 단순 의약품을 넘어 미용에도 도움이 되는 뷰티 상품으로 리포지셔닝한 덕택이다. 베노플러스겔의 리포지셔닝 전략은 빅데이터 분석에서 탄생했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빅데이터 활용 리포지셔닝 전략 통해

    베노플러스겔은 유유제약이 1988년부터 생산한 ‘바르는 진통소염제’지만 이 카테고리에는 이미 ‘물파스’뿐 아니라 ‘멘소래담’‘안티프라민’ 등 소비자에게 깊이 각인된 브랜드들이 있었다. 따라서 베노플러스겔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매출액도 지난 10년 넘게 변화가 없었다. 유유제약은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분석에 주목했다. 매일 수억 건이 오고가는 카카오톡 등 문자메시지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되는 글에는 개인의 솔직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유제약은 소셜미디어 분석을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다면 새로운 시장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의 빅데이터 마케팅은 바로 이렇게 시작됐다.

    유유제약은 2012년 초부터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나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26억 건의 소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부기나 타박상에는 물파스뿐 아니라 멘소래담, 안티프라민 같은 제품과 정형외과 치료에 대한 연관 검색어가 많았다. 또한 벌레 물린 데는 ‘버물리’처럼 확실히 각인된 브랜드가 있었지만 멍에 대해서는 소비자에게 인식된 특별한 연고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멍을 없애기 위해 달걀이나 쇠고기를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물론 멍 빼는 연고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답변으로 구체적인 브랜드가 언급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약국에 가서 멍 빼는 약 달라고 말하면 됩니다’식의 답변만 있을 뿐이었다. 더욱이 블로그를 대상으로 3억4000만 건의 텍스트마이닝을 한 결과, ‘멍-여성’ 키워드 조합이 ‘멍-아이’ 키워드 조합보다 6배 정도 많았다. 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잠재 시장이 아이를 대상으로 한 시장의 크기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패션·뷰티 영역에 도전한 의약품

    유유제약은 제품 타깃 고객층에 맞춰 광고 포스터를 새롭게 제작했다(왼쪽).

    또한 사람들이 멍들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가리기’로 나타났다. 멍을 가리는 행위에 대해 심층 분석해보니 미니스커트나 민소매 옷을 입을 때 무릎이나 팔, 다리 등에 생긴 멍을 숨기려고 메이크업으로 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따라 계절적으로는 노출이 많은 여름철에 멍에 대한 검색이 집중적으로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겨울방학철에도 여름과 비슷한 수준으로 멍에 대한 검색이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성형 특수 때문이었다. 고3 수험생이나 대학생이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성형을 많이 하다 보니 얼굴에 남은 멍과 부기를 제거할 방법에 대한 검색을 많이 한 것이다.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먼저 멍에 대해서는 일반의약품 시장을 지배하는 선점 브랜드가 없고, 멍에 대한 수요는 아이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는 것. 또한 베노플러스겔이 지향해야 할 목표 시장은 일반의약품뿐 아니라 미용, 더 나아가 성형과도 연관시켜 포지셔닝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유유제약은 2012년 여름부터 기존 마케팅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먼저 베노플러스겔의 타깃 고객층을 기존 어린이에서 성인 여성으로 바꾸면서 포스터부터 새로 제작했다. 과거엔 ‘못난이인형’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아이들 피부에는 부드럽게 감싸주는 베노플러스겔을 발라주세요’라는 문구를 달았다. 반면 일러스트 형식으로 새롭게 바꾼 광고에선 치마를 입은 여성이 멍든 무릎을 보면서 ‘이런 멍 같은 경우엔 베노플러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다.

    포스터부터 포장 용기까지 싹 바꿔

    특히 겨울철 성형 수요를 의식해 겨울용 광고 포스터도 따로 제작했다. 성형 후 얼굴에 붕대를 감은 여성이 쇠고기나 달걀 대신 베노플러스겔을 선택하는 장면을 연출, 수술 후 멍과 부기를 빨리 빼고 싶어 하는 여성의 고민을 정면으로 다뤘다. 더욱이 새로 제작한 광고의 경우 성인 여성이 많이 보는 패션·뷰티 잡지에 집중적으로 게재했는데 패션지에 광고를 낸 건 73년 유유제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밖에 지하철 열차 내부에도 장기 광고를 게재했고 제품 디자인도 새롭게 바꿨다. 의약품 분위기가 풍기는 일상적인 연고 디자인에서 립글로스처럼 매끄러운 튜브 형태의 용기로 바꾼 것이다. 제품 포장지에 ‘부은 데, 멍든 데, 타박상, 벌레 물린 데’ 순서로 표기돼 있던 용도 설명도 ‘멍, 부기, 타박상, 벌레 물린 데’식으로 순서를 바꿔 멍이라는 단어가 맨 앞에 오도록 다시 디자인했다.

    당연히 멘소래담과 유사한 제품이라는 판매 전략에도 변화를 줬다. ‘베노플러스겔은 멍 빼는 데 특효’라는 점을 내세우며 약사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 심지어 이전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성형외과 의사들에게까지 찾아가 제품에 대해 알렸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내기 위한 마케팅에도 힘썼다. 의약품 관련 후기를 쓰는 블로거는 물론이고 화장품이나 미용 관련 제품 리뷰를 많이 하는 파워블로거들에게도 베노플러스겔의 존재를 적극 알렸다.

    베노플러스겔의 리포지셔닝 전략은 일반 약국은 물론 성형외과나 정형외과에서도 문의해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베노플러스겔의 검색 건수가 5배 넘게 늘어난 반면 ‘멍 빨리 없애는 법’이라는 검색어는 33%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매출액도 1년 만에 50% 늘어났다. 이러한 성공 덕에 유유제약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주최한 ‘제1회 빅데이터 활용·분석 경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댓글 0
    닫기